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 설순의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⑥ 설순의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 김철웅 연구원
  • 승인 2010.04.13 23:08
  • 호수 1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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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충신·효자·열녀가 무리지어 나올 것이다

세종 26년 2월, 최만리와 정창손 등이 한글 창제의 부당함을 상소하자 세종은, “내가 만일 한글로 『삼강행실도』를 번역하여 반포하면 어리석은 백성이 모두 쉽게 깨달아서 반드시 충신, 효자, 열녀가 무리 지어 나올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세종은 한자가 배우기 어렵기 때문에 쉬운 한글을 사용하게 되면 원활한 통치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한글 창제를 반대하는 신하를 설득한 것이다. 유교 국가를 표방하는 조선에서는 충, 효, 정절이 가장 중요한 윤리였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1428년에 김화라는 사람이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 일어나자 세종은, “사람은 군신·부자·부부의 도리를 마땅히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고 하면서 『삼강행실도』를 편찬하게 하였다. 1434년에 세종은 설순(?~1435)에게 명하여 한국과 중국의 서적에서 군신·부자·부부의 윤리에 모범이 될 만한 사람들의 행적을 모아 『삼강행실도』를 완성하였다. 책에는 110명의 효자, 112명의 충신, 94명의 열녀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효자 4명, 충신 7명, 열녀 6명이 포함되어 있다. 구성을 보면, 먼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요약하여 그림으로 표현하여 그리고 한문으로 그 행적을 기록했다. 그림은 안견, 안귀생 등 당대의 뛰어난 화가들이 참여하여 그렸다. 그림을 넣은 것은 내용을 한자로 서술해야 했기 때문에 백성들이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려움으로 내용을 쉽게 전달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래서 책의 이름에 ‘그림 도(圖)’ 자를 붙이게 되었다.

▲ 왜구를 물리친 충신 김원계에 대한 기록.



  조선은 유교 이념의 실천을 표방하며 건국되었다. 따라서 조선 사람들은 임금과 신하, 어버이와 자식, 남편과 아내의 도덕 윤리인 충, 효, 정절은 바로 하늘로부터 받은 참마음이며, 타고난 천성임으로 이를 잘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삼강행실도』 서문에, “효는 모든 행실의 근원이 된다. 어찌 오직 집에서만 도리를 다할 뿐이겠는가. 나라에 충성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도리로 임금 섬기는 일보다 더 큰 것이 없다. 여자는 반드시 정절을 굳건히 해야 한다. 부모도 그의 뜻을 꺾을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여 효, 충, 정절의 윤리를 강조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충신, 효자, 열녀에 대한 사실을 모은 『삼강행실도』는 조선의 윤리 헌장과 같은 것이었다. 그리하여 『삼강행실도』를 인쇄하여 신하와 지방 백성에게 하사하였다. 이렇게 하여 백성을 교화하는 기본 지침서가 된 『삼강행실도』는 매우 중요하게 취급되었다. 성종은 『삼강행실도』를 서울과 지방의 유생들이 강습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유생에겐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용이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어 백성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림과 한문으로 되어 있던 『삼강행실도』는 성종 12년(1481)에 와서 한글로 번역, 간행되었다. 이때 한문본에 실린 효자, 충신, 열녀를 각각 35명으로 줄이고 본문 위의 여백에 한글 번역을 붙이게 되었다. 이후 『삼강행실도』 언해본은 중종, 명종, 선조, 영조 때에 중간되었다. 우리 대학에는 『삼강행실도』 언해본의 목판본과 필사본이 소장되어 있다. 

▲ 충신도에 실린 정몽주의 묘. 죽전캠퍼스 인근에 있다.

  『삼강행실도』는 이후 발전을 거듭했다. 광해군 9년(1617)에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가 간행되었다. 이 책에는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이순신의 이야기가 새로 실려 있다. 이순신의 행적을 기록하여 충(忠)의 덕목을 고취하고자 한 것이다. 임진왜란을 몸소 겪은 광해군은 삼강(三綱) 중에서 충성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종 때는 『이륜행실도』를, 정조 때는 『오륜행실도』를 간행하여 유교 윤리를 백성들에게 계속해서 강조해 나갔다.   


 김철웅(동양학연구소)연구원

김철웅 연구원
김철웅 연구원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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