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장릉에 배식할 신하에 대한 논의
(38)장릉에 배식할 신하에 대한 논의
  • 김문식(사학) 교수
  • 승인 2010.03.23 15:35
  • 호수 12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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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절, 국가 기록이나 장릉지에 근거가 있어야

정조, 단종의 충신들 표창하며
자신에게도 그런 충신 나오길 기대

지난 날 우리 성조(聖祖)께서 사육신의 사당을 장릉의 홍살문 안에 그대로 두라고 하셨으니, 아 거룩한 일이다. 이제 배식(配食)하는 전례를 거론하여 선왕의 뜻을 계승하는 단서로 삼고자 한다. 제단에 제사지내는 것과 묘정(廟庭)에 배식하는 것은 차이가 있지만 제사를 지내는 것은 동일하다. 두 대신의 논의에서 한 사람은 간단한 것이 좋다고 했고, 한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시행할 수 없다고 했는데, 모두 신중하자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지금의 논의에서는 절의를 지키다 죽은 사람으로 그 행적이 국가 기록이나 『장릉지(莊陵志)』에 나오는 사람으로 결론지어야 한다. 이를테면 6인의 종실, 5인의 왕실 친척, 3인의 재상, 3인의 고위 관리, 2인의 운검(雲劍), 사육신과 그 아버지나 아들 가운데 행적이 뛰어난 사람, 허후와 허조, 박계우(朴季愚), 문경공(文敬公, 허조)과 문헌공(文獻公, 박연)의 아들이나 손자로 행적이 남다른 사람, 순흥부사 이보흠(李甫欽) 등이다. 이상 31인을 배식하는 것으로 결정하며, 제사 의식에는 축문이 있다. (중략)


아, 죽음을 무릅쓰고 의리를 떨쳐 단종께서 돌아가셨을 때 힘을 다한 사람은 엄 호장(嚴戶長) 한 사람뿐인데, 절의를 지키다 사망한 사람들의 대열에 들지 않았다고 하여 이 사람을 차마 배식에서 빼놓을 수 있겠는가? 김 문정공(文正公)이나 송 문정공(文正公)을 종묘에 추가로 배향할 때에도 확실한 근거에 바탕을 두었으니, 참판으로 증직된 엄흥도(嚴興道)를 31인의 신위 다음에 넣도록 하라. 또 처사 김시습(金時習)과 태학생 남효온(南孝溫)은 세속을 떠나 자신을 다스리며 몸을 깨끗이 하여 더럽히지 않았다. 맑은 표식을 고수하여 백세를 움직일 만한데 이 사당의 제사에서 빠트린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큰 결례이다. 두 신하를 모두 창절사(彰節祠)에 배향하라고 예조에 알려라.

 

 

▲<월중도>에 나오는 장릉. 사진 중앙에 32인을 모신 충신사(忠臣祠)가 보인다.

정조가 1791년(정조 15)에 작성한 ‘배식할 신하들을 논의할 때 수합된 의견에 대한 비답(配食諸臣取舍收議批)’이다. 단종이 사망할 때에의 지위는 노산군(魯山君)이었는데, 그를 노산군에서 노산대군(魯山大君)을 거쳐 단종으로 복권시킨 사람은 숙종이었다. 정조는 1791년 정월에 노량진에 있는 사육신의 사당에 승지를 파견해 제사를 지내주었는데, 이후 단종에게 충절을 지키다 사망한 사람들을 모두 조사하여 단종의 묘소인 장릉에 배식(配食)하게 했다. 여기서 ‘배식’이란 배향(配享)과 같은 의미로 장릉에 별도의 제단을 만들어 제사지내는 것을 말한다. 이 글은 정조가 장릉에 배식할 인물을 의논하면서 두 명의 고위대신인 이복원과 채제공의 견해를 듣고 최종 결론을 내린 것이다.


장릉의 경내에 사육신의 사당을 그대로 두도록 한 것은 숙종이었는데, 정조는 이 조치를 계승하여 단종에게 충절을 지킨 사람들을 추가로 조사하여 장릉에서 제사지내게 했다. 정조는 충절을 지킨 사람은 국가 기록이나 장릉지에 그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국가 기록은 단종실록과 세조실록을 가리키고, 장릉지는 장릉에 관한 기록들을 정리한 책자로 1711년(숙종 37)에 간행되었다.


정조는 신하들이 올린 자료를 검토하여 31인의 충신을 선정했는데, 이들은 모두 세조 때에 단종에 대한 절개를 지키다가 사망한 사람들이었다. 정조는 여기에 엄홍도를 추가하여 32인의 충신을 만들고, 김시습과 남효온은 사육신의 신주를 모신 창절사에 추가로 모셨는데, 이들은 세조에게 죽임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단종에게 충절을 보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엄홍도는 단종이 사망할 때 영월군의 호장(戶長)이었는데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여 매장했고, 김시습과 남효온은 단종이 사망하자 벼슬을 그만두고 평생을 야인으로 살았다.
정조는 이처럼 단종의 충신들을 표창하면서 자신에게도 그런 충신들이 나오기를 기대했다.

 

김문식(사학) 교수
김문식(사학)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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