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갑의 시사터치
조영갑의 시사터치
  • 조영갑
  • 승인 2009.12.02 16:30
  • 호수 1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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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학선거, 판을 바꿔라 서울대가 시끄럽다. 부정선거 논란 때문이다. 사건의 요지는 이렇다. 개표 직전에 한 후보자 측에서 “일부 투표함이 미리 개봉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후보자 측은 이에 대해 증거자료라며 선관위 사무실 관계자 대화내용을 녹음한 파일을 제시했다. 파일엔 선거관리위원장(현 총학생회장)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38대 25대 22… 완패다, 완패" 라고 말하는 내용 등이 담겨있었다고 한다.

실제 운영위원회 조사 결과, 투표함 34개 중 8개의 봉인이 훼손된 흔적이 발견됐다. 사전개표 의혹을 받은 선관위원 6명 모두 사퇴하고, 출마자들과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새 선관위를 꾸려 재선거를 하기로 결정했다. 서울대 사태의 원인은 선거 관리에 있다. 총학생회장이 선거관리위원장을 맡는 구조가 근본적인 문제다. 필자가 알기로 우리 대학을 비롯한 대다수의 대학이 이런 시스템으로 총학 선거를 치르고 있다. 그래서 선거 시즌이 되면 선관위원의 다수를 점하기 위한 샅바 싸움이 벌어진다. 선관위에 ‘아군’이 많아야 선거 일정이나 유세 방법 등의 룰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개는 선관위원장인 현직 총학생회장의 뜻대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이른바 ‘현직 프리미엄’의 힘이 강력한 까닭이다.

서울대 총학생회도 이러한 구조에서 사고를 친 것으로 보인다. “완패다, 완패”라고 말한 것은 주위에 있던 선관위원이 모두 ‘아군’이라는 것을 방증한다. 여기서 더 나가면 투표용지 교체 등의 협잡까지 가능하다. 우리 대학에서는 다행히 이런 사건이 터진 적이 없다. 그동안 총학생회장이 선거관리를 비교적 공정하게 해 왔다는 뜻이리라. 그러나 부정이 없다는 것이 반드시 공정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전언했듯이 이런 구조라면 현직 총학생회장이 응원하는 후보가 항상 유리하게 된다. 도전자는 처음부터 몇 수 접고 들어가는 것이다. 필자가 2007년 학부 내 자치언론의 편집장으로서 지켜본 선거관리위원회의 행태는 전횡에 가까웠다.

 선거관리위원회는 현직 회장을 배출한 선본 계열 사람들이 다수였으며, 이들은 학칙을 졸속으로 개정하면서까지 자신들이 응원하는 선본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온라인 게시판에 총학선거에 대한 일체의 담론을 차단하고, 투표소를 줄이는 졸렬한 방법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투표율을 떨어뜨리면 유리하다는 계산이었다. 공정선거라기 보다는 ‘공작선거’의 모습이었다. 공정한 선거관리의 원칙은 ‘독립과 견제’다. 선거의 당사자는 물론,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주체들과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또 내부 인사의 구성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중앙선관위가 헌법상 독립기관의 지위를 부여받고, 위원의 구성이 행정, 입법, 사법부의 추천을 받은 동수의 위원들로 구성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서울대가 선관위를 다시 꾸리면서 선거에 이해관계가 없는 인사들을 대폭 위촉한 것은 이와 같은 의미다. 그동안 별 사고가 없었으니 계속 이 구조를 유지하자는 것은 무지한 생각이다. ‘권력자’의 의지 혹은 선정(善政)에만 기대는 체제가 가장 나쁜 체제인 것이다. 세종대왕이 훌륭한 군주라고 해서 조선 왕조 체제가 훌륭하다고 상찬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다. 좋은 시스템은 사람이 바뀌고 역사가 바래도 생명력을 유지한다. 독립도 없고, 내부 견제도 부족한 총학 선거 시스템을 뜯어 고쳐라. 일단 대통령이 중앙선관위원장을 겸직하는 듯한 이 구조부터 바꿔라. 그리고 선관위를 총학, 단과대와 관련이 없는 외부에 설치하기를 바란다. 구태여 오이밭에서 신발끈을 고쳐 매고, 배나무 아래서 모자를 다시 쓸 필요는 없잖은가. 

조영갑 (언론영상·4)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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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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