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향기·시계소리 사람들의 생각 모두 그려보고 싶다”
“꽃의 향기·시계소리 사람들의 생각 모두 그려보고 싶다”
  • 최안나 기자
  • 승인 2010.05.11 18:40
  • 호수 127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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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전국 장애인 미술전시회 ‘함께 그려보는 우리들의 이야기’

■ 제2회 전국 장애인 미술전시회 ‘함께 그려보는 우리들의 이야기’

   지난 4월 17일부터 5월 6일까지 제2회 전국 장애인 미술전시회 ‘함께 그려보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파주시 장애인 종합복지관 주최로 열렸다. 장애인 미술전시회는 지난해 처음 개최되어 전국적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단대신문에서는 이번 전시가 문화, 예술적 매개체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장애인들이 문화의 힘으로 사회적 장벽을 뛰어넘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지난 2일 전시현장을 찾았다.

“꽃의 향기·시계소리 사람들의 생각 모두 그려보고 싶다”

 

▲ ”장애인 친구들의 그림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까?”

다 그려보고 싶습니다!
  넓디넓은 헤이리 마을. 수많은 갤러리 중에서 전국 장애인 미술전시회가 열리는 ‘마음등불’을 찾기란 여간 어렵지 않았다. 헤이리는 ‘예술마을’이라는 칭호답게 거리의 휴지통마저 하나의 작품인 듯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조형적인 미를 자랑하는 건축물들은 고층빌딩이 가지고 있는 카리스마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압도한다고 봐도 무방했다. ‘본다’라는 말보다 ‘감상한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곳이라 생각됐다.
몇 번이나 길을 물은 끝에 ‘마음등불’을 찾을 수 있었다. 어떤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전시장 입구 바로 왼쪽에 쓰여 있는 ‘마음의 문을 열고’라는 시는 ‘마음의 문을 열어요. 그러면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어요’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다양한 색감의 작품들이 ‘눈 맛’을 돋웠다. 만약 색의 마법사 르누아르가 시간을 거슬러 이 전시에 왔다면 매우 즐거워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형형색색 자신의 미래를 그리거나, 삐뚤삐뚤하지만 찰흙으로 자신의 얼굴을 빚는 등 소박하고 순수한 삶의 이야기를 작품을 통해 고스란히 들려줬다. 시각장애 1급인 신승엽(27) 씨는 일부러 초점을 흐리게 해서 찍은 커플사진을 전시했다. 자신의 눈으로 보는 여자 친구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기 위해서다. 8명이 커다란 비누에 친구의 얼굴을 조각한 작품도 눈에 띄었다. 친구를 생각하며 바쁘게 손놀림을 했을 이들의 얼굴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 세라믹아트페인팅 작품.
▲ 이승배 군의 화려한 그림.

  ‘꽃의 향기를 그려보고 싶습니다. 시계의 소리도 그려보고 싶습니다. … 공기 속에 숨어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책들이 품고 있는 이런저런 속뜻 모두를 다 그려보고 싶습니다.’라는 내용의 파주시 장애인 복지관 유석영(47) 관장의 시는 전시에 참여한 460여명의 장애인 친구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전시를 본 이상훈(36) 씨는 “사실 그림이 굉장히 어두울 줄 알았는데, 밝은 분위기여서 보기 좋았다”며  “많은 작품에서 친구들의 마음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소통의 부재 속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장애인들이 들려주는 시시콜콜한 삶의 이야기는 ‘교감’이라는 갈증을 풀어준 것 같았다.

  유명작가들이 ‘출연’하는 블록버스터급 전시에 비하면 작가의 명성도, 바글거리는 인파도 없었지만 이들 모두의 작품에는 ‘작가 000’이라고 쓰여 있었다. 장애인들에게 잠재되어 있는 예술적 감각을 끌어내 ‘작가’로서의 삶을 꿈꿀 수 있게 한 것이다.

  유 관장은 “이 전시가 장애인 미술작가들의 등용문이 되는 전통을 가진 전시회로 자리매김하여 장애인들이 문화의 힘으로 사회적 장벽을 뛰어넘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수화를 배우고 있는 기자.


