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세계작가 페스티벌 - 제1차 포럼 ‘상상의 바다’
2010 세계작가 페스티벌 - 제1차 포럼 ‘상상의 바다’
  • 고민정 기자
  • 승인 2010.10.13 16:17
  • 호수 128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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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소통에 관한 단상 백낙청 평론가
사회적 불통과 시문학 회피 현상 이겨내야

페스티벌의 주제어에 포함된 ‘소통’을 중심으로 시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볼까 합니다. 어쩌면 오늘 1차 포럼의 주제 ‘상상의 바다’보다 이튿날의 ‘소통의 바다’에 더 어울리는 발제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소통에 대한 요구는 요즘 한국 사회에서 유달리 빈번합니다. 정치권을 비롯하여 사회 곳곳에서 ‘불통’ 현상이 너무 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국시의 세계가 반드시 ‘소통의 공간’인 것도 아닙니다. 이는 이번 ‘2010 세계작가페스티벌’이 내세우는 ‘바다의 시 정신’과는 거리가 느껴지는 현상입니다.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시가 사람들 간의 소통 매체로 기능해온 것은 분명합니다. 특히 인쇄술이 발달하기 이전의 세계에서는 산문보다 운문이 알아듣기도 편하고 외우기도 쉬우며 노래나 춤 같은 다른 예술과 결합하기가 용이하여 문학의 소통 기능을 주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근대사회로 오면 문예창작에서는 장편소설이 대중적 소통의 총아로 떠오르고 과거에 운문으로 쓰이던 많은 내용이 산문의 영역으로 이동하면서 시문학의 비중이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전자영상 매체 등 새로운 소통 공간의 발달은 이런 현상에 또 한 차례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혼자서 많은 시간을 들여서 읽어야 하는 장편소설보다 대중 앞에서 또는 대중과 더불어 낭송이 가능하고 인터넷 등 다른 매체와의 결합도 용이한 짧은 시들의 일정한 위상 회복이 이루어지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대적 위상의 회복에도 불구하고 문학의 전반적 쇠퇴라는 더 큰 흐름을 얼마나 이겨낼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바다의 시적 영혼 모옌 중국 소설가
바다는 인류문명의 요람

문학 창작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바다와 밀접한 관계를 맺지 않는다면 그의 문학은 영혼이 없는 문학이 되고 말 것입니다. 바다는 육지가 다하는 곳인 동시에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시작이기도 합니다. 바다는 생명의 기원이자 생명의 요람입니다. 바다와 문학의 관계는 서양의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처럼 일찍이 상고시대부터 문학 작품에 광범위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바다는 문학가들의 작품을 통해 풍부하고 다양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바다는 때로는 부드럽고 다정한 소녀였다가 때로는 광기와 분노를 지닌 잔혹한 폭군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심오한 지혜를 갖춘 위인이 되기도 합니다.
바다는 인류문명의 요람으로써 한없이 풍부하고 광활하며 엄청난 포용력과 변화무쌍한 불안정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특성들이 이 시대의 특성이기도 합니다. 바다가 원래 그런 것처럼 우리는 바다의 특성을 개괄할 수 없고, 개괄할 수 없다는 이런 특성이야말로 가장 매력적인 특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바다는 더할 수 없이 풍부한 자원으로서 작가들에게 특별히 광활한 전경을 제공합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종이가 작가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작가들이 와서 인류 자신은 물론, 인류와 세계의 관계, 인류와 바다의 관계 등 일련의 문제에 관해 무언가 써주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바다의 시 정신 고이케 마사요 일본 시인
시도 음악도 바다의 파동을 타고 태어나

최근 몇 년 동안 제가 줄곧 생각해왔고, 단편소설이나 장편소설의 형태로 쓴 글의 대부분은 인간과 자연의 ‘교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시적 언어의 특징은 독특한 리듬과 파동을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인간이 만들어내는 시적 언어의 파동은 파도가 일으키는 파동이나 식물 등 모든 생명체의 파동(리듬)과 겹쳐져서 서로 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이자면, 웅장한 음악이 자아내는 리듬과도 서로 겹쳐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연은 인간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자체가 자연입니다. 사랑을 나누고 출산을 하고 늙어가고 이윽고 죽습니다. 저는 우리 몸속에서 들리는 자연의 소리와 우리 몸 바깥에 펼쳐진 자연이 마치 이중주처럼 서로 영향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산은 가만히 그 자리에 있지만, 바다는 끊임없이 물결 운동을 반복하므로 얼지 않습니다. 바다는 항상 변화하며, 어느 한순간도 똑같지 않습니다. 한순간도 똑같지 않음에도 영원히 ‘바다’라는 한 단어로 불립니다.
바다를 보고 있으면, 시의 발생과 인간의 탄생이라는 큰 근원을 생각하게 됩니다. 피로하고 마멸된 수치로써 모든 것이 바뀌어가는 현대사회에서 저는 보이지 않는 바다, 보이지 않는 물결 같은 언어를 낳게 되기를 원합니다.


