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외딴 섬, 개포동 구룡마을 판자촌”
“서울의 외딴 섬, 개포동 구룡마을 판자촌”
  • 고민정 기자
  • 승인 2010.03.30 12:08
  • 호수 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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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외딴 섬, 개포동 구룡마을 판자촌”


■‘난장이들의 마을’은 여전히 울고있다


양재대로 남측 대모산과 구룡산 경계에 위치한 구룡마을은 1980년대 말 서울올림픽 때 도시 정비 명목으로 서울 외곽으로 대책 없이 밀려나고 쫓겨난 철거민들이 모여 이룬 달동네이다. 떠나고 죽고 다시 떠나기를 반복하며 지금 이곳에는 1300여 가구 2000명 정도가 대체로 가로·세로 2~3미터 정도의 방 한 칸짜리 집에서 살고 있다. 30년 전 소설가 조세희가 눈물을 흘리며 아프게 그려낸 ‘난장이들의 마을’은 여전히 더 깊은 고통과 슬픔을 안은 채 고독한 섬처럼 울고 있다. <단대신문>은 서울의 가장 부유한 지역 옆에서 마지막 남은 무허가 판자촌 주민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의 실상을 살펴보기 위해 마을 안으로 직접 찾아가봤다. <편집자 주>

■구룡마을 주민들의 힘겨운 겨울나기


주변 곳곳에 남아 있는 춘설(春雪)만 보더라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이 절로 떠오르는 요즘이다. 때 아닌 폭설로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다’는 말이다. 3월의 끝자락에도 봄을 시샘하려는 듯 꽃샘추위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기상 전망에 의하면 이런 꽃샘추위가 앞으로도 더 있을 것이라고 예보하면서, 자연스럽게 벚꽃의 개화 시기도 5-6일정도 늦을 것이라고 한다. 영하권으로 내려간 수은주가 다시는 영상으로 올라오지 않을 것 같은 맹추위가 계속 될수록 걱정되는 곳이 있다. 바로 며칠 전, 기자가 직접 찾아간 서울에 마지막 남은 무허가 판자촌, 구룡마을이다.
카메라에 삶의 애환이 담겨져 있는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담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방문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마을 입구 주차장에서부터 낯선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에 가득 찬 주민들의 눈초리에 기자는 여러 번 가방 속에서 카메라를 꺼냈다가도 다시 넣곤 하였다. 작은 셔터 소리만 들려도 달려와 왜 찍느냐고 따져 묻는 주민도 있었다. 경계태세로 가득한 그곳은 조용하다 못해 쥐죽은 듯 고요하였다.
좁은 골목길에는 하나같이 낮은 건물, 아니 건물이라 말하기에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그야말로 판자로 세워놓은 집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버티고 있었다. 미로처럼 얽혀있는 골목 사이로는 한 사람이 채 다닐 수 있을 정도였고 꾸역꾸역 넣고도 집 안에 다 들어가지 못한 갖가지 생활도구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골목은 들어갈 엄두도 못 낼 만큼 비좁았다.
처음 보는 풍경을 말없이 앵글에 담으면서 문득, 낯선 이방인들에게는 그저 호기심에 그치겠지만 정작 그곳에 사는 이들에겐 삶의 현장이고, 초라한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으리란 생각이 들어 사진을 제대로 찍기가 어려웠다.
지하철을 타고 구룡역에서 내리면 바로 올려다 보이는 빌딩숲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구룡마을 주민들은 무허가건축물이라는 이유로 주소마저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기초적인 주거환경도 열악한 상태로 삶을 겨우겨우 영위하고 있다. 서울의 가장 부촌인 강남의 중심지에서 주소가 없는 관계로 주민등록도 등재 되지 못한 채 자녀들의 학교 진학에 있어서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어려운 상황을 전해 듣고 눈으로 직접 본 60-70년대를 연상케 하는 구룡마을의 모습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2010년 11월 G20 개최국으로서 ‘국격’이 운운되는 시대에 생뚱맞게도 기자가 서울의 한 귀퉁이에서 본 것은 아프리카 케냐 난민촌과 다를 바 없이 방치된 마을이었다.
비닐, 천쪼가리, 판자 등 온갖 버려진 것들로 얼기설기 지어진 지붕 위에는 이곳 주민들보다 더 피둥피둥 살이 찐 고양이들이 제 세상인 냥 활보하고 다녔다.
고양이들의 노는 모습을 촬영하다 구멍가게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할아버지 두 분을 만나 조심스레 인사를 건네 봤다. 두 노인은 폭등한 LPG 값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근심 가득한 얼굴로 하염없이 담배연기만 허공으로 내뿜고 있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을 LPG가스와 연탄으로만 나야했던 그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어서 빨리 추위가 물러나고 따뜻한 봄이 오는 것이라 했다.


