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한 치명적인 물음
사랑에 대한 치명적인 물음
  • 이승제 기자
  • 승인 2010.09.07 17:49
  • 호수 128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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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미스 쥴리>


우린 언제부터 물질을 사람보다 앞세웠을까.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이지만 현대인들의 삶 속에서는 물질이 사람을 추월했다. 이젠 공부를 하고 삶을 살아가는 목적을 넘어 사랑의 목적 또한 물질이 되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성취했을 때 느끼는 허영은 사람들을 외롭게 하고 있다.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의 <미스 쥴리>(1888)가 담고 있는 문제는 현대에도 이어져 내려온다. 쥴리는 백작의 딸이다. 하지만 그녀는 평민 계급인 어머니의 자살과 귀족으로부터 소외 받은 아버지로부터 겪은 트라우마로 인해 정신적으로 불안한 생활을 하고, 이로부터 벗어나길 원한다. 반면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장은 상류 사회에 대한 동경과 입신출세를 꿈꾼다. 욕망을 지닌 채 시작된 둘의 사랑을 보면 현실 속에서 우리가 하는 사랑을 비교 해 보게 된다. 우리의 사랑은 어떤 욕망을 이루기 위함인가. 아님 사랑하는 사람 자체에 있는가. 또 어떤 사랑이 행복한가.

스트린드베리는 모순을 발견한 인간의 번뇌를 주소재로 삼았다고 한다. <미스 쥴리>에서의 인물들은 자신들의 모순에 대해 번뇌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드러내는 모순적 성격을 드러냄으로써 우리의 행동과 생각 사이에 일어나는 모순에 대해 회의하도록 한다.

“도둑이 천국의 문에 들어가 천사들과 어울릴 수 있다면 왜 농부의 아들은 귀족의 딸과 어울릴 수 없는가”라고 말하던 장도 귀족의 모순성에 대한 실소와 분노를 지닌다. 하늘에서 내려와 안정 된 삶을 살 수 있다면 땅을 밟고 그 땅을 파 안으로 들어가겠다던 줄리도 자신을 창녀라고 하는 장으로부터 수치심을 느끼고 하인들에 대한 멸시와 조롱의 모습을 보인다.

이렇듯 <미스 쥴리>에는 인간 보편적 문제점을 치밀하게 표현하였다. 하지만 이에 대해 주장하거나 설득하여 관객을 거북스럽게 하지 않는다. 인간의 보편적 문제를 주인공들로부터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도록 한 구성이 관객의 생각을 끊임없이 유도한다.

“종이 울리고 쥴리의 아버지가 돌아왔을 때, 장의 배신을 본 쥴리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기자의 뒤에서 공연을 보던 관객의 물음을 지울 수 없다.

이승제 기자
이승제 기자

 redhan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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