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홀씨가 피워낸 기적의 식당, 인천 동구 '민들레국수집'
민들레 홀씨가 피워낸 기적의 식당, 인천 동구 '민들레국수집'
  • 이민호 기자
  • 승인 2010.04.14 22:32
  • 호수 127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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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고픈 이들에게 화수분 같은 사랑 한가득 담아주는 곳

인천의 달동네인 동구 화수동 화도고개 꼭대기에 2003년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문을 연 민들레국수집. 이곳은 누구나 원하는 만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무료식당이다. 손님들은 대부분 노숙을 하거나 쪽방에 사는 사람들이다. 주인장이 교도소로 교정 사목을 하러가는 목, 금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연다. 다른 무료 급식소와 달리 식사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게다가 누구나 양껏 먹을 수 있도록 식사도 뷔페식이다. 손님들이 눈치를 보지 않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하루에 두 번, 세 번 찾아와도 대환영이다. 민들레국수집은 지난 1일로 어느새 7주년을 맞이했다. 매년 이름도 밝히지 않고 물품을 가져다주는 사람들의 후원으로 7년이라는 시간을 꿋꿋이 버텨온 것이다. <단대신문>은 정부의 지원 없이 자발적인 후원만으로 지금까지 민들레국수집이 운영될 수 있었던 이유를 살펴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편집자주>

“민들레는 구덕초(九德草)라고도 불리지요. 사람이 배울만한 아홉 가지 덕목을 갖고 있다 하여 붙은 별칭이랍니다. 환경을 탓하지 않고, 강한 생명력을 지니며, 꽃이 피는 순서로 예의를 지키고, 나물과 약재로 쓰이며, 벌에게는 꿀을 주고, 씨앗은 멀리 날아가 자수성가하는 등 참 배울 점이 많은 꽃이지요” 서영남(57)씨는 식당 간판 이름을 ‘민들레’라고 정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런데 민들레국수집 간판은 꽤 이상하다. 첫 번째는 보일 듯 말 듯 한 간판. 그러니까 식당 간판이 흰 바탕에 노란글씨여서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서영남(57)씨는 “간판이 너무 눈에 잘 띄면 음식을 먹으러 오는 분들이 주변의 시선 때문에 창피해 할까봐 일부러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또 식당 간판엔 버젓이 국수집이라고 적혀 있지만 국수는 없다. 처음 식당 문을 열었을 때는 국수를 내놨지만 며칠씩 굶는 사람들에게 국수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밥으로 바꿨다. 하지만 서씨는 식당 이름을 바꾸지 않을 생각이다. 언젠가 손님들이 별식으로 국수를 찾을 날이 오기를 바라는 작은 희망 때문이다.

민들레국수집 대표 서씨는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살기 위해 25년간의 수사생활을 마감하고 수도원 담장 밖으로 나왔다. 그러다가 우연히 동인천역에서 노숙자들이 비참하게 무료급식을 받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사람답게 대접해주는 무료급식소를 만들고 싶어 이 일을 시작했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한 그릇의 밥이 아니라 ‘사람대접’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모른다는 게 가슴 아팠다”고 서씨는 그 당시의 상황을 회상했다. 이어 “노숙자, 가난한 자 등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동정”이라며 “배고픈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그들이 받고 싶어 하는 것은 사랑받는 것과 대접받는 것”이라고 전했다.

서씨는 수도원을 나와 수사(修士) 자격이 없지만 수사님이라는 수사(修辭)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손님들은 이제 수사가 아닌 것을 알면서도 한결같이 그를 수사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마음 씀씀이와 행동이 진실하고 아버지 같은 그의 존재는 여전히 수사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민들레국수집에서 매일 같이 도시락을 싸 간다는 김덕남(54)씨는 “수사님은 아버지나 마찬가지고 봉사하는 사람들은 식구나 마찬가지예요”라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보증을 잘못 섰다가 길거리에 나앉았다는 한창수(50)씨는 “어떤 강요나 잔소리 한 마디 없이 묵묵히 지켜봐준 수사님 덕택에 새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고 속마음을 밝혔다.