“괜찮았지. 그때는 못 살아도 나눠줄 마음은 있었으니까”

■삶의 마지막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한 전쟁


타워팰리스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인접해 있는 초라한 외관과는 달리 구룡마을은 강남에서 마지막 남은 '금싸라기' 땅으로 불린다. 때문에 지난 99년부터 개발업자들이 이곳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주민들 간에 심한 갈등을 빚어왔다. 그래서일까 마을에 머무르는 동안 이방인을 마주하는 주민들의 따가운 경계의 눈초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심한 경계심과 곳곳에서 느껴지는 ‘전투(?)’의 흔적, 일부 훼손된 채 남아있는 마을회관들, 몇 집 건너마다 현관문에 붙어있는 '폐쇄조치' 표시판. 오래 전부터 재개발 열풍으로 몸살을 앓아온 곳이라지만 며칠 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대체 구룡마을을 둘러싸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기자는 궁금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마을 입구에 있던 마을회관으로 찾아갔다. 그곳에는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있었다. 그곳에 있던 부녀회장에게 인사를 하고 방문목적을 설명하자 기자, 경찰, 학생, 사진작가 등 하루에도 수 십 명의 사람들이 방문해 귀찮아 죽겠다는 뉘앙스를 풍기면서도 마을의 현 상황에 대해서 꽤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정부의 정책에 떠밀려 형편이 넉넉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 하나 둘 지어진 판잣집은 어느 덧 수 천여 가구를 이루고 적지 않은 주민들이 살고 있음에도 행정기관 서류상에서 이들의 존재를 찾아보기란 힘들다. 집들이 모두 무허가 건물인 탓에 건축물들이 등기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주민들 개개인의 주민등록도 이곳으로 되어 있지 않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공식적인 치안, 행정, 복지 서비스 등도 이들에게만큼은 예외다. 결과적으로 문서상에는 구룡마을 주민은 한 사람도 없는 셈이다.
'복지혜택'은 둘째였다. 불법 거주지에 산다는 이유로 강남구청으로부터 토지변상금을 부과받기도 했었다. 관공서에서 여러 번 철거에 나설 때면 으레 주민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혔다.
주민들의 편의를 들어줄 만한 관공서가 없었기 때문에 주민들이 자치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우여곡절 끝에 '마을자치회'와 '주민자치회'로 나뉘어졌다. 두 자치회는 한때는 중장비를 동원해 서로의 회관을 부술 정도로 갈등의 골이 깊다. 기자가 방문하기 얼마 전 벌어진 몸싸움도 이 두 자치회 간에 일어난 것이다. 두 단체는 서로가 개발이익을 노린 투기세력이라고 비방하고 있다.
강남 속의 판자촌이란 태생적 한계에다 그마저도 두 세력으로 갈라진 마을의 현실로 인해 구룡마을은 자주 언론의 조명을 받아왔다. 그렇게 가난하게 살았지만 적어도 재개발 열풍이 불던 99년까지는 살 만했다는 것이 부녀회장 아주머니의 씁쓸한 회상이었다. 아주머니는 “재개발 붐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동네 어르신들과 아이들을 위해 아침마다 교회에서 빵과 우유를 나눠주는 일에 동참했다”며 “지금은 그마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응달에도 햇빛 드는 날 오길


서울시민이면서 서울시민이 아닌 사람들. 강남구에 살면서도 강남구 주민이 아닌 사람들. 이곳은 그야말로 서울의 외딴섬인 것이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남의 토지를 불법점유함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오죽했으면 이곳까지 밀려와 이렇게 살고 있겠는가. 환경적이지도 못하고 도시적이지도 못한 달동네 구룡마을. 이곳 주민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한 가지다. 이곳 마을에 고층아파트 대신 생태공원을 조성을 하고 이곳 주민들에게도 주거지를 조성해주는 것. 그래서 쓰레기로 몸살을 앓아 황폐해진 마을이 생태계복원이 되고 주변 아파트 단지의 주민들과도 어울려 살 수 있는 마을로 거듭나길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이 낡고 비루한 마을에도 조만간 봄이 찾아들 것이다. 봄이 오면, 이곳에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에게도 희망이라는 꽃이 피어났으면 좋겠다. 개발과 건설에 ‘과도하게’ 능한 대한민국 서울시가 ‘생색내기’와 ‘홍보’ 좀 그만두고 우리 도처에 응달로 존재하는 ‘구룡마을’을 제발 돌봐주길 바란다.

고민정 기자 mjko921@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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