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자원봉사에 중독되었습니다”
“저는 자원봉사에 중독되었습니다”
  • 이건호 기자
  • 승인 2010.03.23 17:56
  • 호수 12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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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 3만 2천시간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이해영(체육과·72졸) 동문

34년간 3만 시간 이상 동시통역 자원 봉사를 해 지난해 12월 세계 기네스협회 인증을 받은 이해영(체육과·72졸) 동문은 1972년부터 지금까지 하루 3시간 이상 동시통역 자원 봉사를 해오고 있다. 이 동문은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 등 굵직한 국제행사와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서 통역을 담당한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다. 2007년 12월 세계 기네스협회로부터 30년 자원봉사기록을 인증 받은 데 이어 작년에는 국민대표 61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경기도지사 표창,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국무총리상 등 이 동문은 상이 너무 많아 집이 박물관 같다고 한다. 이러한 상들 또한 나중에 기증할 생각이라는 이 동문은 우리나라를 아릅답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숨이 다하는 날까지 계속할 계획이다. 단대신문에서 이 동문을 만나 그의 아름다운 선행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통역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대대로 조상들께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셨어요. 도와줄 형편이 안 돼도 없는 사람을 도와주라는 것이 할아버지 유언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한국은행 직원이던 아버지가 일본 나고야로 발령받으면서 저는 7년 동안 국제학교에 다니며 영어와 일본어, 불어를 익히고 외국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습니다. 문법상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부딪히며 배운 것이죠. 1974년 미국 일리노이주 주지사이던 친구로부터 “한인사회와 의사소통을 위해 통역할 사람이 필요하니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미국으로 건너가 처음 통역 자원봉사와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의사소통이 안 돼 답답해하던 사람들이 나로 인해 서로 이해하고 환히 웃으며 악수하는 것을 보고 짜릿한 기쁨을 맛봤어요. 그때 ‘아 이게 내 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하루 3시간씩 봉사를 했는데 이것이 소문이 퍼져 1988년 서울올림픽 때 한국관광공사를 통해 추천이 들어왔어요. 이를 계기로 ‘스카우트’ 돼 통역 자원봉사자로 활약하게 됐습니다. 이후 2002 한·일 월드컵, 대전 엑스포, 이천 세계도자기 축제, 세계태권도대회까지 통역 봉사가 이어졌습니다.

▲통역 자원봉사를 하면서 힘들었을 때는 언제인가요.
봉사를 하기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나 4시간씩 버스를 갈아타고 하루 3시간 20분 이상 봉사활동을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남양주시 몽골문화촌, 다산 정약용 유적지, 용인 에버랜드, 수원화성 등 한국의 유명 관광지에 가 관광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어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많아서 귀가시간은 12시에서 1시 사이예요. 잠은 2시간 반에서 3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 합니다. 오랜 시간 이렇게 바쁘게 지내다보니 몸을 많이 버리기도 했어요.
오랜 시간 봉사활동을 지속하는 데 가족들의 역할이 컸어요. 봉사활동이라는 것이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무보수로 일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족들의 후원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입니다. 가족들은 내 일에 대해 ‘장하다’고 힘을 주었고, 아내는 옷장사를 하면서 내 뒷바라지를 해줬지요.

