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필리핀 시장-그들과 함께 한 따뜻한 설
대학로 필리핀 시장-그들과 함께 한 따뜻한 설
  • 이건호 기자
  • 승인 2010.03.09 18:58
  • 호수 126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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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지만 얼굴엔 웃음 가득

<편집자주>
영화 <로니를 찾아서>. 이 영화는 한국인들이 같은 동양인들에게 갖고 있는 우월감과 배타적 태도를 잘 묘사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무시하는 그들 대부분은 학력도 높고 전문 기술도 갖고 있지만 가난하고 못사는 나라 사람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견뎌내야 했다. 대학로 혜화성당 근처에 밀집해 있는 필리핀 시장은 불법인 것을 알면서도 장사를 허용해주고 있는 곳이다. 최근 이곳 시장을 없애려는 구청과의 마찰로 언론의 조명을 받기도 했던 필리핀 시장을 찾아가 봤다.

 

▲ 영어공부는 필수. 손님이 없을 때면 영어책을 꺼내서 공부를 한다.

2월 14일 설날. 며칠간 계속해서 내린 눈과 비로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명절까지 겹쳐 장이 열릴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영하 6도까지 떨어진 기온에 매서운 바람이 기자의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처음 도착한 필리핀 시장은 생각보다 협소했다. 약 100m가량 인도에 펼쳐져 있는 시장의 모습에 약간의 실망감을 감추지 않을 수 없었다. 도착한 시간은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이제 막 장터가 열려서인지 활기찬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 한국 사람은 거의 볼 수 없었고 대부분이 필리핀 사람들이었다. 시장에서는 생필품부터 먹을거리까지 다양한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장터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두 필리핀 남자가 파는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카드 같아 보이는데 무슨 물건인지 감이 안 왔다. 다가가서 인사를 하니 반갑게 맞아줬다. 무슨 물건이냐고 물어보니 전화카드라고 했다. 한 개에 11,000원하는 전화카드인데 9,700원어치 통화가 가능하다고 한다. 한 개 팔아 1,300원을 버는 것이다. 인상이 좋아보여서 말을 걸어봤다. 한국에 온지는 2년 가까이 됐고 평일에는 휴대폰 케이스 만드는 일을 하고 주말에는 이렇게 전화카드 파는 일을 한다고 했다. 아침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장사를 하는데 오늘은 설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줘서 좋다며 밝게 웃었다. 그런데 얘기하는 도중 갑자기 “죄송합니다. 저희가 공부를 해야 해서요”라고 한다. 둘이 책을 꺼내서 보는데 무슨 책이냐고 물어보니 영어 책이란다. 두 사람은 생각보다 학력이 높은 사람들이었다. 필리핀에서 대학도 나왔고 영어 실력도 꽤나 출중했다. 대학까지 나와서 왜 노점상을 할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다.

인사를 하고 안쪽으로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상점 사람들을 만나봤다. 가장 먼저 만난 사람에게 말을 걸었는데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

▲ ▲대학로 혜화성당 인근의 필리핀 시장은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그 사람은 온지 얼마 안돼서 한국말 못해요.”
옆에 있는 아주머니가 대신 대답을 해줬다. 유창한 한국말 솜씨에 타지에서 동향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그 아주머니가 파는 물건은 주로 생선이었다. 무슨 생선인지 구분이 안가서 자세히 보니 굉장한 크기의 붕어였다. 아주머니는 필리핀 사람들이 붕어 요리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잘 팔린다고 했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이 아주머니는 한국에 온지 벌써 20년째라고 했다. 36살에 한국에 왔으니 벌써 56살이다. 고등학교 3학년 딸도 있는데 한국에서 같이 살고 있다고 했다. 조금 더 얘기를 들어보니 이 아주머니는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다문화가정을 꾸려 살고 있었다. “남편은요?”라고 물어보니 “놀러갔어”라고 했다. ‘부인은 장사하는데 놀러가다니 나쁜 사람이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죽었어”라는 말이 들려온다. 서둘러 죄송하다는 말을 건네는데 아주머니는 괜찮다며 웃었다. 오늘 물건이 많이 팔려서 기분이 좋다고 했다. 옆에 괴상하게 생긴 생선들이 랩으로 꽁꽁 포장돼 있는데 이것들은 필리핀에서 가져온 것들이라고 했다.
▲ 밥 먹을 시간도 없다! 밥은 자리에서 대충대충.

조금 더 내려가다 보니 꽤나 거칠게 생기신 아저씨가 급하게 밥을 먹고 있다. 자리에 서서 한 가지 반찬에 밥을 먹는데 너무 급하게 먹은 탓인지 서둘러 물을 마신다. 둘러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제대로 갖추지 않고 끼니를 때우고 있다. 추운 날씨 탓에 난로를 끼고 몸을 녹이고 있는 사람도 많았다. 평일의 고된 일 때문인지 약간은 지쳐보였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두 명에 한명 꼴로 한국말을 유창하게 했다. 낯선 사람이 말을 거니 경계할 만도 한데 신분을 밝히지 않아도 웃으면서 반겨주었다. 사진을 찍거나 이름을 물어보는 것에 대해서 조금 싫은 기색을 나타내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기분 좋게 응해줬다.

