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정조 명찬(命撰), 『탐라빈흥록(耽羅賓興錄)』
④ 정조 명찬(命撰), 『탐라빈흥록(耽羅賓興錄)』
  • 김철웅 연구원
  • 승인 2010.03.30 21:05
  • 호수 127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먼 곳에 살아도, 가까운 곳에 살아도 똑같이 나의 백성이다

 작년 2월에 정조(1752~1800)가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 297통이 공개되어 학계는 물론 일반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정조 독살의 배후로 오해를 받아왔을 만큼 적대적인 관계였던 심환지에게 정조가 은밀히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도 놀랍거니와, 그 표현도 지금까지 우리에게 각인된 ‘성군(聖君)’ 정조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내용을 편지에 담고 있어 모두를 놀라게 했다. 편지에서 정조는, “입에서 젖비린내 나는 놈!”, “정말 어떤 놈들이기에 감히 주둥아리를 놀리는가!” “참으로 호로 자식이라 하겠다” 등의 거친 표현을 써 가며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그러나 원래 편지가 사사로이 오고간다는 점에서 볼 때 격한 감정이 담겨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이 편지로 인해 정조의 새로운 면모가 밝혀졌지만, 역시 정조는 ‘실학의 시대’를 꽃피운 뛰어난 군주였다.

 정조는 10살 때에 세자인 아버지가 뒤주 속에 갇혀 죽은 것을 지켜보았고, 어려서 죽은 영조의 맏아들인 효장세자의 후사(後嗣)가 되어 왕통을 이어야 했다. 신하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영조가 정조에게 대리청정을 명령하자 좌의정 홍인한은 이를 극력 반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왕위에 오른 정조는 규장각을 설치하는 등 문치의 왕정을 펴 나갔다. 특히 인재 등용을 위해 각 도에서 행해지던 소과(小科)를 혁신하여 빈흥과(賓興科)로 이름을 고쳐 시행했다. 빈흥과는 정조가 지방의 인재를 직접 선발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제도였다. 즉 정조가 직접 과거 문제를 출제하고 이것을 규장각의 신하가 현지에 가지고 내려가 시험을 보게 한 후, 답안지를 가지고 와서 정조의 주관 아래 채점하여 합격자를 발표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하여 선발된 합격자와 그들의 답안을 책으로 간행하여 『빈흥록』이라 이름하였다. 『빈흥록』은 1791년부터 1800년까지 지속적으로 간행되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탐라빈흥록』이다.

▲ 탐라빈흥록의 첫 부분, 오른쪽 여백에 현일호에게 하사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탐라빈흥록』은 1794년(정조 18)에 제주도에서 시행한 문과와 무과의 급제자 명단, 그리고 이들의 시험 답안지를 모아 규장각에서 간행한 것이다. 정조는 심낙수에게 명을 내려 제주도로 내려가 1월 19일부터 3일간 과거를 시행하도록 하였다. 문과의 경우, 제1일에는 195명이, 2일에는 97명이, 3일에는 65명이 응시하는 등 큰 호응을 얻었다. 합격자 중에는 나이가 많은 유생들도 여럿 있었다. 변경붕은 39세의 나이에 응시하여 합격하였고 이듬해의 과거에서 급제하였는데, 그의 관직은 정3품인 이조참의에 이르렀다. 그리고 김명헌은 책문으로 차석을 하였는데, 이때 그의 나이는 81세였다. 그러면 정조가 제주도에서 빈흥과를 실시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정조는 시험에 앞서 제주 백성에게 윤음을 내렸는데, “아! 제주에 사는 모든 백성들아! 물길이 몇 천 리나 되는 곳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험한 길을 왕래하니 걸핏하면 몇 달이나 걸린다. 너희들이 멀리 있다고 혹시라도 소홀히 여긴다고 생각하는가. 먼 곳에 살아도 나의 백성이며, 가까운 곳에 살아도 똑같이 나의 백성이다. 너희들을 잊지 못하는 나의 마음을 아는가, 모르는가”라고 말하고 있다. 정조의 말에 잘 드러나 있듯이 스스로 소외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백성들을 포용하고 변방에서도 문치를 실현하고자 제주에서 빈흥과를 실시하고 이를 『탐라빈흥록』으로 편찬하였던 것이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탐라빈흥록』은 정조 18년 4월 27일에 규장각과 성균관 등을 비롯한 중앙 관아와 제주를 포함한 지방, 그리고 합격한 22명의 유생에게도 1부씩을 하사하였다. 우리 대학에서 소장하고 있는 『탐라빈흥록』은 시(詩)에서 차상을 차지한 현일호(玄日皓)가 하사 받은 것이다.            

                                                            
  김철웅(동양학연구소 연구원)

김철웅 연구원
김철웅 연구원

 dkdds@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