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董狐直筆 (上)
30. 董狐直筆 (上)
  • 조상우(교양학부) 교수
  • 승인 2010.05.19 14:06
  • 호수 127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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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董狐直筆 (上)

동호의 곧은 붓이란 말로, 권세에 아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원칙에 따라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한다는 뜻.

董 : 바로잡을 동 狐 : 여우 호 直 : 곧을 직 筆 : 붓 필

권세에 아부하거나 두려워 하지 않고 원칙에 따라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 올해는 경술국치 100년, 6.25 60년, 4.19 50년, 5.18 30년을 맞는 해입니다. 나라를 일제에게 빼앗겼었을 때 독립을 갈망했고, 같은 민족끼리 전쟁을 하면서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고, 부정부패로 나라가 망해갈 때는 민주시민들이 죽음으로 항거하였고, 군사독재가 극에 달했을 때도 우리 민중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의와 진리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웠습니다. 이제 시간이 흘러 가까이는 한 세대가, 길게는 1세기가 지났습니다. 이렇다 보니 이제 그 쓰라리고 힘들었던 시간들이 조금씩 잊혀져가고 있는 듯합니다. 얼마 전 총학생회 주최로 4.19 기념 걷기 대회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5.18을 맞습니다. 4.19 걷기 대회를 열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4.19와 5.18이 무슨 날인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듯합니다. 자유당 정권이 이승만, 이기붕 체제를 지키기 위해 부정선거를 자행했는데, 경남 마산시민들이 이 행태를 가만두지 않고 실체를 밝히고자 시위를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 고등학생들부터 일반 시민들까지 시위에 참여를 했습니다. 당시 경찰은 고등학생 김주열을 죽이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시신에 돌을 묶어 마산 바다에 버렸는데, 한 달 만에 김주열의 시신이 바다 위로 떠 올랐습니다. 이러한 천인공노(天人共怒)한 짓을 한 자유당 정권에 마산시민을 비롯한 전국의 시민들이 울분이 터뜨리면서 거리로 나와 정의와 진리를 외쳤습니다. 이것이 4.19의 시작입니다. 자유당 정권은 수 많은 민주 시민들의 항거에 총을 겨누고 발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민주시민들은 여기에 굴하지 않고 더욱 맹렬히 항거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20년 뒤인 광주에서도 그대로 벌어졌습니다. 1980년 당시 광주시민들은 폭도라고, 공산당이라고 내몰리면서 총부리에, 칼날에 찢기면서도 정의를 위해 죽음을 무릎 쓰고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을 지켰습니다. 이처럼 우리 시민들은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죽음을 무릎 쓰고라도 잘못된 것을 고치려했습니다. 이와 같은 뜻을 가진 고사성어가 있는데, ‘동호직필(董狐直筆)’입니다. 이 성어는 “권세에 아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원칙에 따라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 말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선공(宣公) 2년조에 나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춘추시대 진(晉)나라 영공(靈公)은 사치하고 잔인했으며, 또 방탕한 폭군이었습니다. 당시 판서로 있던 조돈(趙盾)이 영공에게 자주 간언을 하자, 귀찮게 여긴 영공은 오히려 자객을 보내 조돈을 죽이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조돈의 집에 숨어든 자객은 그의 인품에 반해버려 나무에 머리를 찧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이 일 이후 영공은 조돈을 술자리로 유인해 그를 죽이려 했는데, 병사들이 그 사실을 미리 알고 조돈을 이끌고 다른 곳으로 도망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조돈은 국경을 넘으려는 순간, 영공이 조천(趙穿)에게 도원(桃園)에서 살해당했다는 말을 듣고는 다시 도읍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사관(史官)으로 있던 동호(董狐)가 사초(史草)에 ‘조돈, 군주를 시해하다.’라고 적었습니다 조돈이 이 기록을 보고 항의하자, 동호는 “물론 대감께서 직접 영공을 시해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때 대감은 판서로서 국내에 계셨고, 또 조정에 돌아와서는 범인을 처벌하려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대감께서 공식적으로 시해자인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답니다. 이 말을 들은 조돈은 자기가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동호가 쓴 글에 대해 더 이상 문제를 삼지 않았다고 합니다. 훗날 공자께서는 『춘추(春秋)』에 이 일에 대해 “동호는 옛날의 훌륭한 사관이다. 법에 따라 굽힘 없이 썼다. 조선자(조돈)는 옛날의 훌륭한 대부이다. 법에 따라 부끄러운 이름을 뒤집어썼다. 아깝도다. 국경을 넘었더라면 악명을 면했을텐데(孔子曰 董狐古之良史也 書法不隱 趙宣子古之良大夫也 爲法受惡 惜也 越境乃免).” 라고 평하였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조상우(교양학부) 교수
조상우(교양학부) 교수
조상우(교양학부)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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