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트시네마, 그리고 논란의 감독 장선우 특별전
서울아트시네마, 그리고 논란의 감독 장선우 특별전
  • 김예나
  • 승인 2010.09.18 00:22
  • 호수 1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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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점점 모여드는 서울아트시네마의 전경

 

 # 서울아트시네마, 그리고 논란의 감독 장선우 특별전
탑골공원 뒤 낙원상가에 가면 일반 극장과는 다른 새로운 분위기의 극장을 찾을 수 있다. 바로 ‘서울아트시네마’가 그곳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영화는 상업적 관계를 넘어 관객들에게 전달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해 예술·문화의 목적으로 영화를 상영하는 비영리 영화극장이다. 또한 상업적인 방식으로 배급되기 어려운 고전 및 예술영화 기획전이라는 비영리적 상영 방식을 고집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남녀노소, 나이불문하고 영화를 느낄 줄 아는 사람들이 찾는 ‘서울아트시네마’를 단대신문이 찾아가 봤다. <편집자 주>

 

▲영화가 시작하기 전 한적했던 서울아트시네마의 정문

 

▲영화의 역사와 한국의 영화 감독들을 사진으로 전시해놓고 있었다.

 

#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서울아트시네마
비가 쏟아 질 것 같이 구름이 잔뜩 낀 오후에 서울아트시네마극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종로 2가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고 탑골공원을 지나 극장으로 향했다. 서울아트시네마가 고전적인 장소라는 것을 미리 보여주듯, 시네마와 근접해 있는 탑골공원 주변거리도 여느 서울의 현대적인 길과는 달리 옛 거리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갈색 빵모자를 눌러쓰고 장기내기에 몰두하는 할아버지, 한 구석에 놓여 있는 폐 종이 수거함 앞에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거리와 어우러져 있는 낡은 간판들……. 극장 앞의 거리에서부터 고전적인 분위기가 풍겨나 기자의 눈과 마음을 끌었다.
낙원상가로 가는 돌계단을 지나 4층으로 올라가니 서울아트시네마 극장에 도착했다. 이 곳 또한 오래된 벽돌과 바닥 때문에 생각보다 훨씬 고전적이고 옛 느낌이 풍기는 장소였다. 극장 안으로 입장하기 전, 기자의 눈을 사로잡는 특별한 공간이 있었다. LP판으로 음악을 트는 추억의 음악공간이었다. 올드 팝과 고전 음악이 LP판을 통해 흘러나오는 공간인 ‘추억 만들기’라는 곳에서 기자는 처음으로 LP판을 구경했다. 텔레비전에서 보고 부모님의 귀로만 전해 듣던 LP판을 직접 보니 흥미롭고 신기한 탓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실컷 구경하고 나오면서 한 구석에 풀빵을 만드는 기계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추억 만들기’는 서울아트시네마극장을 방문한 노인들에게 옛 추억을 되새겨 주는 목적의 공간이라 많은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LP판과 풀빵, 그리고 옛 추억에 잠긴 노인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에 있으니 기자가 70년대에 와 있는 듯한 묘한 느낌이 들었다.

 

▲LP판으로 노래를 틀어주던 공간 '추억더하기' 신청곡을 적어 내면 LP판으로 신청곡을 들려주기도 한다.

 

▲장선우 특별전 극장 앞에 크게 세워져 있던 장선우 감독의 사진이다.

# 화제와 논란의 감독 ‘장선우’의 영화를 만나다.
본격적으로 시네마극장에 들어와 기자가 볼 영화를 확인했다. 장선우 특별전이 한창 열리고 있었다. ‘거짓말(1999)’, ‘꽃잎(1996)’,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4)’ 등의 영화로 많은 논쟁과 화제를 불러일으킨 문제의 감독 장선우. 기자가 볼 영화는 그의 영화 ‘경마장 가는 길’이었다. 유학파 지식인인 남녀의 모순되고 반사회적인 면모를 그려냈다는 시놉시스를 확인하고 티켓을 끊었다. 극장 안에는 장선우 특별전 팜플렛을 펼쳐 보고 있는 관객들이 많이 있었다. 영화를 보러온 관객 중 한 명인 안주영(36) 씨는 “영화를 좋아해서 많은 장르의 영화를 보았지만 장선우 감독의 영화는 구하기도 어렵고 본 적이 없어 영화 관람을 위해 아트시네마를 찾았다”고 말했다. 또한 장지선(31) 씨는 “현재 상영하는 많은 영화들은 일반 영화관에서도 볼 수 있지만 아트시네마에서는 그런 영화관에서는 상영하지 않는 고전적이고 예술적인 영화를 볼 수 있어 좋다”며 “예술 영화를 보고 싶을 때 가끔 찾는 곳”이라고 말했다. 영화 상영이 시작되는 5시가 되자 더 많은 관객들이 모여들었다. 이삼십대의 영화를 좋아하는 소수의 매니아만 찾을 것이라는 기자의 생각과 달리 오십대 노부부 등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찾아왔다.
영화가 시작되었고, 지식인 유학생을 통해 현대사회의 모순을 냉소적으로 그려냈다는 내용을 미리 숙지하고 보아서인지 영화에 더 몰입하고 즐길 수 있었다. 헛웃음이 날 정도로 현대사회의 모순을 잘 표현한 영화였다. “네가 나와의 만남을 거부하는 이데올로기가 대체 뭐냐?”라고 묻는 남자주인공 R의 대사는 부패한 만남 속에서 지식인의 면모를 내세우려한다는 점에서 희소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또한 극중 박사학위를 사고파는 행위가 남녀의 만남과 관련돼있는 설정도 현대사회를 비판하기에 딱 좋았다. 특히 만남을 거부하다가 박사학위를 위해 거래를 하자 행동을 완전히 바꾸고 남자주인공을 계속 만나는 여자주인공의 모습에서 계산적이고 냉소적인 현대사회를 그려낸 장선우 감독의 표현법을 느꼈다. 그 외에도 남자주인공 R이 유학에서 돌아와 “요즘 한국의 밤은 유럽의 공동묘지와 다를 바가 없어. 여기저기서 새빨간 십자가가 우뚝 솟아나 있지”라고 말하는 장면이 기자는 가장 인상 깊었다. 서구 문명이 빠르게 유입되고 있던 90년대 초의 한국 거리를 ‘무덤’이라고 표현한 것과 이러한 뜻뿐만 아니라 고유의 문명을 지키지 못하고 새로운 것에 자리를 내주고 죽어간다는 표현의 ‘무덤’이라고도 볼 수 있어 다의적으로 해석 할 수 있는 대사였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다.

