⑮홍만종의 『동국역대총목(東國歷代總目)』
⑮홍만종의 『동국역대총목(東國歷代總目)』
  • 김철웅 연구원
  • 승인 2010.10.06 22:21
  • 호수 1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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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일은 자세히 기억하지만 우리나라 역사는 줄거리도 알지 못한다

   홍만종(1643~1725)은 벼슬이 높았다거나 학자로서 명성을 얻지는 못했지만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저술가로, 그리고 문인으로 명망이 높았다. 그는 우리 땅, 우리 문학을 매우 사랑하여 우리나라의 산수가 천하의 으뜸이며, 우리나라 말로 부르는 노래와 문학도 훌륭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순오지』, 그리고 시 비평서인 『소화시평』, 『시화총림』 등의 저술에 잘 나타나 있다. 또한 그는 우리 역사도 몹시 사랑하여 역사서인 『동국역대총목』을 남겼다. 『동국역대총목』은 1705년에 간행되었는데 얼마 후 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지평 김시환은 『동국역대총목』이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고 하여 숙종에게 홍만종의 처벌을 주장하였다. 김시환의 주장에 따르면, 『동국역대총목』은 함부로 써서는 안 되는 임금의 휘호를 나열하였고, 아무개는 ‘졸(卒)하였다’고 쓰고, 혹은 ‘주(誅)했다’고 하여 마음대로 평가를 내렸으니, 그 죄가 참월하고 무엄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책은 사람들을 그릇되고 망령되게 하여 사람의 이목을 가리고 있으니 책을 거두어들이고 홍만종도 처벌해야 마땅하다고 하였다. 김시환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동국역대총목』을 둘러싼 논란은, 당시의 일부 사람들이 이 책을 매우 불편한 심기로 받아들였음을 말해준다.   

   방대한 역사적 사건을 모두 수록할 수는 없으므로 그 중에서 중요한 사실만을 취사 선택하여 정리할 수밖에 없다. 모든 역사책이 그러한데, 그 중에서도 특히 요점을 잘 살필 수 있도록 대강을 간추린 것이 있다. 이런 책들은 절요(節要), 제강(提綱) 등의 제목을 붙이게 되는데, 바로 『동국역대총목』도 이와 같은 경우이다. 제목에 나타나 있듯이 『동국역대총목』은 우리나라 역대 사실 중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요점을 정리하여 엮은 것이다. 책의 서문에 따르면 교서관제조였던 신완(1646~1707)이 당시의 학자들이 중국의 사실은 자세히 기억하고 외우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사실에 대해서는 줄거리조차도 알지 못하고 있음을 걱정하여 우리 역사를 정리해 줄 것을 홍만종에게 부탁함으로써 책이 편찬되기 시작하였다. 책의 구성을 보면 먼저 서문이 있고 이어서 14조의 범례를 실어 편찬 원칙을 제시했다. 여기서 홍만종은 우리 역사가 단군에서 시작되며 역사의 계통이 고조선, 마한, 삼국, 신라로 이어지고 있음을 제시하였다. 범례에 이어 역대 왕조의 계승 관계에 대한 도표, 역대 왕조의 수도와 주요 산천을 그린 지도가 있다. 본문에서는 단군조선에서 시작하여 삼국, 고려, 조선의 순서로 주요 사실을 정리하였다. 그러면서 홍만종 자신의 고증 내용은 ‘안(按)’이라고 하여 해당 사실 옆에 서술하였다. 본문에 이어 부록으로 지지(地誌)를 실었다.

▲ 금속활자로 인쇄한 동국역대총목.


   이 책의 특징은 단군을 강조하여 우리 역사의 자주성과 유구성을 강조하는 데에 있다. 홍만종은 『순오지』에서 ‘우리나라의 비조’라고 하여 단군이 실존했음을 말했는데, 『동국역대총목』에서는 단군이 “신군(神君)이요, 우리나라 계통의 우두머리”라고 더욱 구체적으로 기술하였다. 이러한 그의 단군 인식은 당시에 유행했던 홍여하의 『동국통감제강』과 구별되는데, 이 책은 기자(箕子)를 정통의 시작으로 보고 단군을 부기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그런데 홍만종은 기자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단군을 역사의 시작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또한 기존 체제를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가는 '방외인'을 소개하고 있다는 데에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이다.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빼앗자 세상을 버리고 떠돌아 다닌 김시습, 무오사화로 귀양갔다가 풀려난 후 은둔해버린 정희량 등의 행적을 기술하였는데, 이것은 홍만종이 저항과 초탈의 정신을 높이 평가하였음을 말해준다.

   홍만종은 해박한 지식과 고증, 그리고 자주성을 바탕으로 『동국역대총목』을 저술하였다. 이에 대해 김려(1766~1821)는 홍만종이 옛 문헌에 능하여 박학강기라고 칭할 만한데 『동국역대총목』을 보니 꼭 그 말에 부합된다고 칭송하였다. 우리 대학 도서관에는 현종실록자본으로 간행한 금속활자본이 소장되어 있다. 


김철웅(동양학연구소) 연구원

김철웅 연구원
김철웅 연구원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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