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뒤안길로 점점 사라지고 있는 인문사회과학서점들을 찾아
역사의 뒤안길로 점점 사라지고 있는 인문사회과학서점들을 찾아
  • 이민호 기자
  • 승인 2010.04.06 18:19
  • 호수 12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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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면', '인서점', '풀무질'



<편집자 주>

 1980년 5·18 광주항쟁 이후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인문사회과학서점'을 키웠다. 1980년대 말 전국에 150여 개로 웬만한 대학가에는 다 있었고, 지방 대도시로도 퍼져 나갔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성균관대 앞 '풀무질', 건국대 앞 '인서점' 등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인문사회과학 도서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서점은 서울대 앞 ‘그날이 오면’이 유일하다. 단대신문은 현재 인문사회과학서점이 처해있는 현실을 알아보고, 과거 인문사회과학서점이 우리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아직도 인문사회과학서점이 필요한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앞서 언급한 서점들을 찾았다.

#인문사회과학서점 ‘동지’들―인서점, 풀무질

건국대 후문 근처에 위치한 인(人)서점은 인문사회과학서적 뿐만 아니라 일반 서적과 어학 관련 책들도 함께 판매하고 있어 입구만 보면 여느 서점들과 전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이곳이 이른바 최초의 인문사회과학서점이다. 1982년 5월 처음 서점을 열었을 때는 사실 창작과 비평사, 문학과 지성사, 광민사 등 겨우 얇은 몇 권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동녘 등이 생기면서부터 책들이 자꾸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일반 책들도 팔았다. 이에 대해 심범석(69)대표는 “비록 일반 책들도 판매했지만 서점 간판이 ‘사람’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인문사회과학서점임을 명확하게 밝혀왔다”고 단언했다.

사실 인서점은 희귀한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복사하는 곳이기도 했다. 심 대표는 “학생들은 서점에 있는 복사기를 사용해 서로 자료나 문건을 나눠봤다”고 회상했다. 그러다가 문건이 외부로 유출되어 심 대표는 형사에게 붙들려가 조사를 당한 적도 있다고 했다. “형사들은 인서점에 ‘민’자가 빠진 거 아니냐고 물어 봤었다”며 당시의 경직된 사회상을 전했다.

심 대표는 대학생들이 모래처럼 뭉치지 못하고 몸치장이나, 어학, 해외여행 같은 개인적인 일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에 대해 질타했다. 이어 인문사회과학 서적에 대한 대학생들의 편협한 사고를 지적했다. “많은 대학생들이 인문사회과학 서적이라고 하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등 이념서적과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인문사회과학 서적은 삶을 더 좋게 만드는 책”이라고 심 대표는 말했다.

한편 성균관대 정문에 다다르기 전 오른편 길가에 풀무질 서점이 자리하고 있다. 허름하다. 4.5평 안에는 비집고 다니기도 힘들만큼 책들로 꽉 차 있다. 풀무질 서점은 85년 여름에 문을 열었다. 은종복(45) 대표는 동구사회주의 붕괴 후 인문사회과학서점이 내리막을 걷던 1993년 풀무질을 맡았다. 그가 4대째 주인이었다. 은 대표는 “그래도 그 무렵엔 <창비>를 30부 들여놓으면 바로 다 나갔다. 한 달에 100부 이상씩 나갔다. <이론>도 100부 이상 나갔다. 책도 인문사회과학서적 쪽이 훨씬 더 많이 나가 전체 판매량의 70~80%나 됐다. 그땐 빚 안지고 살았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지금은 학교교재가 50%, 수험서가 30%를 차지하고 인문사회과학 서적은 10% 정도밖에 안된다. 은 대표는 책방 유지를 위해 교재와 수험서를 취급했지만 그런 책이 매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실이 부끄럽다. 그래서 교재는 잘 보이지 않는 구석에 놓고 서가 대부분에 인문사회과학서적을 진열했다. 은 대표는 한해 5백만~1천만 원씩 빚을 지고 있다. 그래도 계속하는 이유가 있다. 은 대표는 “이 일이 그래도 돈에 눈먼 어른들이 망쳐놓은 세상을 맑고 밝게 바꾸도록 사람을 키우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인권운동사랑방 등 단체 수십 곳에 각각 몇 만원씩 다달이 수 십 만원씩 돈을 내고 있다”며 “이런 일 않는다면 책방 일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덧붙였다.

#서울대 앞 ‘그날이 오면’ 비판적 지성의 산실

석과불식(碩果不食). <주역>에 등장하는 이 말은 ‘씨과일은 먹는 것이 아니다’라는 뜻을 품고 있다. 세상의 초록빛이 다 사라지고 삭풍한파만 몰아치는 곤궁하고도 험난한 때가 ‘석과불식’의 때이다. 배가 아무리 고파도 마지막 씨앗은 먹으면 안 된다. 지금 굶주린다고 씨앗까지 먹어버리면 내일을, 새 봄을 기약할 수 없다. 석과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하는 희망의 씨앗이다. 석과불식의 지혜를 스스로 드러내주는 것이 대학가 인문사회과학 서점이다. 다시 말해 인간적 가치가 자본주의의 파고에 의해 끝없이 벼랑으로 밀려나는 우리 시대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인문사회과학서점이다. 서울대 녹두거리에 위치한 ‘그날이 오면(이하 그날)’은 마지막 남은 씨과일과도 같은 운명이다.

