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董狐直筆 (下)
30. 董狐直筆 (下)
  • 조상우(교양학부) 교수
  • 승인 2010.05.26 15:03
  • 호수 12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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董 : 바로잡을 동 狐 : 여우 호 直 : 곧을 직 筆 : 붓 필
 

동호의 곧은 붓이란 말로, 권세에 아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원칙에 따라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한다는 뜻.

董 : 바로잡을 동 狐 : 여우 호 直 : 곧을 직 筆 : 붓 필

‘후생가외’라 했듯 역사의식 가진 대학생이 더 많다

<지난호에 이어서 계속>

조돈이 마음만 악하게 먹었으면 동호는 바로 죽음을 당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사정은 동호 자신이 먼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호는 자신의 죽음에 연연해하지 않고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던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조돈도 동호의 말에 수긍을 했다고 봅니다. 현대사를 보면 세상이 혼탁해졌을 때 가장 먼저 세상을 비판한 사람들은 바로 순수한 열정을 가진 대학생들이었습니다. 바로 대학생들은 정의가 무엇인지를 대변해주는 창구였습니다. 기성세대들이 알면서도 하지 못했던 것을 학생들은 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아직 진실과 정의가 이길 것이라 믿는 순수함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4.19와 5.18 그리고 87년 6월항쟁과 같은 세상이 와서 학생들이 거리에 나가는 일은 이제 없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 정신만은 학생들의 뇌리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으면 합니다. 학생들에게 말합니다. 흔히 ‘요즘 대학생들은 안돼.’라고 말을 하는데, 이 말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입니다. 요즘 대학생들이 인사동에서 젊은이들이 선거를 해야 한다며 ‘프리허그’를 하고 있답니다. 이처럼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는 대학생들보다 역사의식을 가진 대학생이 더 많을 것입니다. ‘후생가외(後生可畏)’라 했듯 우리 대학생들을, 우리의 후배들은 잘할 것입니다. 이들이 앞으로 정의가 통할 날을 만들 것이라 기대해봅니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은 대학생들의 열정과 순수한 마음입니다. 이것을 기억합시다. 삶의 무게 앞에서 당당해지자고! 정의는 반드시 이긴다고. 1960년 4월 20일에 시인 지훈 조동탁 선생은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를 지으셨습니다. 부제가 ‘어느 스승의 뉘우침에서’입니다. 4.19 학생시위를 바라보는 교수, 학생들의 시위를 막고 학교로 들어가게 해야 하는 교수, 그리고 그 학생들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교수, 그리고 자신들이 어찌할 수 없는 울분을 토해내 학생들을 밖으로 내 몰았던 교수의 입장에서 쓴 시입니다. 또, 이 시에는 학생들의 행동이 옳았음을, 장함을 표현해 놓기도 하였습니다. 4.19 50주년을 맞아 그 의미를 되새기고자 시의 일부를 소개하면서 글을 맺고자 합니다.

<시 전문>

그날 너희 오래 참고 참았던 의분(義憤)이 터져
노도(怒濤)와 같이 거리로 거리로 몰려가던 그때
나는 그런 줄 모르고 연구실 창턱에 기대앉아
먼산을 넋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오후(午後) 이시(二時) 거리에 나갔다가 비로소 나는
너희들 그 무엇으로 막을 수 없는 물결이
의사당(議事堂) 앞에 넘치고 있음을 알고
늬들 옆에서 우리는 너희의
불타는 눈망울을 보고 있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그날 비로소 너희들이
갑자기 이뻐져서 죽겠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쩐 까닭이냐.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발길이 무거웠다.
나의 두 뺨을 적시는 아 그것은 뉘우침이었다.
늬들 가슴 속에 그렇게 뜨거운 불덩이를
간직한 줄 알았더라면 우린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학생들은 기개가 없다고

병든 선배의 썩은 풍습을 배워 불의에 팔린다고
사람이면 늙으면 썩느니라 나도 썩어 가고 있는 사람
늬들도 자칫하면 썩는다고......

그것을 정말 우리가 몰랐던 탓이다
나라를 빼앗긴 땅에 자라 악을 쓰며 지켜 왔어도
우리 머리에는 어쩔 수 없는
병든 그림자가 어리어 있는 것을
너희 그 청명(淸明)한 하늘같은 머리를 나무램 했더란 말이다.
나라를 찾고 침략(侵略)을 막아내고 그러한 자주(自主)의 피가
흘러서 젖은 땅에서 자란 늬들이 아니냐.
그 우로(雨露)에 잔뼈가 굵고 눈이 트인 늬들이 어찌
민족만대(民族萬代)의 맥맥(脈脈)한 바른 핏줄을 모를 리가 있었겠느냐.

사랑하는 학생들아
늬들은 너희 스승을 얼마나 원망했느냐.
현실(現實)에 눈감은 학문(學問)으로 보따리장수나 한다고
너희들이 우리를 민망히 여겼을 것을 생각하면
정말 우린 얼굴이 뜨거워진다 등골에 식은 땀이 흐른다.
사실 너희 선배(先輩)가 약했던 것이다 기개(氣槪)가 없었던 것이다.

매사(每事)에 쉬쉬하며 바른 말 한마디 못한 것
그 늙은 탓 순수(純粹)의 탓 초연(超然)의 탓
어찌 가책(苛責)이 없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너희를 꾸짖고 욕한 것은
너희를 경계하는 마음이었다. 우리처럼 되지 말라고
너희를 기대함이었다 우리가 못할 일을 한 사람은
늬들뿐이라고----

사랑하는 학생들아 가르치기는 옳게 가르치고 행(行)하기는 옳게 행(行)하지
못하게 하는 세상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스승의 따귀를 때리는 것쯤은 보통인
그 무지한 깡패떼에게 정치를 맡겨 놓고
원통하고 억울한 것은 늬들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럴 줄 알았더면 정말
우리는 너희에게 훈장이니
선비의 정신이나마 깨우쳐 주겠다던 것이
이제 생각하면 정말 쑥스러운 일이었구나.

사랑하는 젊은이들아
붉은 피를 쏟으며 빛을 불러놓고
어둠 속에 먼저 간 수탉의 넋들아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 늬들의 공을 온 겨례가 안다.
하늘도 경건(敬虔)히 고개 숙일 너희 빛나는 죽음 앞에
해마다 해마다 더 많은 꽃이 피리라.

아 자유(自由)를 정의(正義)를 진리(眞理)를 염원(念願)하던
늬들 마음의 고향 여기에
이제 모두 다 모였구나
우리 영원(永遠)히 늬들과 함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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