수화는 온몸으로 말하는 겁니다
  발걸음을 옮기니 ‘장애 인식 개선 및 장애 체험’이라는 현수막이 보였다. 테이블에 놓여있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데이트 할까요’가 적힌 종이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기자는 ‘수화배우기’에 참여하기로 했다. 전시관 앞에는 달고나 체험, 사방치기, 공기놀이 등 다양한 체험행사가 마련되어 있어 주의를 끌었지만 유독 장애체험을 하는 장소에는 곳곳의 텅 빈 의자만이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수화 지도를 해주는 파주시 장애인종합복지관 사회활동증진팀의 박정주(31) 씨 표정은 천막아래 그늘만큼이나 어두워보였다.

  “수화를 배워 보고 싶은데요.”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몇 초가 지나고 나서야 그는 움츠렸던 어깨를 폈다. 마치 오래간만에 반가운 손님을 만난 듯 그는 미소 지었다. 먼저 이름쓰기를 배웠다. 한글의 자음, 모음의 모양과 유사하게 손가락을 움직이는 거라 의외로 쉬웠다.

  단어를 표현하는 법은 조금 달랐는데, 외국에 나가서 말이 안 통할 때 쓰는 ‘보디랭귀지’와 비슷했다. 단어 ‘커피’의 ‘커’가 ‘코’와 발음이 유사해서  “한손으로 코를 쓸어내리고 컵을 휘젓는 시늉을 하면 ‘커피’가 된다”는 그의 말에 구문과 낱말에 집착하는 말로 하는 대화보다 수화가 훨씬 부드럽고 정감 있는 언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 좀 피세요(웃음).” 

  열심히 손만 움직이다보니 마음이 손을 따라가지 못한 모양이다. 기자의 굳어있는 표정을 보고는 그가 한마디 했다. “수화를 할 때는 입모양과 표정도 함께 하는 겁니다. 농아인들도 입을 꾹 다문채로 손만 움직이지는 않아요. 대신 그들은 온몸으로 말하죠.”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너무나 당연한 걸 여태 모르고 있었던 것처럼. ‘데이트 할까요’를 연습하면서 해맑게 웃어보였더니 한결 나아졌다는 말을 들었다.

  박씨는 원래 디자인을 전공했었다고 한다. 신장이 안 좋아서 이식 수술을 받았는데, 장기를 기증한 분이 사회복지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 양로원을 운영하고 계셨고, 거기 일을 도운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좋은 일 한다.’, ‘힘들겠다.’는 말을 흔히 듣지만 특별한 ‘기술’ 보다는 특별한 ‘마음’이 필요한 직업이기 때문에 힘들진 않다고 말했다. 기자가 생각하기엔 그 ‘특별한 마음’을 가지게 되기까지가 힘들 것 같았다.


버스를 기다리며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자의 1미터쯤 앞에는 서로 감싸 앉은 한 커플이 보였다. 커플티를 맞춰 입은 것도 여느 커플과 다르지 않았고, 솔로들이 커플들을 향해 흘깃한 시선을 보내는 것도 흔한 일이므로 기자의 시선은 이내 주변 여기저기로 분산됐다. 그러다 버스 한 대가 왔다. 아까 그 커플 중 여자 혼자만 버스에 올라탔다. ‘남자와 방향이 다른가?’ 무심코 넘겼다. 그런데 갑자기 남자가 창밖에서 그녀를 바라보며 열심히 수화를 하는 것이 아닌가. 오늘 수화를 배운 걸 하늘이 알았는지 참으로 묘한 타이밍 이였다. 그는 절절하게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었다. 손과 입모양, 표정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 말을 들을 순 없었지만 마치 들리는 것 같았다. 그 때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들렸다.

  “말을 못 하나봐.” 

  오늘 처음으로 수화를 배운 거라 알아들을 만한 표현은 없었지만 기자는 알 수 있었다. 이미 출발해버린 버스를 열심히 쫓아가는 그를 보면서, 그는 아마 온몸으로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했을 거라는 것을.
버스가 저 멀리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야 정류장으로 돌아온 그를 보면서 문득 전시회 입구 쪽에 쓰여 있던 시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사랑’이라고 네가 발음할 때/ 그 사랑은 아무나 헤프게 얘기하는 그런 사랑이 아닐 거라고 /네가 ‘평화’라고 발음할 때/ 그 평화는 그냥 쉽게 얻어지는 평화가 아닐 거라고 … 지금도 여전히 짧아 더듬거리지만/ 진실의 음색을 쫓아 /가식의 성찬을 뒤엎고 /불의에 맞서 한 치 물러섬 없는 내 짧은 혀/너의 장애가 이젠 자랑스럽다 .”

 

 최안나 기자 annaroid@dankook.ac.kr

최안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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