그날을 아끼는 이들에게 김동운 대표는 ‘그날 아저씨’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하다. 1990년대 이후 대부분의 인문사회과학 서점들은 경영난으로 하나둘씩 사라지거나 인문사회과학 서적 중심 구조를 포기했지만, 김 대표는 변함없이 그날을 지켜왔다. 말하자면 그날은 진보와 희망의 거점이었다. 학생들의 만남과 약속의 장소였고, 공부하고 사색하며 꿈을 꾸는 장소였다. 김 대표는 “항상 서점에 모여서 여러 가지 이론적 문제를 논의하고 세미나 할 책들을 찾아보고, 또 서점에서 만나서 하루의 일과에 대한 다음 계획도 세우고, 그런 진보적인 학생운동을 하는 학생들과 항상 함께 숨쉬던 곳”이었다고 그날을 소개했다. 그러고 나서 김 대표는 “그날을 지키는 것은 꿈을, 소망을, 미래를 지키는 일이며 인간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날은 수동적으로 학생들을 기다리는 곳만이 아니었다. ‘그날이 오면’ 김 대표는 1998년 ‘그날에서 책읽기’라는 인문사회과학 서평 전문지를 창간해 무료로 배포했다. 창간 이유에 대해 김 대표는 “서점 운영 수익을 학생들에게 환원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또 1998년 말에는 서점 2층을 세내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날개를 편다’라는 이름의 ‘세미나 카페’를 열었다. 이곳에서 학생들과 사회의 진보에 대해 고민했다. 애초에 돈벌이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 대표는 “대학가 인문사회과학서점들이 신자유주의적 무한 경쟁의 진군에 타격을 받아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면서 그저 왜소하게 남아있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며 “무엇보다도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자 했던 게 일차적인 목표였다”고 말했다. ‘미네르바 카페’는 2004년까지 운영됐지만, 서점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끝내 문을 닫고 말았다.

김 대표는 1997년에 ‘불온한 책’을 판매한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에 걸려 서점이 압수수색당한 적도 있다. 하지만 서점을 닫을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내가 파는 책들은 삶의 진정한 행복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담고 있고 책 속에 펼쳐진 세상은 내가 꿈꾸는 세상과 맞닿아 있다”고 김 대표는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날을 사랑해주시던 많은 사람들을 통해 2006년 후원회가 결성됐다. 40~50명으로 시작한 후원회는 4년이 훌쩍 흐른 지금 200명을 넘어설 정도로 커졌다. 그래도 아직 서점의 형편이 크게 나아진 것은 아니다. 임대료와 인건비를 빼면 크게 남는 것이 없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그날은 강연회, 책읽기 모임, 서평대회 등 풍성한 자리를 마련키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졸업생이자 그날 책읽기 회원인 이관우(34)씨는 “학창시절 지성의 중요한 영양분을 얻었던 것은 바로 그날이었다”며 여전히 그날이 인문사회과학 서점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그날이 스스로에 대한 성찰과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 자신의 삶과 사회에 관한 근본적인 고민을 이끌어내 주는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데 기여했으면 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 진보의 미래를 위한 씨앗

90년대 중반 이후 인문사회과학서적을 자양분으로 삼는 학회와 동아리가 급격히 줄고, 자본력을 앞세운 인터넷서점 및 대형서점들의 책값 할인 경쟁으로 도서유통 구조가 왜곡되면서 인문사회과학서점들은 연이어 문을 닫았다. 그렇지 않은 곳은 앞서 살펴본 건국대 앞 인서점과 성균관대 앞 풀무질처럼 서점의 성격이 적잖게 바뀌었다. 유일하게 인문사회과학 중심 구조를 포기하지 않은 곳이 서울대 앞 그날이지만 이마저도 외부 후원에 많이 의존할 정도로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렇듯 한때 자신의 가치관을 세우고 새로운 세상을 설계하는 데 나침반이 됐던 인문사회과학서점들이 쇠퇴의 길을 겪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삶, 그리고 사회의 현실에 대해 치열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인문사회과학서점은 존재는 한결같이 자신의 신념에 확신을 안겨주는 장소로 기능하고 있다. 그날에서 만난 임종석(29)씨는 “그날과 같은 인문사회과학서점의 존재는 사회 전체적인 문제들에 대한 인식을 갖고 구체적으로 삶을 살아갈 때에야 비로소 모든 사람의 행복과 개인의 행복이 같이 이뤄질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체득하게 한다”고 말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주어진 환경에 자신의 삶을 맞추면서 살아간다. 주류로 불리는 승자와 강자의 지배적 가치와 정보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검토할 어떤 기회도 잘 주어지지 않는다. 단지 경쟁에 내몰려 신음하며 똑같은 목표를 추구하면서 마치 젊은 나이에 벌써 인생의 전부를 성취하거나 인생의 낙오자인양 자신의 삶을 규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 하에서 사유의 요람이었던 그날과 같은 인문사회과학서점들은 자신과 사회에 대해 주체적으로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상황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그날이 문을 닫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단언하는 그날 김 대표의 언급과 개인주의에 빠진 오늘의 대학생들이 다시 인문사회과학서점에 모여 우리 사회를 걱정하며 토론하고 눈물 흘리게 될 날을 고대하고 있다는 인서점 심 대표의 말이 시대착오적인 생각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인문사회과학서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방증해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민호 기자 sksdlal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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