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경릉과 창릉에 참배하던 날
(40)경릉과 창릉에 참배하던 날
  • 김문식(사학) 교수
  • 승인 2010.04.13 14:46
  • 호수 127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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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릉에 참배하고 한확의 공을 표창함

우리 덕종대왕께서는 본손(本孫)과 지손(支孫)을 많이 두어 만년토록 이어질 튼튼한 기틀을 마련하셨고, 우리 예종대왕께서는 업적이 훌륭하여 백세토록 지켜질 제도를 만들어 주셨다. (중략) 소자는 마침 올해 구갑(舊甲)이 되는 해를 맞아 길일을 택해 경릉(敬陵)에 참배했는데, 슬픈 마음으로 향불이 피울 때 오르내리는 신령이 뜰에 가득하여 다시 뵙는 것 같았다. (중략)


경릉의 국구(國舅, 장인)인 좌의정 서원부원군 양절공 한확은 왕실의 인척이 되어 세상을 덮을 만한 공적을 이루었다. 한확은 19세에 국왕의 명을 받아 명나라 북경에 갔는데, 천자가 그 모습을 아름답게 여겨 특별히 봉의대부(奉議大夫) 광록시소경(光祿寺少卿)에 제수하시고, 그 글의 첫머리에 ‘돈실한 자질을 타고 났고 성실한 뜻을 품고 있다’고 했다. 영릉(英陵, 세종)이 왕위에 오르자 명 황제의 고명(顧命)을 받든 사신이 되어 돌아왔으며, 차례로 다섯 조정을 섬겨 정승의 지위에 올랐다.


동기는 두 사람인데 그중 한 사람은 성조 문황제의 여비(麗妃)가 되었고, 다른 사람은 선종 장황제의 공신부인(恭愼夫人)이 되었다. 이들은 여러 첩들을 잘 거느렸다는 ‘강타(江   )’와 ‘규목(  木)’의 노래가 풍요(風謠)에 나타났는데, 조선에 있을 때에는 부인의 어진 덕이 있었고, 명나라에서는 궁인들을 잘 다스라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런데 공신부인이 선발된 구갑 또한 올해이니 실로 우연이 아니다.


그의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이 오랫동안 녹봉을 받지 못했으니 즉시 등용하라. 듣기에 그의 묘소는 두미강(斗尾江)에 있는데, 후대인이 그의 시호를 따라 지명을 지었다고 한다. 남양부부인 홍씨의 묘소는 양주에 있다고 하는데, 승지를 파견하여 제사지내도록 하라.

 

▲남양주 능내리에 있는 한확의 묘소.

1798년(정조 22) 8월에 정조가 작성한 ‘경릉과 창릉에 참배하던 날 작성한 윤음(敬陵昌陵展謁日綸音)’이다. 경릉은 세조의 맏아들이자 성종의 부친인 덕종의 묘소이고, 창릉은 덕종의 아우인 예종의 묘소인데, 두 왕릉은 모두 고양시에 있는 서오릉의 경내에 있다.


정조가 이때 경릉과 창릉을 참배한 것은 덕종(德宗, 1438~1457)이 태어난 지 6주갑(周甲) 즉 36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정조는 덕종의 자손들이 왕실을 구성하는 인적 기반을 마련했고, 예종의 문화 사업은 조선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하고, 후대의 국왕들은 성종이 덕종에게 보인 효도를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조는 덕종의 장인이 되는 한확(韓確, 1403~1457)의 공적도 크게 드러냈다. 한확은 그의 딸이 덕종의 왕비인 소혜왕후(훗날 인수대비)가 되어 조선 왕실의 인척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두 누이가 명나라 성조(成祖)와 선종(宣宗)의 부인으로 들어가 명나라 황실과도 인척이 되는 인물이었으며, 이 때문에 그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한확은 명 황실의 인척이라는 기반을 활용하여, 명과의 외교적 현안들을 적극 해결했다. 그는 세종이 양녕대군을 대신하여 왕위에 올랐을 때 이를 인정하는 명 황제의 문서를 직접 받아서 돌아왔고, 명나라가 조선에 부과한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일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그는 사돈인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는 일에 가담하여 공신이 되었는데, 세조가 왕위에 오른 것은 단종의 양위(讓位) 때문이라는 논리로 명 황제를 설득시켰다. 한확은 이 일도 성사시켰지만 귀국하는 길에 사망하고 말았다.


정조는 한확이 태종부터 세조까지 다섯 국왕을 섬기면서 큰 공적을 이루었음을 평가하고, 그 후손을 관리로 등용하고 그와 부인의 묘소에 승지를 파견하여 제사지낼 것을 명령했다. 국왕이 왕릉을 방문하는 길에 종친과 충신들의 묘소를 돌아보거나 그 후손들을 격려하는 것은 조선 왕실의 관례였다.


한확의 묘소는 현재 남양주시 능내리에 있는데, 그 인근에 정약용의 묘소가 있다. 한편 한확의 부인인 남양부부인 홍씨의 묘소는 양주시 은현면 용암리에 있다.

김문식(사학) 교수
김문식(사학)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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