   
▲장선우 특별전 홍보 포스터. 박중훈 주연의 '우묵배미의 사랑'의 한 장면을 볼 수 있다.
   
▲씨네토크에 참석해 설명한 조경희(36.왼)씨와 김성욱(39)씨.

# 영화 평론가와 함께한 장선우 감독의 ‘열린 영화’에 대하여
영화가 끝나자 기자가 기다리던 씨네토크 시간이 찾아왔다. 해질녘 상영을 시작해 두어 시간의 영화 관람으로 지쳐 있었지만 영화가 끝나고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기회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저녁을 먹으러 가기 보다는 자리에 남아 씨네토크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영화상영 종료 후 약 10분이 지나자 씨네토크가 시작되었고, 무대 위로 올라온 조경희(파리1대학 영화연구자, 36) 씨와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39) 씨를 만나 볼 수 있었다. 토크의 주제는 장선우의 ‘열린 영화’였다. 파리에서 장선우의 영화를 연구를 하고 있다는 조경희 씨는 “장선우의 영화는 대학시절 무대극?마당극의 영향을 받아 서민의 불안과 분노를 풀어내는 특징을 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 공감 할 수 있는 영화다”라고 장 감독의 영화를 설명했다. 기자는 ‘경마장 가는 길’을 감상하며 유학생의 학력을 위조해 주는 대신 지속적인 만남을 가져달라는 남자주인공과 그 권유를 받아들이는 여자주인공의 계산적인 면모에서 현대 사회의 문제를 제기한 장 감독의 뜻을 이해 할 수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조 씨의 설명을 들으니 조금 전 감상했던 영화가 다시 생생하게 떠올랐다. 김성욱 씨는 장 감독의 영화를 “관객이 쉽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열린 영화이다”라고 말했다. 김 씨는 덧붙여 “장 감독은 영화에서 단일한 것이 아닌 혼합적인 부분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주변적인 풍경, 인물 등을 조명하여 관객 스스로의 개입을 유도하는 영화를 잘 만든다”고 말했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대화 도중에 어항 속의 금붕어를 카메라가 비추는 장면, 영화의 내용과는 관련이 없는 배경 인물들이 싸우는 장면 등이 삽입 된 것이 기억났다. 기자 또한 그런 장면에서 저절로 영화에 개입하여 ‘저 사람들은 왜 저럴까?’ 등의 질문을 던졌다. 두 평론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장 감독의 영화를 재조명해보니 현 시대의 문제를 영화에 잘 투영했을 뿐 아니라 관객들의 참여까지 유도하는 방법을 잘 아는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됐다. 또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조경희 씨가 직접 장 감독을 만났을 때 장 감독으로부터 들었다는 말이다. “감독은 우리 시대의 무당이다. 무당이 타인의 억울함과 회포를 풀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감독도 현대인들의 답답함과 분노를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라는 말이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작품이 좋지 않을 리가 없었다. 씨네토크가 끝나고 기자는 잠시 아트시네마 내의 한 테이블에 앉았다. 우리나라 영화감독들의 명언이 쓰여 있는 그 곳에서만 볼 수 있는 테이블이었다. 수 많은 글 중 박찬욱 감독이 ‘케케묶은 고전을 보는 것은 당장 우리와 상관없는 일 같지만 관객의 눈을 고급화하고 영화 창작자도 자극받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다’라고 써 놓은 것을 발견했다. 오늘 기자가 보았던 영화 또한 91년에 만들어진 고전 예술영화이고, 박찬욱 감독의 말대로 이러한 영화를 감상함으로써 문화를 보는 눈이 한 단계 고급화 되었다고 생각하니 기분도 좋아졌다. 서울아트시네마는 특정한 사람만이 즐길 수 있는 한정된 공간이 아니다. 예술영화라는 소재로 모두가 어우러져 함께 즐길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소중한 장소인 것이다.

 

김예나 기자 kyn0748@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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