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춘천 플레이그라운드 뮤직&캠핑 페스티벌
[르포] 춘천 플레이그라운드 뮤직&캠핑 페스티벌
  • 김상천 기자
  • 승인 2010.10.12 19:57
  • 호수 128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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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 In Nature!

2006년 펜타포트를 시작으로 한국에도 대형 음악페스티벌이 꾸준히 늘고 있지만, 한편으론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다. 지나치게 라인업(출연진)에만 집중해왔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자연의 품에서 휴식하며 다양한 문화로 에너지를 충전하는 영국의 빅칠(Big Chill)이나 미국의 코첼라(Coachella) 같은 페스티벌이 왜 없나. 늘 아쉬웠다. 그러니 음악, 캠핑, 영화, 전시, 바비큐파티, 게임 등을 한 자리에서, 그것도 춘천의 아름다운 섬 중도에서 즐길 수 있다는 소식에 귀가 번쩍 뜨일 수밖에 없었다. 그 속에서 2박 3일간 온몸으로 느낀 전율과 여유를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자연 속에서 즐기는 음악·캠핑·영화·전시·바비큐파티
춘천 플레이그라운드 뮤직&캠핑 페스티벌

▲ 샐러드는 다양한 재료가 한데 섞여있는데도 각 재료마다 독특한 맛을 낸다. 음악·캠핑·영화·전시·바비큐파티··· 플레이그라운드는 '문화샐러드'다.

 첫날=텐트마다 들려오는 들뜬 수다
선착장에서 중도로 건너가는 통통배를 내리자마자 상쾌한 풀냄새가 환영인사처럼 온몸을 감쌌다. 맑고 시원한 밤의 나무냄새에 절로 웃음이 났다. ‘그래 나는 ‘저쪽’에서 ‘이쪽’으로 건너온 거야. 자명종도, 마감 압박도, 교통체증도 없는 유토피아로 온 거야.’

▲ 유럽이 아니다. 중도의 자연은 최고의 휴식처.

첫날엔 공연이나 행사가 거의 없었다. 본격적인 페스티벌은 내일부터고, 금요일은 본격적으로 놀 준비를 하는 날이었다. 밤 10시. 서둘러 텐트부터 쳐야할 텐데 주위가 너무 어두웠다. 걱정스런 마음에 서둘러 텐트안내소로 갔더니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미리 텐트가 쳐져있는 오토캠핑 방식이라 번호만 받아 가면 된다는 것. 예매율 남녀 성비가 여성 80%라더니 과연…. 혼자 달리 할 것도 없고 친구도 만들 겸 랜턴에 건전지 끼우는 일을 거들었다. 남편과 아내가 같이 운영하는 텐트대여업체였는데 대학생 딸은 수업 끝나자마자 서울에서 고속버스로 내려와 일을 돕고 있었다. 이들은 계속해서 “추우니까 입 돌아가기 싫으면 옷 껴입고 자라”고 당부했다. 물론 강원도 철원에서의 군생활로 추위에는 자신 있던 기자는 들은 척도 안했다.

가방을 풀어헤쳐 옷이란 옷은 다 꺼내 입고, 컵라면에 술까지 마신 뒤에야 잠들 수 있었던 건 건방의 대가였다. 추위에 몸부림치며 침낭 속에서 꾸물대는데, 양 옆 텐트에서 수다가 들려왔다. 내일 볼 공연 얘기, 기대하는 그 영화, 싫은 직장 상사 골탕 먹인 얘기, 그리고 사이사이에 웃음소리…. 들뜬 목소리였다. 오래간만에 자유를 만끽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멀리서 한바탕 술판벌인 사람들이 취해서 말타기하는 소리도 들렸다. 텐트 안에 누워서도 풀냄새가 났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 수다스러웠다. 또 웃음이 났다. 누워만 있어도 재밌고 자유가 느껴졌다. ‘역시 오길 잘했다.’
 
