■ 옛 선비들의 멋과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석주선기념박물관의 ‘벼루 600선 특별전’
■ 옛 선비들의 멋과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석주선기념박물관의 ‘벼루 600선 특별전’
  • 권예은 기자
  • 승인 2009.12.01 17:05
  • 호수 1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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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 익히기 위해 10개의 벼루에 구멍을 냈다

 명문 다산·명필 추사의 체취, 600개의 벼루에 담긴 선조의 혼을 만난다


옛 선인들이 서재에서 쓰던 네 가지 도구(종이·붓·먹·벼루)를 문방사우(文房四友)라고 한다. 그 중에서 단연 으뜸으로 여겼던 것은 벼루였다. 벼루는 옛 선비들이 공부를 하고 글을 씀에 있어서 다른 도구들에 비해 오래도록 쓸뿐더러 어떤 벼루를 가지고 있느냐가 그들의 품격을 좌우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선비들에게 있어서 벼루는 친구이자 하나의 애장품이었다. 옛 선비들의 멋과 정취를 마음껏 느낄 수 있는 벼루를 석주선기념박물관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석주선기념박물관 제2전시실에서는 고고·미술 분야 제1회 ‘벼루 600선 특별전’이 지난 4일부터 열렸다. 경기문화재단에서 지원하는 이번 전시회는 박물관 측이 기존에 소장하고 있던 벼루 1000여 점 중에서 600점을 선별해 관람객들에게 다양한 벼루를 소개하고 있다. 벼루의 형태, 제작과정을 비롯한 시대·재질·문양·국가별 등 여러 가지 분류에 따른 벼루를 볼 수 있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바로 볼 수 있는 삼국 시대의 벼루는 원형이 많고 다리가 있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특히 70년대 박물관에서 직접 수습한 경주 인왕동 ‘신라 벼루’는 완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유약이 입혀진 상태 그대로 발견되어 벼루사 측면에서도 그 의의가 크다. 이곳에서는 신라 벼루 외에도 백제, 고구려 벼루를 비교하여 볼 수도 있다.
▲박물관 측이 경주 인왕동에서 수습한 신라 벼루.


다음으로 산지별 벼루돌로 만들어진 벼루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벼루돌은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 나는 남포돌이다. 박물관에서는 남포돌로 만들어진 벼루는 물론이고 가장 아름다운 벼루로 꼽히는 위원화초석으로 만들어진 벼루도 함께 전시돼 있다. 또 벼루는 90% 이상이 돌로 만들어지는 석연(石硯)이 대부분이지만 여기서는 옥, 나무, 진흙 등 다양한 재질로 만들어진 벼루도 찾을 수 있다.

▲위원화초석 벼루.


이번 특별전을 담당한 기수연 학예연구원은 “벼루는 어느 돌로 만드느냐가 가장 중요하지만 벼루의 품격을 좌우하는 것은 그 위에 새겨진 조각”이라고 말했다. 우리 조상들은 벼루를 단순히 먹을 가는 도구로만 여기지 않았고, 훌륭한 애장품으로서 섬세한 조각까지 많은 신경을 썼다는 것이 기 연구원의 설명이다.


벼루의 문양에는 동물·식물·산수 무늬가 있다. 동물 문양으로는 장수를 기원하는 거북 문양, 암수가 짝지어진 모습으로 부부간의 화합을 상징하는 봉황 문양, 상서로움을 나타내는 용 문양 등이 있다. 입신출세를 상징하는 등용문 고사를 바탕으로 뛰어오르는 잉어의 문양이 새겨진 벼루도 많다. 식물 문양의 경우에는 선비들의 지조, 절개 등을 상징하는 매화, 소나무, 대나무 등이 있고, 풍성함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포도 문양의 벼루가 대표적이다.


한편 이곳 박물관에서는 일반적인 직사각형의 장방형 벼루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벼루를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형태는 ‘일월연 형태’인데 먹을 가는 연당 부분은 해를 상징하여 동그랗고, 먹물이 모이는 연지 부분은 달을 상징하여 초승달의 모양을 하고 있다. ‘일월연 형태’의 벼루 외에도 원형, 반월형, 팔각형, 삼각형 등 여러 가지 형태의 벼루가 전시 돼 있다. 벼루 중에는 한자 바람 풍(風)자처럼 생겼다고 해 풍자연이라 불리는 벼루도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 눈여겨 볼만한 것은 유명한 선인들이 소장하고 있던 벼루다.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서예가 추사 김정희 선생과 다산 정약용 선생의 벼루는 관람객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이들 벼루 뒤에는 추사의 또 다른 호 완당이 새겨져 있고 다산의 벼루 역시 뒤에 명문이 새겨져있다.

▲다산 정약용의 명문과 호가 벼루 뒤에 새겨져있다.


이곳 벼루들은 연지 모양도 독특한 특색을 띄고 있다. 연지는 벼루 앞쪽에 오목하게 패인 부분으로 먹을 갈기 위해 물을 붓거나 간 먹물이 고이는 곳이다. 한 일(一)자 모양으로 생겨 일지연, 마음 심(心)자 모양으로 생겨 심지연, 버금 아(亞)자 모양으로 생겨 아지연으로 불리는 벼루는 한자 모양과 연지 모양을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 한자 모양 외에 쇠뿔 모양, 반월 모양, 태극 모양 등의 연지를 볼 수 있다.


서원에서 여러 명이 단체로 쓰던 큰 벼루와 함께 화공용 벼루, 화장용 벼루 등 쓰임새에 따라 분류해 놓은 벼루들도 볼 수 있다. 도화서에서 썼던 화공용 벼루는 평연으로 연당 부분이 평평하고 지금의 팔레트와 같은 모양이다. 여인들이 화장할 때 썼던 벼루는 휴대용 벼루로써 앙증맞은 형태이다.

▲팔레트처럼 생긴 화공용 벼루.


전시회장 끝 부분에는 선인들의 학구열을 느낄 수 있는 벼루들을 만날 수 있다. 먹을 갈다가 벼루 바닥이 구멍이 나서 쇳물로 때운 흔적의 벼루를 보면 조상들의 체취를 십분 느낄 수 있다. 전시회를 둘러보던 손지혜(27) 씨는 “생각보다 다양한 벼루들의 모습이 아기자기 했다”며 “하지만 화려한 문양의 벼루보다는 먹을 가는 부분이 마모되고 움푹 파여진 모습이 가장 인상 깊었다”라고 말했다.

▲바닥에 구멍이 나서 쇳물로 때운 벼루.

추사 김정희는 이런 말을 남겼다 “벼루 10개에 먹을 갈아 바닥내고, 1천 개의 붓을 몽땅 붓으로 만들었어도 아직 글자 한 자를 못 익혔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벼루는 단순한 문방 도구를 벗어나 조상들의 수양 정신을 느끼고 본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번 특별전은 매일 평균 약 70명 정도의 관람객이 찾고 있고, 단체 관람객도 늘어 다음 달 25일 까지 연장 운영 할 계획이다.


 사진 : 이상만, 김남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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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lver122@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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