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마리 퀴리
87.마리 퀴리
  • 이봉우(과학교육) 교수
  • 승인 2010.05.19 14:10
  • 호수 127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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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마리 퀴리

이 세상에 가장 유명한 여성 과학자는 누구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퀴리부인”이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런데 퀴리부인? 무언가 조금 이상하다. 왜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퀴리 부인이라고 할까? 우리가 프랑스 과학자로 알고 있는 그녀는 본래 폴란드 출생이다. 그가 발견한 원소에 조국의 이름을 붙여 폴로늄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본래 이름은 마리아 스클로도프스카이다. 파리로 유학을 온 마리는 “피에르 퀴리”라는 과학자와 결혼을 하게 되어 성이 퀴리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퀴리부인이라고 부른 것보다 “마리 퀴리”라고 부른는 것이 더욱 더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거의 대부분 남자의 후광에 힘입어 여자가 기억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마리 퀴리의 유명세 때문에 피에르 퀴리는 사람들이 별로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피에르 퀴리도 마리 퀴리 못지않게 위대한 과학자이다. 피에조 전기 현상이나 자석을 가열하면 자성을 잃어버리는 온도인 퀴리 온도를 발견하기도 했다. 마리 퀴리와 함께 노벨상을 공동 수상하기도 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죽음을 당했다. 이는 피에르에게도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마리에게도 크나큰 시련이었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를 돌보아야 했고, 여성 과학자에 대한 편견이 있는 가운데 스스로 연구에 매진해야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두 가지 역할을 모두 잘 수행했다.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퀴리 집안의 과학적 업적 및 성향이다. 앞서 피에르 퀴리와 마리 퀴리가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말을 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다. 마리는 그 후에 또 다른 업적으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노벨상을 2개나 수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여기에 마리의 딸인 이렌도 노벨상을 탔다. 거기다 이렌과 결혼한 사위 졸이오도 노벨상을 탔다. 2대에 걸쳐 총 5개의 노벨상을 쓸어갔으니 그 얼마나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렌의 아이들도 생물학자, 물리학자였고 손자도 천체물리학자이니 모두 모인다면 학회를 하나 만들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집안이다. 마리는 백혈병으로 죽었다. 그런데 그 백혈병이 마리가 연구한 방사성 물질 때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파리의 퀴리 박물관을 가보면 마리가 쓰던 노트 한 장을 벽에 게시해 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방사선이 어느 정도 나오는지 측정할 수 있는 기기를 가져가면 지금도 엄청나게 많은 양의 방사선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으면서도 놀라운 사실은 이렇게 위험하다고 알려진 방사능물질이 옛날에는 좋은 것으로 잘못 알려진 적이 있다는 것이다. 라듐의 방사능으로 인하여 질병치료에 사용한다는 것으로 인해서 라듐을 화장품에도 넣었다고 광고하기도 하였다. 박물관에는 그 광고판까지 전시해 놓고 있었다. 과학이 잘못 사용된 하나의 예라고 볼 수도 있다. 마리는 그 업적에 비해 소박한 삶을 살았다. 자신이 이룬 업적을 특허로 제한하여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공개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 있게 했다. 미국의 한 기자가 그녀에게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주저없이 연구하는데 사용할 “라듐 1그램”이라고 응답했다. 자신이 찾아내고 만든 라듐을 스스로 갖기도 어려웠던 것이다. 이후 미국에서는 모금운동이 벌어졌고, 미국의 하딩 대통령에게서 라듐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그녀는 그것을 혼자 사용하지 않고 다른 과학자들에게 나누어 주어 공동으로 과학의 발전에 쓸 수 있도록 했다.

이봉우(과학교육) 교수 peak@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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