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선-부석사 여행기
영동선-부석사 여행기
  • 이보연 기자
  • 승인 2010.03.11 22:59
  • 호수 126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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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만 보고 달려오진 않았나요? 스위치백처럼 한번쯤은 거꾸로 가보세요.

앞 만 보고 달려오진 않았나요? 스위치백처럼 한번쯤은 거꾸로 가보세요.

자유로운 시간이 부족했던 고교시절 마냥 부럽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떠나는 기차 여행이었다. 기차 중에서도 차창 밖으로 파란 바다가 보이는 기차를 타고 싶던 중 우리나라에 딱 한 곳뿐인 영동선 스위치백 구간이 나선형 터널 완공으로 사라진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스위치백 구간이 있는 영동선을 타면 바다까지 볼 수 있으니 기차여행으로 영동선을 결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무료하기만 했던 겨울방학을 새롭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에 무작정 영동선의 시작역인 경상도 영주로 향했다.


영주역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2시 30분 영주에서 출발하는 영동선 첫 차를 타기위해 영주역에서 밤을 새기로 결정했다. 다행스럽게도 영주역에는 침대객차가 있었다. ‘내일로’ 기차 여행객을 위한 침대객차였지만 친절한 승무원 언니 덕분에 하룻밤을 침대객차에서 편히 묵을 수 있었다.

영주역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떠나는 것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영주하면 예전 MBC프로그램인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의 추천도서「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부석사가 유명하다기에 들러보기로 했다. 부석사는 영주역에서 버스를 타고 40분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는데 우수라 그런지 따스한 봄기운을 마음껏 느낄 수 있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 바라보는 경치는 눈 덮인 소백산맥이 겹겹이 펼쳐져 있어 장관을 연출했다. 처마 끝에 달린 풍경의 밝은 소리를 들으며 옛 정취가 가득한 부석사를 산책했다. 덕분에 나태하고 지루했던 겨울방학의 찌꺼기들을 산사에서 고요히 맞는 봄바람에 훌훌 털어 버릴 수 있었다.

영주에서 영동선의 마지막 역인 강릉역까지는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점심으로는 사과가 끝내주기로 소문난 영주사과를 먹었는데 이 시기 흔히 맛 볼 수 있는 푸석한 사과가 아니라 갓 수확한 듯 신선하고 꿀이 가득한 꿀사과였다. 강릉까지 가는 내내 잠을 청하고 싶어도 시시각각 변하는 차창 밖의 풍경 때문에 잘 수가 없었다. 도시는 눈의 흔적조차도 다 사라져 버렸지만 강원도의 산과 나무들은 깊은 겨울인양 소복이 눈을 덮고 있었다. 따스한 봄 날씨에 보는 설경은 더할 나이 없이 멋졌다. 가족여행을 온 사람들도, 데이트 나온 연인들도 이때만큼은 주변에 있는 사람보다 아름다운 경치에 더 매료된 표정이었다.

이 때 갑자기 열차가 잠시 멈추더니 천천히 뒤로 가기 시작했다. 흥전역부터 나한정역까지의 구간은 말로만 듣던 기차가 거꾸로 가는 스위치백 구간이었다. 스위치백 운영은 높이의 차이를 가진 두 지역에 선로를 부설할 때 쓰이는 방식이다. 열차가 왔던 길을 다시 가는 것 같은데 한 역을 지나 다음역인 도계역에 도착했다.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도계역에 도달하니 고도가 높아서 인지 귀가 멍멍해졌다. 신기하다고 느낄 때쯤 기차는 잠시 정차한 뒤 앞으로 가기 시작했다. 영동선 193Km의 스위치배 영동선에서 기대했던 1.5Km의 스위치 백 구간은 불과 5분에 지나지 않았다.

뒷자리에 앉은 초등학생 아이와 함께 창밖을 보며 신기한 광경에 잠시 동안 동심으로 돌아간 듯 했다. 하지만 스위치백 구간은 올해 안에 완공 예정인 최장 터널 때문에 이 구간과 이 구간에 있는 간이역인 흥전역과 나한정역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고 한다. 그동안 큰 관심이 없었던 것이지만 사라진다고 하니 어두운 터널 대신 동화 같기만 한 이 스위치백 구간이 오래도록 남아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내리진 못했지만 해돋이와 모래시계의 촬영지로 유명한 정동진역과 동해바다가 있는 동해역은 다음번에 꼭 방문해 건널목을 건너보고 싶다. 방학 첫 날에 세웠던 계획들을 미뤄둔 채 게으름만 피던 내게 이번 기차여행은 부지런함과 낯선 환경에 대한 적응력을 길러주고 도전정신을 되새겨주었다. 날씨마저 좋았던 1박 2일의 여행이 스무 살의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해 준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이보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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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youn111@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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