왁자지껄 지구촌 ① 스페인 아기 뛰어넘기 축제
왁자지껄 지구촌 ① 스페인 아기 뛰어넘기 축제
  • 김상천 기자
  • 승인 2010.09.08 01:40
  • 호수 128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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왁자지껄 지구촌 ① 스페인 아기 뛰어넘기 축제
악마 복장으로 갓난아기를 뛰어넘는 이유

생후 1년도 채 안된 갓난아기가 차가운 아스팔트길 위에 누워있다. 아기는 아무것도 모른 채, 파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을 보며 배시시 웃고 있다. 그런데 아기 너머에 서있는 저 남자. 황색과 붉은색으로 악마 분장을 한 한 남자가 저만치서 아기를 쳐다보고 있다. 남자는 손에 채찍을 들었다. 뚜벅뚜벅, 남자가 아기 쪽으로 다가온다. 사람들은 아무도 말릴 생각을 않는다. 아기의 부모조차 그저 보고만 있다. 그들은 단지 평화롭기 그지없던 이 작은 마을에 안개처럼 내려앉은 긴장을 들이마시며, 불안한 두 눈만 껌뻑일 뿐이다. 갑자기 악마가 뛰기 시작한다. 손에 들린 채찍이 좌우로 요동친다. 이윽고 악마는 아기를 뛰어 넘으려 무릎을 굽힌다. 아기 부모는 결국 자신의 두 눈을 가리고야 만다.

 

▲ 떠들썩한 여느 축제들과 달리 관객들도 참가자도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스티븐 킹의 소설도, 공포영화의 한 장면도 아니다. 이 아찔한 광경은 마드리드에서 열차로 4시간 거리인 스페인 북동부의 작은 마을 무르시아(Murcia)에서 열리는 ‘아기 뛰어넘기 축제(El Colacho)’의 한 장면이다.
세계의 다양한 축제들 중에 첫 번째로 소개할 이 축제는 떠들썩한 여느 축제들과는 다른 종류의 흥미를 일으킨다. 이 축제는 가톨릭에서 매년 6월 행하는 성체축일(Corpus Christi) 축제의 한 부분으로, 아이의 원죄를 사하고 악령과 질병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성인 남자가 ‘Colacho(채찍으로 사람을 위협하는 악마)’ 분장을 하고 생후 12개월 미만의 아기들을 뛰어 넘는 이 괴상한 축제는 스페인 민속 신앙에서 파생된 것으로, 1620년도에 시작해 어느덧 근 400년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축제날 마을사람들은 무르시아 전역을 도는 퍼레이드를 벌여 악마들을 교회로 몰아넣는데, 이윽고 위기에 몰린 악마들은 교회를 뛰쳐나와 도망치게 된다. 다급해진 악마들은 매트리스 위에 눕혀 놓은 아기들을 넘어 가게 되는데, 이때 악마들이 아기들을 뛰어넘어 사라지면  아기의 원죄가 씻기고 장차 악마들의 괴롭힘을 받지 않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된다고 믿는 것이다.

누가 스릴과 모험을 즐기는 정열의 스페인 아니랄까봐 갓난아기마저 뛰어 넘는다니. 정말이지 스페인 사람들 배짱엔 두손 두발 다 들 수밖에 없다. 가톨릭 축제임에도 불구하고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스페인 전역의 성직자들에게 “엘 콜라초 축제를 멀리 할 것”을 엄포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축제’라는 악명과 달리, 17세기부터 내려온 이 축제의식에서 아기들이 다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생후 12개월도 채 안된 핏덩이를 뛰어넘는 사람의 입장에서 얼마나 조심에 또 조심을 하겠는가. 아기는 다친 적도 없고 원죄도 씻겼을지 모르지만, 추측컨대 아마 신경쇄약으로 시달린 성인 남자는 여럿 있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아기가 건강하게 자라 성인이 됐을 때, 그에게는 친척의, 친구의 아기를 뛰어 넘으며 액땜으로 아기의 행복을 빌어줄 차례가 돌아올 것이다.

김상천 기자 firestarter@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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