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 정조 명찬(命撰), 『명의록(明義錄)』
⑨ 정조 명찬(命撰), 『명의록(明義錄)』
  • 김철웅 연구원
  • 승인 2010.05.18 12:25
  • 호수 127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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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과 역적을 분별하여 밝히고 의리의 근원을 열었다”

   정조(1752~1800)는 즉위 이후 매년 12월 3일이 되면 서명선, 홍국영, 정민시, 김종수 등에게 음식을 내렸다. 정조는 이 모임을 ‘동덕회’라고 부르며, “백 년을 길이 같이하여 덕을 함께하고 복도 함께하리라”고 하면서 이들의 공을 치하했다. 12월 3일은 서명선이 세손(정조)의 대리청정을 반대한 홍인한의 죄를 논박하는 상소를 올린 날이다. 서명선의 상소는 세손을 모함하고 영조가 내린 대리청정의 명을 무시한 홍인한과 정후겸의 죄상을 낱낱이 밝혀냄으로써 정조 즉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1776년 3월에 영조의 뒤를 이어 즉위한 정조는 곧바로 『명의록(明義錄)』을 간행하게 하였다.

   정조가 『명의록』을 편찬하게 한 것은 정조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함이었다. 정조는 대리청정과 즉위를 둘러싼 사건의 전말을 명명백백하게 드러내어 충신과 역적을 밝히고자 했다. 정조는 『명의록』의 편집을 맡은 신하들에게, “나랏일 가운데 역적을 토벌하는 것보다 더 큰일이 무엇이겠으며, 역적 가운데 대리청정할 때의 역적들보다 더 심한 자가 누가 있겠는가. 생각하자니 모골이 송연하고 기억하자니 담이 떨린다. 세월이 점차 오래됨에 따라 사대부들이 이 일을 잊고 있다. 이대로 나아간다면 안면을 점차 바꾸는 자들이 몰래 역적들을 옹호해서 승리를 다투려 할 지 어찌 알겠는가. 찬집하는 일은 하루라도 늦추어서는 안 된다”고 하여 책 편찬의 의미를 강조하였다. 『명의록』은 1775년 2월부터 1777년 4월까지 일어난 즉위 전후의 사건들을 기록하였는데 여기에는 홍인한, 정후겸 등 정조의 대리청정 및 즉위를 방해한 인물들의 모함과 핍박, 그리고 여러 위협들을 기록하였다. 특히 대리청정을 막으려 한 홍인한의 죄상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1775년 11월에 영조가 세손에게 대리청정의 의지를 보이자 홍인한은, 세손은 세 가지를 알 필요가 없다는 이른바 삼불필지설(三不必知說)을 내세우며 반대했다. 즉 세손은 "노론·소론을 알 필요가 없고 이조판서·병조판서에 누가 좋은지를 알 필요가 없으며, 조정의 일은 더욱 알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세손을 권력에서 철저히 배제하고 허수아비로 취급하려는 망언이었다. 나아가 홍인한은, “우리 집안을 보호하는 것이 곧 세손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한없는 권력욕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정후겸은 “세손은 강독이나 열심히 하면 된다”거나 심상운이 “세손으로부터 나오는 말은 들을 필요가 없다”고 한 불경스러운 일도 자세히 밝혀 놓았다. 그리하여 즉위 이후 홍인한과 정후겸을 사형에 처하고 그 추종자들을 처벌한 경위를 기록하였다.

▲ 사도세자의 묘인 현륭원 참배 그림.

   한편, 『명의록』 편찬은 정조의 정통성 문제와도 관련되어 있었다. 영조는 적손(嫡孫)인 정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사도세자의 형으로 어린 나이에 죽은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하는 방법을 썼다. 그러나 아무리 효장세자의 양자라는 지위를 갖게 되었지만 정조는 엄연히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 갇혀 비참하게 죽은 사도세자의 아들이었다. 사도세자의 아들, 즉 죄인의 아들이기 때문에 왕위 계승의 정당성 문제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특히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련되어 있던 노론은 즉위 이후 벌어질지도 모를 정조의 복수를 끊임없이 의심했다. 특히 홍인한, 정후겸 등의 끊임없는 모함은 세손의 지위도 매우 위태롭게 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즉위한 정조는 자신의 일기인 『존현각일기』를 기초로 하여 『명의록』을 완성케 했다. 정조는 완성된 『명의록』을 보고, “충신과 역적을 분별하여 밝히고 의리의 근원을 깨쳐서 열었으니, 잘 지었다고 할 만하다”고 하였다. 이처럼 정조는 『명의록』을 통해 즉위를 반대한 세력들의 죄상과 그 처벌을 기록하여 군신의 의리를 밝히고자 했다. 우리 대학에는 『명의록』의 목판본과 필사본이 소장되어 있다. 

김철웅(동양학연구소)

김철웅 연구원
김철웅 연구원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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