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속의 러시아 ― 러시아 거리
하얼빈 속의 러시아 ― 러시아 거리
  • 김지영(국어국문 · 3)
  • 승인 2009.12.01 18:36
  • 호수 126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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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특색과 중국 전통 문화를 절묘하게 조합시켜 놓은 곳

▲ 하얼빈을 ‘동방의 유럽’이라고 불릴 수 있게 만든 러시아 거리.

근현대사 시간에 졸지 않았던 학생이라면, 적어도 광복절에 한번이라도 TV를 켜봤던 사람이라면 ‘하얼빈’이라는 이름이 낯설게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얼마 전 안중근의사 의거 100주년 행사까지 열린 이곳 하얼빈에는 독립운동의 흔적과 혹독한 겨울 말고도 하얼빈을 ‘동방의 유럽’이라 불리게 하는 명소가 자리 잡고 있다. 바로 하얼빈 중앙대가 부근의 ‘러시아 거리’가 그 곳이다. 


하얼빈 관광하면 절대 빠지지 않는 코스가 바로 이 러시아 거리이다. 하얼빈에서 가장 번화했다고도 할 수 있는 ‘중앙대가(종양따지에)’에서 쇼핑과 ‘송화강변’ 관광을 마친 후, 유럽풍으로 꾸며진 지하도를 건너고 나면 본격적인 러시아 거리가 펼쳐진다. 사실 송화강변의 대부분 건물들도 이미 유럽풍으로 지어져있고 엄청난 규모의 러시아 기념품 가게도 쉽게 볼 수 있지만, 지하도를 건너는 잠깐 동안 시베리아 열차를 타고 대륙을 횡단한 것 같은 기분을 들게 만드는 중앙대가의 익숙한 듯 하면서도 낯선 풍경은,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대륙의 나라 중국에 대한 편견까지도 부끄럽게 만든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차 한 대 구경할 수 없는 보행자 전용 구역 러시아거리는 심지어 길거리에 휴지통이 무안해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사람들은 휴지 한 조각 흘리지 않는다. 가끔 깔끔하게 차려입은 미화원이 거리를 청소하는 모습을 볼 수는 있지만, 그들의 존재는 상징적으로 느껴질 뿐이다. 또 중국하면 떠오르는 잘 맞춰진 걸음걸이의 군인들이 도로를 순찰하고 전혀 중국스럽지 않은 러시아풍의 가로등에는 이곳이 중국의 거리임을 잊지 않게 해주는 중국 국기들이 번듯하게 줄지어 달려있다.


지리상으로 하얼빈이 러시아와 매우 가깝기 때문이기도 하고 중국정부에서 실시하는 각 지역 특색을 개발, 발전시키는 테마 사업과도 맞아떨어져 하얼빈이 ‘동방의 유럽’이라고 불릴 수 있게 만드는 러시아 거리가 탄생하게 되었다. 러시아 설계사가 1920년대에 거리 바닥의 돌모양 하나까지도 세심히 디자인 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중국이 러시아거리에서의 중국문화를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다. 건물은 러시아풍으로 지어졌지만, 건물 안에 자리잡은 상점들은 하얼빈 겨울철 최고 간식인 탕우루(과일을 꼬치에 꽂아 물엿을 입혀 굳힌 것)와, 맥주로 유명한 하얼빈의 명성에 어울리는 최고 안주인 홍창(겉모습은 소시지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우리나라 순대와 비슷한 음식), 중국 명절 전통과자 전병 등 다양한 중국의 문화들이 대다수의 상권을 쥐고 있어 그 문화의 자주성을 개발에서 빠트리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러시아 거리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도록 러시아 기념품가게와 유명한 모피 체인점, 러시아식 레스토랑까지 하얼빈과 러시아를 절묘히 조합시켜 놓아, 다른 나라의 특색을 갖춘 거리의 명성이 문화사대주의에 빠졌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음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하얼빈이 대륙의 동북쪽에 위치한 겨울도시란 설명보다 ‘동방의 유럽’이라는 호칭으로 먼저 불리는 것이 결코 중국전통문화라는 시점에서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음에, 한편으로는 내 나라, 내 조국의 선진국을 지향한 지역 개발과 전통 문화의 상실이 안타까워지는 시간을 갖게 해 준다.

 

 김지영(국어국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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