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떠나고 세입자만 남아
집주인 떠나고 세입자만 남아
  • 박윤조, 김예나 기자
  • 승인 2010.05.25 17:06
  • 호수 12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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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신도시와 인천 루원시티 사업의 그늘을 찾아

■  송도신도시와 인천 루원시티 사업의 그늘을 찾아


집주인 떠나고 세입자만 남아


지난 4월 인천 서구 가정동에서는 재개발로 인한 철거작업에 반발하는 주민과 경찰의 충돌이 벌어졌고 급기야 한 주민의 자해소동까지 있었다. 국제도시의 메카로 떠오르게 될 것이라는 송도신도시와 인천의 명품도시화라는 루원시티 사업의 ‘거창한 그늘’ 속에는 자신들의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가야 하는 주민들의 절박한 상황이 감춰져 있었다. 2008년부터 시작된 재개발 사업으로 무리한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는 인천시 가정동, 제물포, 동인천 일대를 단대신문에서 찾아가 보았다.  <편집자 주>

 

▲ 줄줄이 문을 닫은 가정동 가게들.

 

▲이주상담 해드린다 는 부동산마저 문을 닫았다

도둑고양이 신세로 전락한 가정동 일대 주민들
기자는 고등학생 때 가정동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가서 동네를 누비며 놀던 추억이 있다. 하지만 최근 이곳을 방문했을 때에는 어릴 적 추억이 통째로 사라진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방문한 가정동은 한마디로 모든 것이 휑했다. 가정동은 교통이 좋아 예전부터 사람들로 많이 붐비던 동네였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과 달리 지금은 유령빌라, 유령가게들이 줄줄이 서있었다. 인천시에서 LH주택공사와 함께 ‘루원 시티’라는 도시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2006년부터 재개발을 준비해왔기 때문. 지난해 말부터 철거에 들어가서 이미 허물어진 곳이 태반이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가정동을 떠나 동네 곳곳에는 쓰레기와 폐기물들이 나뒹굴고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들마다 도둑고양이들이 터를 잡고 있었다. 심지어는 ‘이주상담 해드립니다. 좋은 집 구해드려요’라는 플랜카드가 걸린 공인중개사사무실 역시 보는 이를 무안하게 할 정도로 썰렁하게 비어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곳에서도 아직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이 있었다. 무슨 이유로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조심스럽게 가게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조촐한 부동산 안에 쌀이 몇 포대 놓여져 있는 조금은 특이한 곳이었다. 이곳에서 주인 임병호(74) 씨의 한탄을 들을 수 있었다. 종일부동산이라는 간판아래 여주상회라는 쌀가게도 함께 운영해온 임 씨는 “엄연히 몇 년 동안 사업자 등록을 하고 법적으로 판매를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매출이 없다는 핑계로 보상을 안 해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쌀가게를 영업보상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융통성 없는 정책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그동안 쌓인 것이 많았는지 기자에게 보상소송관련 법 문서들을 보여주며 현실적인 주민의 생계와 관련 없는 정책으로 재개발을 추진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또한 임 씨는 정년퇴직 후 80년대 후반부터 자리 잡고 일하던 곳을 한순간에 잃어버리게 됐다며 터무니없이 적은 보상금으로 마땅히 자리 잡을 곳을 찾지 못 한다는 것에 서러움을 표했다. 가정동에는 아직도 약 1,400가구가 임 씨와 같이 보상문제로 이곳을 떠나지 못 하고 남아 있다.
날이 저물어 빛이 사라진 가정동은 각종 범죄의 위험에도 노출돼 있었다. 이곳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찾기란 하늘의 별을 찾는 것 보다 힘들었다.  개나리 아파트는 오전에 봤을 때보다도 더욱 인적을 찾을 수 없었고, 불이 켜진 집을 찾기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실제로 개나리 아파트에 거주하던 이지은 씨는 이러한 각종 위험 때문에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어버린 가정동에서 지난겨울에 결국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그녀는 “사람들도 없고 가게도 없고 하니까 살 수가 없고 끔찍하다”며 “어쩔 수 없이 이사를 했다”라고 말했다. 재개발 사업이 추진된 이후 늘어난 범죄율을 반영이라도 하듯 훤한 대낮에도 치안센터 경비들이 조를 나누어 순찰을 다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폐허가 된 인천대 사회과학대 건물

제물포, 인천대 이전으로 죽은 상권
인천대가 송도신도시로 2009년에 이전하고, 현 제물포캠퍼스 인천대에는 인천전문대 학생 약 2,000명 정도가 재학 중이다. (인천전문대와 인천대는 2010년에 통합) 그래서 그런지 인천대 근처에서는 학생들의 흔적을 많이 찾아볼 수 없었다. 인천대학교 사회과학대 건물은 아예 폐허가 될 정도로 처참했다. 근처 게시판에 붙어있는 하숙할 학생을 구한다는 게시물들은 언제 부쳤었는지 모를 정도로 낡아보였다. 또한 대학가 근처의 상권이 예전보다 많이 죽은 모습을 한눈에도 알아볼 수 있었다. 문이 굳게 닫혀있는 가게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문을 연 후레쉬 마트 수퍼를 찾아갔다. 후레쉬 마트 주인아저씨는 “주말은 말도 안 될 정도고, 평일에도 마찬가지로 한산하다”며 “예전에는 인천대 학생들이 전부 이용하였는데, 지금은 학생들이 거의 없어 장사가 잘 안 되서 힘들다. 가게를 그만두고 나간 사람들도 많다”며 이 근처 재개발정책이 보류된 상태인데 선거철이라 후보자들이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며 한숨을 지었다.