갈망해본 사람은 안다 린망 중국 시인
‘바다의 시 정신’이란 소통이 자유로운 문화정신

중국에서 우리와 같은 세대의 시인과 작가들은 지난 40여 년 동안 문학청년에서 중국문학사의 주요 인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중대한 변혁기를 경험했습니다. 안타까운 영혼의 시련을 겪으며 성장한 우리 세대는 언어예술의 자유로운 표현을 추구하기 위해 분연히 투쟁해왔으며, 이미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청년 시대에 마음 한가운데 심었던 의지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창작 활동에 있어서 우리는 여전히 억눌리고 곤경에 처해 있습니다. 물론 이는 이상을 가진 모든 예술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자 문제일 것입니다.
상상하고 갈망해본 사람은 알 것입니다. 간절히 희망하고 또 절망해본 사람, 절망과 희망을 겪어보고 그 고통에 몸과 마음을 내맡겨본 사람은 알 것입니다. 바로 그 시기에 나의 친구들도 고난과 갈망으로 가득 찬 영혼의 역정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영혼의 자유와 문화 발전을 위한 인류의 노력은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든 간에 문명과 문화에 대한 수요는 필수적입니다.
‘바다의 시 정신’은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넓고 밝고 항구적이며 소통이 자유로운 문화 정신입니다. 우리의 시는 이러한 정신의 격려 속에서 끊임없이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발트 해-대서양-아드리아 해 예지 일크 폴란드 시인
조지프 브로드스키:페테르부르크에서 베니스까지

저는 20세기의 가장 두드러진 시인들 가운데 하나인 러시아 망명작가 조지프 브로드스키에 관해 말하고자 합니다. 브로드스키의 생애는 두 도시의 놀라운 틀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두 도시란 그가 태어난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옛 이름)와 그가 묻힌 베니스인데, 두 도시는 모두 바다로부터 훔친 도시입니다. 그에게 물은 그의 문학이 탄생한 원소이기도 합니다. 소련의 현실에서 이 젊은 시인의 꿈은 완전히 유토피아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발트 해에서 보낸 유년기와 청년기를 말하면서 브로드스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맹세했다. 이 제국에서 빠져나간다면, 뱀장어가 발트 해를 탈출한다면, 제일 먼저 할 일은 베니스에 가는 것이라고.” 이 꿈은 1972년에 실현되었습니다. 그는 망명 후 첫 크리스마스를 꿈에 그리던 저 석호의 도시에서 혼자 보내게 되었습니다.
브로드스키의 베니스는 냄새와 소리로 가득하고, 춥고 바람이 많은 곳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곳은 반짝이고 물에 비치며, 물에서 파생되는 도시입니다.
시인은 그의 모든 바다들 곁에 있습니다. 그리고 물이 그의 성찰을 기억해주었던 까닭에 그는 그 바다들 안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순결한 자유의 빛 쩐아인타이 베트남 시인
순결하고 맑은, 자유로부터 나온, 명철과 지혜의 시만이 탈출구


수년 전에 저는 고고학 조사단과 함께 베트남의 항구 도시인 하이퐁 시를 조사한 일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한 고고학자가 오래된 묘지를 발굴하는 것을 보았는데, 관에는 물결 위에 떠 있는 돛단배가 조각되어 있었습니다. 그 관은 배 모양의 큰 나무로 만들어졌는데, 마치 수천 년부터 ‘베트남인들은 예로부터 바다와 더불어 살고 바다와 더불어 죽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바다는 언제나 정신을 덮어주는 곳이고, 사랑과 포용력의 상징이며, 의지와 삶의 방식에 대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다는 여러 세대에 속한 베트남 시인들의 시와 삶 속에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바다에 관한 그와 같은 시들이 악, 전쟁, 독재, 질병, 가난을 없앨 수는 없지만 그것들은 돌에 새긴 것같이 문화를 깨치는 것이며, 어둠에 대항하는 순결한 자유의 빛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시인들은 삶 속에서의 사랑에 관하여, 고독하지만 장대한 바다에 관하여, 신비한 자연의 아름다움에 관하여 노래하고, 쓰고, 자신들의 시로 외쳐야 합니다.

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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