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하루키의 ‘거리두기’와 베르나르의 ‘파고들기’
<책> 하루키의 ‘거리두기’와 베르나르의 ‘파고들기’
  • 김상천 기자
  • 승인 2010.09.29 04:06
  • 호수 1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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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문화in 20

젊은 세대에게 가장 많이 읽히는 대표적 두 작가 하루키와 베르나르는 닮은 구석이 있다.

먼저 소설의 구조적인 면에서 두 작가는 교대반복(두 개의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되는 방식)을 선호하고, 쉽고 숨이 짧은 문장을 즐긴다. 교대반복의 톱니는 호기심을 자극하고, 장황한 표현 없이 경제적인 문체는 미끄러지듯 이어진다. 싫증내기 좋아하는 젊은 세대들과 대화가 되는 이유다.
 

▲ 무라카미 하루키(왼쪽)와 베르나르 베르베르.


초현실적이고 탈규범적인 내용, 그리고 이를 다루는 ‘어깨의 힘을 뺀’ 가벼움도 서로 닮았다. 그 가벼움으로 인한 비난, 즉 도시적 감성의 우수와 상실감을 그리는 문체가 섬세하고, 만화경과 같은 비일상적 세계의 현란함이 신선할지언정 ‘문학적 깊이’가 부족하다는 지적까지. 두 작가는 비난 받는 부분도 닮았다.

또 두 작가의 소설은 고독함이 묻어난다. 몇몇 사람들은 베르나르 소설이 고독하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할지 모른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현란한 상상력 뒤에서 그의 주인공들은 모두 외롭다. 혼자 비밀을 깨닫고, 혼자 영계를 떠돌고, 혼자 우주로 날아간다. 먹먹한 어둠 속에서 자기만 하얗게 빛난다.

왼손과 오른손처럼 닮은 두 작가를 손바닥과 손등처럼 구분 짖는 가장 큰 특징은 하루키는 모든 것과 ‘거리두기’를, 베르나르는 상상의 끝으로 ‘파고들기’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하루키의 주인공들은 가족·사회·국가를 떠나 외톨이로 남길 원한다. 그들은 ‘바람’이고 ‘상실’이며 ‘해변에 홀로 앉은 소년’이다. 세상을 등지고 ‘우물’ 밑으로 숨어버리는 자들이다. 하루키는 하고자 하는 말도 ‘상징’을 통해 거리를 두고 말한다. ‘말라버린 우물’, ‘입구를 막는 돌’ 같은 상징들을 숨겨 놓고 그 의미를 찾아 읽으라고 독자들에게 속삭인다.

반면 베르나르의 힘은 끝이 안 보이는 상상력이다. 사후세계를 탐사하는 『타나토노트』의 미카엘을 보는 독자의 손에는 땀이 찬다. 미지의 영계를 관통하며 끈임 없이 세계를 만들어내는 베르나르의 상상력에 넋을 잃고 감탄하게 되고야 만다. 그런데 인간으로서 영계를 탐사하던 그 미카엘은 이후 『천사들의 제국』에서 천사가 되더니, 『신』에서는 급기야 신이 되어버린다. 이 ‘파고드는’ 베르나르의 상상력에 독자는 홀리는 것이다.

이들을 비롯한 현대 작가들의 가벼움을 두고 ‘문학의 위기’라고 말하는 것은 노파심일 것이다. 독자는 바보가 아니다. 가벼움이 좋다고 백 권이고 천 권이고 가벼운 책만 읽지는 않는다. 문학계의 새바람을 문학의 변질이 아닌 문학 스펙트럼의 확장으로 볼 필요가 있다.

 김상천 기자 firestarter@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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