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갑의 시사터치
조영갑의 시사터치
  • 조영갑
  • 승인 2010.03.09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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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전에 시간 되십니까?

일요일 오전에 시간 되십니까?

조조영화라도 보면서 데이트하자는 건 아닙니다. 아아, 취업전선을 용맹하게 돌파할 ‘필승 스터디’를 꾸리자는 건 더더욱 아닙니다. 당신이 이 시대의 대학생이 맞다면 지난 한 주 분명히 갖가지 일에 치였을 겁니다. 조별과제, 시험, 토익, 스터디, 알바…. 당신의 의식을 휘감고 있는 불안감은 또 어떻고요. 그래서 제안합니다. 일요일 오전에 저와 함께 산을 올라보는 건 어떻습니까.

 

아무것도 필요한 게 없습니다. 돈이 드는 것도, 스펙이 화려해야 오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튼튼한 다리만 있으면 그걸로 됩니다. 산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거든요. 묵묵하게 자기 등허리를 내어줄 뿐이죠. 이런 곳에서 신분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됩니다. 장차관, 판검사, 교수도 산 위에선 한낱 등산객일 뿐입니다. 더 좋은 체력이라면 산길에서 그들을 앞지를 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매력적인가요.

 

아직도 내키질 않는다고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당신은 한주 동안 더 험한 산을 탔습니다. 그리고 그 산은 계속 이어져 있고요. 오르막을 넘었다 싶으면 더 험한 산맥이 그대의 시야에 나타납니다. 시지프스의 이야기는 신화에만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끊임없이 거대한 돌을 굴려 올리는 그대의 모습이 시지프스입니다. 갖가지 압박으로 뭉쳐진 거대한 바위를 지탱하는 건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입니다. 그러니 제안합니다. 거대한 바위는 잠시나마 잊으세요. 일요일 오전에 가뿐한 마음으로 ‘진짜’ 산에 올라보는 건 어떻습니까.

 

동네에 있는 나지막한 뒷산도 좋고, 보이는 그대로 산수화가 되는 서울의 명산도 좋습니다. 여유가 허락된다면 2박 정도 너끈히 필요한 지리산 같은 큰 산은 더더욱 좋습니다. 낮은 산은 낮은 산대로 여유와 관조의 공간이 될 수 있고, 휘황한 자태를 자랑하는 명산들에서는 조물주의 존재를 희붐하게나마 느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남자의 자격’을 보증(?)한다는 그 산은 또 어떤가요. 굽이치는 산맥의 파도 앞에서는 겸허함을, 장엄하게 펼쳐지는 일출의 장관 앞에서는 상서(祥瑞)의 기운을 맛볼 수 있습니다. 밤에 대피소 산장의 야외에서 누워보는 영롱한 별들은 덤입니다.

 

그러나 역시 사람이 있어야 ‘산’이지요. 혼자서는 외롭습니다. 산을 좋아한다는 어진 이의 손을 잡고 산에 올라보세요. 오르막길의 알싸한 통증은 나눠 이고, 내리막의 설렘은 같이 만끽해 보세요. 정직함으로 밀고 간 길은 어느새 정상으로 그대를 데려다 놓을 겁니다. 그때, 말갛게 된 일행의 얼굴을 보세요. 좋았던 사람이 더 좋아질 겁니다. 그리고 멀리 세상을 굽어보세요.

풍진(風塵) 가득한 세상에서 치열하고 팍팍하게 살아가는 당신의 모습이 보일 거예요. 어차피 그런 게 삶 아니냐고요? 내일이면 다시 전쟁터 아니냐고요? 그럴지도 모르죠. 잠시나마 이런 평화라도 있어야지요. 그래야 또 살지요.

 

일요일 오전에 시간 되십니까?

 

조영갑/언론홍보학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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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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