그런데 택시 승강장 근처에서 한국사람 몇 명과 필리핀 장사꾼들이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살펴보니 한국 사람들은 줄자를 이용해 거리를 재고 있고 필리핀 사람들은 무언가 따지고 있었다. 대충 내용을 들어보니 상가 크기를 줄이려는 것 같았다. 한국 사람들은 상인연합회에서 나온 사람들이었는데 그곳에 있던 상인연합회 박일선 회장은 “말도 못 알아듣고 답답해 미치겠네”라는 말을 연발했다. 구청에서 명령이 떨어져서 어쩔 수 없다면서 크기를 줄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음식을 파느라 꽤나 덩치가 컸던 가게들은 다음 주부터 특단의 조치를 세워 크기를 줄여야 한다. 박 회장에게 자세한 사정을 물어보니 최근 구청 직원들이 바뀌고 관할이 지구대에서 파출소로 넘어가면서 이 곳 필리핀 시장을 없애려 했다고 한다.

“전에 있던 사람들한테 인수인계를 제대로 받았어야 했는데….”
이 곳 필리핀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문화가정을 꾸려 사는 사람들이다. 3D업종에 근무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인데 주말에 이렇게 나와서 장사하는 것이 분명 굉장한 고역일 것이다. 밥도 반찬 한 가지로 해결하고 그것도 없을 때는 소금을 뿌려 먹는다.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돈벌이 수단을 없애려 하는 것이 말이나 되나요. 다른 나라 사람이라고 해도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야죠. 우리나라 사람들도 외국에 일하러 나가면 좌판을 설치하고 장사한답니다. 시장을 없애겠다는 말에 필리핀 대사관에서도 항의하고 최근 언론에서도 계속 이슈화 되니까 구청에서 결국 분수대가 있는 곳과 택시 승강장 근처만 장사를 못하도록 바꿨어요.”

필리핀 사람들은 매주 이곳에서 이렇게 장사를 하며 혜화성당에 상주하고 있는 필리핀 신부와 함께 미사도 올린다. 또 인스턴트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이곳 필리핀 시장에서 일주일치 먹을 것을 사간다. 잠은 대부분 공장 근처 합숙소에서 잔다. 필리핀 사람들이 해를 끼치는 경우는 없냐고 묻자 박 회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워낙에 낙천적인 사람들이고 해를 끼치거나 하는 경우는 전혀 없다고 한다.
▲ 각종 먹을거리를 파는 주희(45 좌) 씨와 럴떼쑤(45 우) 씨.

이야기를 끝낸 뒤 출출함을 달래려고 음식을 파는 곳에 들렀다. 주희(45) 씨와 럴떼쑤(45) 씨 두 여자가 장사를 하는 가게였는데 마땅히 먹을 만한 것이 없었다. 스프링롤 같이 생긴 것을 골랐다. ‘룸삐아’라는 이 요리는 밀전병에 고기, 새우, 갖은 야채를 넣고 돌돌 말아 기름에 튀긴 음식인데 맛은 약간 싱거웠다. 하지만 양도 많고 하나에 천원밖에 하지 않아 배를 채우기에는 괜찮았다. 다음 주부터 이곳도 식당 크기를 줄여야 한다. 크기를 줄이고 장사에 필요한 물품들을 놓기 위해서는 스탠드를 설치해야 하는데 어떻게 할 계획이냐고 물어봤다. 하지만 걱정하는 나와 달리 주희 씨는 밝게 웃으면서 그건 다음 주에 생각하겠다고 했다. 오히려 장사하느라 2주 동안 미사를 드리지 못해 아쉽다고 하는데 참 낙천적인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Very delicious! 맛있게 꼬치를 먹고 있는 청년들.

12시가 가까워오자 시장은 사람들로 붐비고 활기를 띄었다. 상인들도 본격적으로 목청을 높여가며 손님들을 끌어 모았고 물건을 사는 사람, 먹을거리를 사서 근처에서 수다를 떨며 먹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지치고 힘든 모습 따위는 볼 수 없었다. 밝고 부지런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기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취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에서 취재 내용을 정리하고 있는데 구걸을 하던 시각장애인이 기자가 있는 칸으로 건너왔다. 칸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거나 딴 짓을 했다. 우리에겐 익숙한 광경. 그런데 내 옆에 있던 동남아 출신으로 보이는 청년이 주머니에서 얼마 안 되는 동전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산다는 사람들이라는데 난 조금 ‘오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동전을 건네면서 그는 밝게 웃어주었다. 그 순간 무언가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구걸하는 사람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낼 여유조차 없었던 우리들과 달리 타지에서 온 이 청년은 그에게도 미소를 보낼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있었다. 그는 지하철 이 칸에서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었다. 좋은 집, 좋은 차, 명품이라는 것들 속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없는 우리는 늘 그들보다 가난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 힘든 삶이지만 미소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의 삶에서 우린 많은 것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그의 미소가 무척이나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건호 기자 GoNoiDa@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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