▲ 로맨틱한 밤의 키엘스테이지는 연인들이 애정행각을 벌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둘째 날=퍼붓듯 내린 비, 그리고 소나기 같은 전율
전시가 열릴 아트존과 그 옆 나이트시네마존을 찾아 호숫가로 향했다. 의암호의 물안개, 향긋한 풀냄새, 상쾌한 바람. 밤에 여기 야외상영관에서 영화 볼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렌다. 그런데 그때 황당한 광경을 목격했다. 페스티벌 헤드라이너인 타히티80(Tahiti80)이 호수에서 모터보트를 타고 있는 게 아닌가! 구명조끼 입고 초등학생처럼 신나서 소리 지르는 저 외국인들이 정말 수만 명 앞에서 연주하는 그들인가,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중도에서는 모터보트, 전동카, 자전거 등을 빌려 탈 수 있다. 이 또한 페스티벌 참가자들의 놀거리가 된다.


▲ 아트존의 폴라로이드 사진관 입구(왼쪽)와 캠핑존 모습.

오후엔 늦게 도착한 일행과 합류해 본격적으로 공연을 보러 나섰다. 락과 팝(Tahiti80, Ponypony Runrun, W&Whale, 10cm 등), 펑크(Bunny the Party), 가스펠(힛더나인), 알앤비(어반자카파), 재즈(말로, NeoTraditional Jazz Trio), 집시스윙(하림+집시피쉬오케스트라), 스카(킹스턴루디스카), 시부야케이(Paris Match)까지. 한정된 예산으로 대중성과 다양성을 모두 살리고자 고심한 흔적이 묻어나는 라인업이었다. 누구 하나 뺄 것 없이 모든 공연이 제값을 했지만, 이날 전제덕·말로·박주원의 합동 공연은 잊지 못할 전율을 선사했다.

기타리스트 박주원의 손은 기타를 끝으로 몰았다. 그 손은 한 마리 야생동물 같기도, 날렵한 새 같기도 했다. 코드와 코드 사이에 이음이 없었고 끊김도 없었다. 코드를 바꿀 때마다 변하는 그의 손동작 하나 하나가 새로 태어나고 곧 죽어버리는 생명체처럼 보였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관객들은 넋을 잃고 그 손만 쳐다봤다.

말로는 온몸으로 노래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예술가의 광기와 불안함을 동반했다. 말로는 억제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이제 정말 터뜨릴 듯 아슬아슬하게 노래했다. 관객들은 미처 감추지 못한 탄식들을 빗줄기 사이로 내뱉었다. 그리고 시각장애인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 그는 한 뼘 남짓한 하모니카에 들숨과 날숨을 불어 가늠할 수 없는 크기의 감정을 만들어냈다. 이들이 함께 만든 공연은 시를 쓰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다.

내리는 비는 점점 거세졌다. 작년 자라섬재즈페스티벌 둘째날의 모든 공연을 취소시켰던 그 비를 생각나게 했다. 결국 영화상영관은 운영되지 못했다. 영화감독 이권씨가 손수 뽑은 영화들은 빛을 보지 못했다. 퍼붓는 비는 텐트마저 찢을 기세였다. 우리는 텐트에서 자는 걸 포기하고 찜질방에서 묵었다. ‘내일도 비오면 안 되는데….’ 걱정스런 마음에 한참을 뒤척였다.

▲유유자적. 영국의 빅칠이나 미국 코첼라의 한 장면과도 같다.
 
■ 셋째 날=해 뜬 날 놀이터에서 노는 어른들
다음날 하늘은 능청스러웠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떠 있는 해는 “내가 언제 그랬어?”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해 뜬 날,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시소도 타고 미끄럼틀도 탄다. 우리는 해 뜬 날 중도에서 사진전시를 보고, 잔디밭에 돗자리 깔고 낮잠도 자고, 바비큐존에서 춘천닭갈비와 덥힌 정종도 즐겼다. 과연 어른들의 놀이터라 이름지을 만한 곳이다. 

▲ 익살스런 복장의 참가자를 구경하는 것도 페스티벌의 재미 중 하나.

페스티벌을 즐기는 스타일은 다양하다. ‘여유파’인 심정인(25·대전)·손다영(25·구미) 양은 한적한 뒤쪽에 돗자리를 펼쳤다. 이들은 “어제 비 맞기 싫어서 차타고 남이섬에 나들이를 다녀왔다”고 한다. 오는 길에 춘천닭갈비도 사먹었다고 자랑한다. ‘낭만파’ 이유진·최하나(한예종, 영화·1) 양은 교복을 입고 왔다. “오늘은 여고생 감성으로 돌아가 한껏 즐기고 싶다”는 이들은 일부러 버스보다 오래 걸리는 ‘춘천가는 기차’를 타고 왔다고 한다.

