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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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차식
  • 승인 2003.08.28 00:20
  • 호수 10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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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차식
<인문과학대학·어문학부·독일어전공>

우리는 날마다 공기를 마시며 살고 있으면서 공기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지내는 것이 보통이다. 필자는 독일유학시절 그곳 사람들이 매일 쓰는 말 중에 ‘감사합니다 [Danke!]’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내가 40년 전에 처음으로 독일 비행기를 타고 독일로 갈 때의 일이 생각난다.
독일 도착 며칠이 지난 후 동승했던 스튜어디스가 뜻밖에도 나에게 편지 한 장과 알프스 오랑캐꽃 화분을 보내 주었다. 편지 속에는 “당신은 좋은 승객이었습니다. 나의 모국에서 좋은 결실을 거두고 귀국하기를 바랍니다”라는 내용이었다. 40년이 지난 오늘날도 그 승무원의 친절성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을 잊을 수 없다. 성서에도 감사에 대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오.” 감사라는 말은 동서양 언제 어디서나 일상생활에서 아름다운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천안 캠퍼스에서 교수생활한지도 어느덧 금년으로 22년이 지났다.우리 속담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하니 강산이 두 번 바뀐 셈이다. 내가 부임할 무렵에 비해 지금의 교정은 너무나 놀랍고도 아름답게 발전하였다. 특히 대운동장 주변의 조경에 일조를 하는 은행나무는 80년대 초만 해도 어린 나무로 심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캠퍼스 조경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봄이 되면 새봄을 알리는 연초록의 은행잎이 피어나며 여름에는 진녹색을 뽐내면서 단국인들에게 그늘을 제공하여 내려 쪼이는 햇살로부터 보호해준다. 가을에는 노란 단풍잎으로 변해 독서의 계절인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해주며 잎이 떨어지면 겨울이 오고 한 학기가 지나간다. 나는 가을 은행잎을 주어 책에 넣어 말려서 때로는 한국의 가을을 알리기 위해 멀리 독일에까지 편지 속에 넣어 보내곤 하였다.
은행잎은 혈액순환제로 매우 유용한 약제이기도 하다. 거의 20년간 은행나무와 나는 천안캠퍼스에서 정을 느끼며 절친한 친구가 된 느낌이다. 우리 캠퍼스에는 수많은 은행나무들이 서 있지만 내게는 모두 귀하게 여겨진다.

독일에는 전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룰 만큼 많지만 은행나무와 만날 수 있는 일은 드물다.
시성 괴테[Goethe]가 살던 바이마르에는 오늘날 200여 년이 넘은 은행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있다. 이 나무는 괴테가 1815년 마리안네 폰 빌리머에게 바친 헌시로 노래한 바로 그 나무이다. 그래서 이 은행나무는 바이마르 시민은 물론 수많은 관광객의 주목을 받는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바이마르 시 당국이 이 큰 은행나무 밑에 새끼 은행나무 한 그루를 심어 자라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괴테가 노래한 이 고목의 큰 은행나무가 쓰러지는 날에 대비해서 새끼 나무를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 큰 나무 곁에는 세계적인 음악가 프란츠 리스트가 살던 집도 있다. 바이마르는 오늘날 중소도시이지만 1999년에는 괴테 탄생 250주년을 맞아 유럽문화수도로 지정되었다.
독일문학사에서 쌍벽을 이루는 괴테와 쉴러가 한때 이곳에서 우정을 나누면서 살았다. 오늘날 그곳 국립 극장 앞에 서있는 괴테와 쉴러 동상이 두 작가 사이의 우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두 독일의 대표적 작가는 바이마르에 같은 지하 무덤에 나란히 누워 영원히 잠들고 있다. 재직기간 경험한 일들이 여러 가지지만 그 중에서도 율곡 도서관에서 괴테 탄생250주년 기념 우표전시회를 개최하였던 일이다. 1993년 본교의 자매대학인 마인츠 대학 초청으로 체류 중인 어느 날 괴테 탄생250주년에 대한 신문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그때 한국과의 공동 우표가능성에 착안하여 귀국 후 몇 년간 준비하여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되어 필자의 제안에 의하여 한국과 독일 양국 공동우표발행이 가능했다. 우표발행 3년만인 2002년 8월 요한네스 라우 Johannes Rau 독일연방공화국 대통령으로부터 감사의 친서를 받고 필자는 큰 보람을 느꼈다. 84년에는 평화의 사도 교황 요한 바오르 2세 방한 시 번역과 통역 등 봉사활동을 한 후 3년만에 평신자로서 교황을 알현 할 수 있었던 것도 기쁜 일이었다. 알현시 선물을 드렸을 때 우리말로 “감사합니다”라고 답변해주신 교황 성하의 음성은 지금도 들리는 듯 하고 비록 만남의 시간은 짧았으나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88년 천안캠퍼스에서 개최된 올림픽스포츠 과학학술대회에서 우표 전시회를 통하여 우취 동호인인 사마란치 IOC 위원장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잊을 수 없다.
89년에는 교직원 연수 유럽 순방 때 독일의 분단과 통일의 역사 현장을 답사했던 일은 당시의 일행과 함께 기억되는 일이다. 이제 필자는 정년을 맞게 되었다 22년간 캠퍼스를 드나들며 대과 없이 봉직할 수 있도록 건강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 드리고 대학 당국에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동료 및 교직원 여러분께도 감사 드리고 학과의 조교와 졸업생, 재학생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끝으로 한 그루의 작은 나무가 큰 나무되듯이 단국대가 세계 속의 대학으로 발전하기를 기원하면서 나에게 도움을 주었던 모든 분들께 은혜에 대한 감사의 인사로 괴테의 시 <은행잎>을 바친다

동방에서 건너온 은행나무 / 내 정원에 심어져 있네 / 아는 이들을 고양시키는 / 비밀스런 느낌을 감지 할 수 있네
은행잎은 생생한 존재 / 그 안에서 둘로 갈라져 있네 / 잎은 두 개 지만 / 하나 임을 알게 되네
이런 물음에 답하는 것은 / 필요하다고 생각하네 / 그대는 느끼겠는가 / 내 노래를 들으며 / 내가 하나이면서 둘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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