▲자원봉사를 하면서 힘들었던 반면 보람 있었던 순간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힘든 와중에도 물론 보람을 느낀 적이 많아요. 제가 한국관광공사 명예통역관으로 있을 때 일본인 관광객 40명이 민속촌을 관광하러 왔었습니다. 한국 문화에 흠뻑 빠진 그들은 장터에 가서 파전도 먹고, 막걸리도 한 잔씩 마셨어요. 그리고 퇴장 시간이 됐는데도 나오지 않아 가보니 술에 취해 짚더미에 누워 자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호텔까지 데려다 주고 다음날 콩나물국으로 해장까지 시켜줬어요. 그것이 인연이 되서 서로 친구가 되어 지금까지도 종종 만나곤 합니다. 또 지인들에게까지 제 소개를 해 그 분들의 친구들도 저를 찾아오고는 합니다.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 2005년 5월 성남시에서 열렸던 세계 태권도 대회에서 레바논 대통령 에밀 라후드의 딸 커리네 머씨의 통역을 맡았던 때예요. 대통령 딸이니 수행원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통역 일을 도맡아 커리네 머씨와 수행원들보다 가까이 지냈죠. 흐뭇했어요.
통역 봉사를 하면서 영어는 도구일 뿐이고 역사와 문화를 정확히 통역하려면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홍보 책자 이상의 지식을 얻기 위해 도서관을 찾아 밤늦게까지 공부를 했습니다.
사실 30년 이상 통역을 하면서 우리나라가 문화적으로 많이 발전했음을 실감하고 있어요. 88올림픽 때 통역하러 외국인 옆에 가까이 갔는데 저를 마치 사기꾼같이 쳐다보며 불편해 했어요.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을 문화적으로 낮게 보던 시절이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한국적인 멋’에 푹 빠져 몇 번씩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도 많고 자원봉사 서비스도 세계 최고라는 칭찬을 듣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달라진 위상을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자원봉사기록을 검증하는 데에도 굉장한 시간이 걸렸다고 하던데요.
친구의 권유로 봉사활동 증서를 모으게 됐어요. 확인서를 일일이 장관, 차관, 대통령이 인정해줘야 하는데 인증 받는 작업이 가장 힘들었어요. 30년간의 자원봉사기록을 검증하기까지 3년이 걸렸어요. 기네스 북 ‘역사와 사회-사람과 장소’ 분야에 ‘세계 최장기간 최다시간 통역 자원봉사’로 인증 받던 2007년 12월의 감격을 잊을 수 없어요. 저의 봉사시간은 3만 2천여 시간이에요. 이것은 종전 이 분야의 기네스북 기록 보유자였던 일본인이 2만 7천6백50시간인 것에 비해 4천여 시간이나 더 많은 시간입니다.

▲통역 자원봉사 외에도 여러 활동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2007년 5월 ‘자원봉사를 대중화하는 데 지도층 인사들이 솔선수범하자’는 취지의 경기도 ‘노블레스 오블리주 1365’에 가입해 1년 365일 자원봉사를 하기로 약속했어요. 현재 경기도 자원봉사센터의 홍보대사로 그 약속을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작년 9월 제헌절 61주년을 맞아 국민대표 61인에 선정됐어요. 처음 국민대표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의 노력을 나라에서도 인정해주는구나’하는 생각에 참 뿌듯했습니다. 국민대표로 선정돼서 책임감이 크고 더욱 열심히 헌신하여 우리나라에 보탬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라디오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싶지만 그 방법을 몰라 묻는 사람들에게 자원봉사를 안내해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학 구성원들을 위해 좋은 말씀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최근 저의 가장 큰 관심사는 독도 문제입니다. 통역봉사를 하면서 만나는 외국인들에게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강조하고 있어요. 한국이 아직도 예전의 가난하고 힘없는 한국인 줄 알고 일본이 장난치는데 이러다 큰 코 다칠 수도 있어요. 조만간 세계의 자원봉사자들에게 ‘독도는 한국 땅’임을 알려달라고 정식 요청할 예정이에요. 때가 때이니 만큼 앞으로는 더 열심히 외국인들에게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설파할 것입니다.
학생들에게는 주변에 관심을 갖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봉사를 하라고 권하고 싶어요. 우리 주변에 독거노인이 굉장히 많습니다. 학생들은 유흥가를 찾으며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라면 한 박스라도 갖고 독거노인을 찾아가 헌신한다면 학교 명예를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봉사는 스스로 찾아서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4년 동안을 자원봉사로 채워온 제 삶이 꿈만 같습니다. 바쁘게 생활하다 보니 나이도 잊을 때가 있어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내게 가장 큰 행복함을 주는 이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이건호 기자 GoNoiDa@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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