 

▲한창 철거가 진행중인 동인천 북광장

▲동인천 상가세입자 대책위가 시위를 하고 있다


동인천의 씁쓸하고 외로운 시위
기자가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동인천이었다. 방문시 동인천 북광장의 현실은 완전한 철거 그 자체였다.
무너진 집들과 깨진 창문들 그리고 날리는 흙먼지. 포크레인이 집을 부수는 광경 한 구석에서 기자는 아직까지 바베큐 호프집을 운영하고 있는 세입자를 만나볼 수 있었다.
“보상금이 너무 적어서 쫓겨나는 식으로 되어버리니 남은 사람들은 나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시에서 다른 방식을 취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어요”라며 “건물주는 모두 떠나고 없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가진 게 없는 사람들뿐이에요”라며 울분을 토하는 세입자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세입자의 한탄과 함께 움직이는 포크레인 소리도 선명하게 들렸다. 생계를 이어갈 수 있을 만큼의 보상금만을 원한다…….
기자는 동인천북광장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만나볼 수 있었다. 위원장은 허물어질듯한 이층 건물에서 열심히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북광장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대학 축제에 가서 철거민의 상황을 알릴 계획입니다. 일일찻집으로 우리의 의견을 조금이라도 더 알릴 수 있다면 해야지요”라며 만들고 있던 홍보카드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 돋보였다. 일일찻집 홍보가 끝나고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한다는 회장의 말을 뒤로한 채 집으로 향했던 기자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며칠 후 다시 찾아간 대책위의 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수소문 끝에 대책위원장이 철거가 진행되는 현장에 시위를 하러 가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현장에 다가갈수록 중압감이 몰려들었다. 현장에는 침묵시위를 하는 지 아무 말이 없었고 10명 남짓한 시위자들과 경찰 2명이 대치를 하고 있었다. 한 아주머니가 포크레인에 올라가 철거를 막으려 했던 것이다.
이런 살벌한 분위기에도 지나가는 사람들은 자기 갈 길을 바삐 걸어갔다. 기자는 동인천역 근처에서 도넛을 파는 아저씨에게 “저곳에서 뭘 하는 걸까요?”라고 질문했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모른다”는 대답뿐이었다. 살벌하고 냉담한 분위기였다. 이러한 삼엄한 분위기 때문에 함부로 말을 걸기조차 힘든 상태였다. 상황이 진정된 후에야 기자는 대책위원회 위원장과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철거 현장에 있는 자동차 안에서 였다. 포크레인에 매달려 시위를 벌인 아주머니가 바로 위원장이었다. “이 곳은 강제 철거가 진행된 지 1년이 넘었다”라며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제2의 용산참사가 생길 것이라고 한탄했다. “보상금으로는 새로운 입주권을 보장 받기 힘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항의 할 수 밖에 없지요”라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먼지더미에서 거칠게 항의를 하는 위원장의 말과 눈빛에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인터뷰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기자는 또 한 번 철거민들의 항의 현장을 볼 수 있었다. 특히 눈에 띈 것은 동인천 북광장 주변의 플랜카드였다. ‘여기가 우리 무덤이고, 묘지다’, ‘이주대책, 생존권 보장하라’등 크게 씌여 있는 플랜카드가 인상적이었다. 다시 재개한 항의 시위에서는 기자가 처음 도착했던 시간보다 좀 더 많은 철거민이 모여 있었다. 얼마 후 있을 지방선거 운동의 스피커 소리와 겹쳐 두 소리가 겹치고 있을 때 즈음, 선거운동원 한 사람이 다가와 기자에게 이런 항의 시위는 대체 언제 끝나는 것이냐며 물어왔다. 이렇게 주목받지 못하는 힘들고 어려운 싸움을 계속해 나가는 10명 남짓의 시위자들의 모습이 외로워보였다. “생계보장을 위한 대책을 원한다”며 적절한 보상을 원한다는 항의를 보며, 재개발사업이 누굴 위한것인지 어두운 이면을 엿볼 수 있었다.

 

▲닫혀있는 가게문에 빨간 글씨로 ‘투쟁, 철거민도 국민이다’ 쓰여져 있다.

▲동인천에는 재개발에 반대하는 플랜카드가 많이 걸려있다.


 

 

 

 

 

 

 

 
박윤조·김예나 기자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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