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유득공의 『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
(2) 유득공의 『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
  • 김철웅(동양학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10.03.16 21:59
  • 호수 12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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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참고하고 검토하여 다시 주석을 붙이니 나도 내 버릇에 웃음이 나온다-

 

▲[이십일도회고시] 재편본의 표지

 

▲청의 주학년(朱鶴年)이 유득공의 시를 그림으로 표현한 [유득공시의도]


이덕무는 자기 자신을 두고, “말을 잘하지도 못하고 세상 일도 잘 알지 못한다. 남들이 욕해도 따지지 않고 칭찬해도 뽐내지 않으며, 오로지 책 보는 것만을 즐거움으로 여긴다. 심오한 뜻을 깨달게 되면 너무 기뻐서 일어나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고, 혼자 중얼거리기도 한다. 사람들이 ‘책만 보는 바보’라고 해도 이를 기쁘게 받아들인다”라고 표현하였다. 이덕무는 자신을 ‘책만 보는 바보’라 하였지만, 그의 벗들도 책벌레이긴 마찬가지였다. 이덕무와 그의 벗들, 즉 박제가, 유득공, 서이수 등 '네 사람의 규장각 검서'는, 문학에도 뛰어나 한시사가(漢詩四家)로 불리웠다. 이들 중 유득공(1749~1807)은 『발해고』의 저자로서 우리에게 친숙한데, 통일신라와 발해를 남북국으로 이해하게 된 것은 바로 유득공 덕분이다.


유득공은 서자 가문 출신으로 넉넉하지 못한 청년기를 보냈다. 『이십일도회고시』(이하 『회고시』)의 서문에, “낡은 집 세 칸에 밥 짓는 연기가 여러 번 끊겼다”고 한 것을 보면 생활이 곤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의기는 소침하지 않았다”고 덧붙인 걸 보면 학문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회고시』를 완성한 이듬해에 유득공은 정조에 의해 규장각 검서관에 임명됨으로써 생활고에서 벗어났다. 그는 이때의 생활을 “녹봉은 입고 먹기에 충분했다”고 만족해 했다.

유득공은 『회고시』에서 단군조선부터 고려까지 21개 나라와 도읍의 사적을 고증하고 이에 대한 감상을 43편의 시로 표현했다. 각 편의 서술 내용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 부분에는 건국의 유래와 연혁을 적고, 그 뒤에 감상을 시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말미에는 주요 사실과 유적에 대해 주석을 붙였다. 내용을 서술하는데 있어 유득공은 『사기』, 『한서』 등의 중국측 사서를 먼저 인용하고, 이어서 『삼국사기』, 『고려사』 등 우리나라의 문헌을 인용했다. 유득공이 이런 서술 방식을 택한 것은 우리나라 역사서에는 고대사 부분이 많이 누락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득공은 『해동역사』의 서문에서, 고려 이전 시기를 다룬 우리나라 역사서는 너무 소략하기 때문에 중국의 역사서에서 우리나라 관련 자료를 수집, 정리하려고 했다는 생각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생각이 ??회고시』에 반영된 것이다.

『회고시』는 을지문덕, 양만춘, 연개소문 등 영웅의 행적을 소개하였고, 김생의 글씨와 솔거의 그림 등을 통해 문화의 긍지를 나타내었다. 그 이외에 고유의 풍속과 유적 등을 소개하고 시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망국에 대한 비평과 흥망성쇠의 무상함이 자주 등장하고 있는데, 이런 감성적이고 애상적 태도는 『발해고??와 다른 양상이다.

『회고시』는 조선과 청의 문화 교류 측면에서도 큰 역할을 하였다. 당시 유득공이 활동하던 18세기는 홍대용, 박지원 등 일부의 지식인들이 청(淸)의 문물을 수용하려는 ‘북학’의 시기였다. 이와 더불어 청에서도 조선의 문학 작품이 활발히 소개되어 조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었다. 1778년에 처음 완성된 『회고시』는 이해에 이덕무와 박제가에 의해 청나라 문인들에게 소개되어 주목을 받았다. 이때 반향조는 “후세에 반드시 전해질 작품이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나빙은 유득공에게 『회고시』를 받고자 했으나 이를 얻지 못하자 매우 섭섭해 했다고 한다. 당시 유득공을 비롯한 이른바 ‘북학파’의 활동 영역은 조선을 뛰어넘어 중국에까지 확장되어 있었다.

유득공은 1792년에 다시 책을 참고하고 주석을 붙였다. 이것으로 보면 처음에 펴낸 ‘초편본’과 최종 완성본인 ‘재편본’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대학에는 이덕무가 교정을 본 ‘재편본’ 필사본이 다수 소장되어 있다.

김철웅(동양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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