민들레국수집은 오직 자발적인 후원으로만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도 민들레국수집은 아직까지 쌀과 반찬 걱정을 해본 적이 없다. 몇 천원밖에 안되는 용돈을 아껴 후원금을 보내오는 초등학생, 자신이 파는 콩나물을 나눠주는 노점상 할머니, 박봉을 쪼개 국수집을 후원하는 시내버스 노동조합원들 등이 있기 때문이다. “국수집의 손님들이 늘어가는 데도 쌀이나 반찬이 떨어지지 않아요. 참 신기하죠? 나눔을 실천하는 이웃이 그만큼 많은 거예요”라고 서씨는 웃으면서 말했다. 사실 그의 가장 큰 후원자는 아내 베로니카(53)와 딸 모니카(27)다. 아내는 동인천 지하상가에서 옷가게를 해서 번 돈을 식당에 내놓고 있다. 딸은 식당일을 거드는 것도 모자라 아르바이트 월급까지 식당에 보태고 있다.

“톨스토이 말처럼 신은 가난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온다고 하잖아요. 그럼 우리 집엔 날마다 신이 들어오는 거죠” 서씨는 민들레국수집 손님들에게 ‘일편단심 민들레’다. 그는 국수집 찾아오는 손님들을 'VIP'라고 부른다. 이곳은 배고픈 사람들에게 동정을 베푸는 곳이 아니라 섬기는 곳이기 때문이다. 서씨가 이들을 섬기는 방식은 독특하다. 그는 손님이 많으면 제일 많이 굶고 가장 배고픈 이에게 먼저 밥을 대접한다. 서씨는 “배고픈 사람들은 모두 세상의 줄서기 경쟁에서 밀려난 꼴찌들이다. 그런데 국수집에서마저 줄을 서서 선착순으로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 끔찍한 일”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또 주방 쪽 벽의 화이트보드에는 이곳을 자주 찾는 이들의 명단이 적혀있다. 밥은 얼마나 먹는지, 국물을 좋아하는지 건더기를 좋아하는지, 어떤 국은 먹지 않는지 등 손님들의 건강상태와 식성까지도 함께. 심지어 그는 이분들의 이름은 물론 살아온 내력까지 꿰고 있다.

손님에게는 한없이 베풀지만 식당운영 원칙은 매우 엄격하다. 서씨는 정부지원 안받기, 후원회 조직하지 않기, 예산확보를 위한 프로그램 공모 안하기, 생식내기 후원받지 않기 이렇게 4대 금기를 만들어 꾸준히 지키고 있다. “돈은 권력이고 힘이란 필요한 만큼 있으면 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아울러 그가 정부의 지원을 일체 받지 않는 이유도 있다. 정부 지원을 받으면 만 65세 이상만 먹을 수 있는 경로식당에 하루 한 끼여야 한다는 등 지켜야 할 규정을 따라야 하는데, 그는 이것들이 걸렸다. 정부의 지원은 외려 걸림돌이었다. 실제로 그는 인천 동구청에서 지원을 해주겠다는 것을 정중하게 거절하기도 했다.

소유로부터의 자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기쁨 그리고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투신을 민들레국수집의 정신으로 삼고 있다. 이 글귀는 식당 벽에 걸려 있다. 또 주방 쪽에 걸린 화이트보드에는 다음과 같은 시가 적혀 있다.

사랑만이/겨울을 이기고/봄을 기다릴 줄 안다/사랑만이/불모의 땅을 갈아엎고/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릴 줄 안다/천년을 두고/봄의 언덕에/한 그루의 나무를 심을 줄 안다/그리고 가실을 끝낸 들에서/사랑만이/인간의 사랑만이/사과를 하나 둘로 쪼개/나눠가질 줄 안다 (김남주 시인의 시 ‘사랑’).

시에서 띄엄띄엄 읽을 수 있듯, 민들레국수집은 단지 배고픈 사람들에게 무료 급식을 제공하는 식당의 구실만 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삶을 테두리로 밀려난 이들의 생채기가 난 영혼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위로해주는 역할을 행하고 있다. 나아가 세상의 모순과 대립 그리고 갈등들은 바로 나눔을 통해서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바람을 타고 흩날리다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는 민들레의 홀씨처럼 민들레국수집의 홀씨들이 멀리멀리 퍼져나가 삭막한 세상을 밝게 꽃피우길 기대해 본다.

이민호 기자 sksdlal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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