▲ 자원봉사자로 참가한 류은아(강원대, 무역·2), 고하나 (회계·2) 양은 페스티벌 하이라이트인 마지막 날 "300동의 텐트가 거의 다 차서 기쁘다"며 "내년에는 일반 참가자로 와서 실컷 즐기고 싶다"고 했다.

이때 멈칫 하게 만드는 어떤 냄새. 코를 자극하는 이 냄새는 분명 삼겹살이었다. ‘취사 금지일텐데···.’ 호기심의 근원지에선 네 명의 남녀가 꽃밭 근처에 텐트 치고 고기를 굽고 있었다. ‘사교파’인 이들은 몇 시간 전에 처음 만난 사이들이다. 서울·대전·부천 등 각기 다른 지역에서, 국회도서관 사서·자영업 등 각자 다른 일에 종사하던 이들은 여기서 ‘음악과 자연’이라는 주제로 한데 뭉쳤다. 기자의 술잔에 끊임없이 복분자주, 소주, 맥주, 와인을 따라주던 이들은 벌써 15일 자라섬재즈페스티벌도 같이 가기로 약속까지 했단다. 기자도 질세라 아껴뒀던 양주를 꺼내자 환호와 박수가 터진다. 페스티벌에서의 인연은 여행 인연과 비슷하다. 쉽게 친해지는 소년같이 순수한 만남이다.

▲ 새미, 그레이스 등 별명으로 불리길 원하던 이들은 모두 오늘 처음 만난 사이지만 ‘음악과 자연’으로 한데 뭉쳤다.

 ■ 아쉬운 운영… 내년을 기대한다
첫 회 플레이그라운드는 운영 면에서 아쉬운 점이 많았다. 가장 큰 점은 역시나 홍보다. 홍보는 곧 관객 동원률이고, 관객 동원률은 공연의 성패를 결정짓는다. 페스티벌 관계자·참가자들의 “홍보가 부족했다”는 지적은 곧 홍보방식이 비효율적이었다는 의미가 된다. 저비용+고효율 홍보의 으뜸은 단연 온라인 음악동호회 공략인데, 그런 노력이 없었다는 게 아쉽다. 다음카페 ‘악숭’(회원 수 23만여 명), 네이버의 ‘락카페’(회원 수 5만 여명) 등은 광고만 잘하면 제발 하지 말라고 말려도 소문이 퍼지는 곳이다. 이들 카페와 공동구매 할인 등의 제휴를 맺고 적극 홍보하는 펜타포트 등에 비견되는 모습이다.

그밖에도 참가자들은 전체적 운영 곳곳에서 ‘초보’티가 났다고 불만했다. 참가자 이재수(29, 춘천)씨는 “취사를 금지했으면 푸드존이라도 신경써서 만들어야 되는 것 아니냐”며 “부스 4개짜리의 열악한 푸드존엔 먹고 싶은 게 하나도 없더라”고 불만을 토했다. 손다영 양도 “한 조각에 4천원인 피자가 말이 되느냐”며 비싼 가격을 문제 삼았다. 이밖에도 참가자들은 ▲공지조차 없는 행사 취소 및 공연 지연 ▲무대 장치 및 부대시설의 허술함 ▲바비큐존 테이블 부족 ▲셔틀버스 운행의 비효율 등의 불만을 제기했다.

플레이그라운드조직위원회 이진아 팀장은 “미숙한 점이 많아 죄송스럽고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며 “내년 5월 봄에는 1회의 실수들을 보완해 탄탄히 준비된 모습으로 돌아올 것을 약속 한다”고 말했다. 이 팀장에 따르면 내년 플레이그라운드는 취사도 허용되는 등 참가자의 니즈(needs)를 반영한 개선된 운영방칙을 도입할 것이며, 새로운 콘텐츠도 선보일 계획이라고 한다.

김상천 기자 firestarter@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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