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세계작가 페스티벌 - 제2차 포럼 ‘소통의 바다’
2010 세계작가 페스티벌 - 제2차 포럼 ‘소통의 바다’
  • 고민정 기자
  • 승인 2010.10.13 16:50
  • 호수 128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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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로부터 안토니오 콜리나스 스페인 시인
바다는 평화, 자유, 창조 등의 심오한 상징

지중해에 대해서 저는 몇 가지의 질문을 던져보고 지나간 상념에 잠겨봤습니다. 전쟁 중이거나 평화로운 지중해? 고유명사로서의 지중해, 위대한 사건들이 일어났던 지중해, 또는 상징적인 의미의 지중해? 세 개의 문화가 발달하였던 공간? 단지 세 개만의 문화? 특히 성서문화가 생겨난 곳이지만, 수피교의 문화처럼 정신적이면서 시적인 운동이 태어나기도 한 곳?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기에 앞서 지중해적인 공통 정신 하나가 존재한다는 것을 먼저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이성에 물든 정신입니다.
이성에 물든 정신이라 함은 문학적 창조뿐 아니라 사상, 예술, 서로 다른 종교에서도 특히 서정성에서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정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지중해 근처에서 스스로 유럽의 최초 시인이라 명명한 헤시오도스가 출현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뒤이어 그리스 라틴풍의 서정시가 도래했고, 이로부터 우리의 서정시가 비롯되었으며, 그 정신의 이상향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특별하게도 그 지중해 정신은 상징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프랑스의 수필가 브뤼노 에티엔은 맥(Mac)으로 시작하는 세 개의 문화-맥도널드(Mcdonald), 매킨토시(Macintosh), 매클루언(McLuhan)-에 지중해가 소유하는 가장 아름다운 자연의 상징 세 개-밀, 올리브나무, 포도나무-를 대립시킬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거대한 생태계를 미래에 구원하고 발전시키는 데 있어 자연이 감당할 역할이 기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필연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조화를 이루어야 할 자연 말입니다. 올리브나무가 ‘평화’를 상징하는 바와 같이 여러 상징들은 나름의 충만한 의미를 회복할 것입니다.


바다의 목소리 더글러스 메설리 미국 시인
대양은 무엇을 말하는가?

지금으로부터 몇 십 년이 지나면 베니스, 산타모니카, 그리고 우리 집 근처 말리부의 사랑스럽고 매혹적인 도시들과 해변들은 상승하는 대양에 의해 침수되어서 더는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자리에 육지를 떠받치고 연결하는 바다에 대해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공포를 말하려고 온 것은 아닙니다. 저는 19세기 프랑스의 위대한 박물학자이자 역사가인 쥘 미슐레로 가장하여, 바다에 대한 ‘낭만적 개념’을 말하고자 합니다. 그의 가장 중요한 저술 중의 하나는 『바다』라는 책입니다.
미슐레는 놀랍게도 해안, 해변, 절벽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바닷물의 강력한 힘과 무시무시한 행동을 거론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미슐레는 바다의 거대한 다산성을 지적함으로써 대양을 생명 자체의 원천으로 세웁니다. 대양은 그 안에서 창조가 시작되었고 그 힘 안에서 창조가 지속되는 비옥한 도가니이기 때문에 창조의 활기찬 웅변을 갖습니다. 이는 생명에게 말을 거는 생명입니다. 수백만 년, 수십억 년 동안 대양에서 태어난 존재들이 대양의 단어들입니다. 이 모든 것이 모두 합해진 것이 대양의 우렁찬 목소리입니다. 대양은 생명에 대해서, 불멸에 대해서, 유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바다, 대양, 시의 물결 클로드 무샤르 프랑스 시인
시의 과거는 요동치는 파도


서양의 선조인 그리스인들이나 로마인들에게 있어서 대양은 기원과 번식을 주관하는 신권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오디세이』를 극복한 단테의 율리우스에게 대양은 무한함이고 무서운 바깥세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이와 같은 이유로 대양은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니기도 합니다.
포르투갈의 위대한 시인 카몽이스의 『루시아다스(포르투갈 사람들)』에서는 실현 불가능해보이고 무모할 것 같던 항해 이야기가 나옵니다. 카몽이스는 이 작품에서 ‘위대한 여행’에 대해 노래하고 있습니다.
근대의 한복판에서 시적으로 바다를 말하는 것은 객체와 주체 사이의 흐름을 만드는 것이고, 때로는 참신하고 때로는 놀라운 소통을 상상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랭보의 시 「술 취한 배」와 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의 시들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여러 시들에서 바다를 등장시키고 바다의 심상을 묘사한 시인은 보들레르입니다. 그리고 바다의 소재는 시적 리듬의 실현에서 잘 감지됩니다.
음악 작품에서도 이러한 순간들을 만나게 됩니다. 드뷔시는 「바다」라는 곡에서 바람과 바다의 유희를 들려줍니다.


바다가 시인을 낳는다 김수복 (문예창작) 시인
바다는 상상력의 어머니


양재천은 제가 사는 마을에서 8킬로미터를 더 흘러가 탄천을 만나고 서울의 젖줄이라 불리는 한강과 합쳐진 후 서해에 닿아 대양으로 흘러듭니다. 양재천은 제 시의 수력발전소라 할 만큼 저에게 무한한 영감의 에너지를 주었습니다. 이 발전소에서 충전된 시들로 저는 지난해 아홉 번째 시집 『달을 따라 걷다』를 출간했습니다.
바다는 시인들에게 상상력의 시원이면서, 또한 시의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저에게도 그것은 예외가 아니어서 어머니로, 내 최초의 둥근 집, 자궁 속 내 존재의 시원입니다. 즉, 바다는 시인을 낳고, 시인은 바다의 상상력 속에서 시를 낳습니다.
바다 이미지는 생각했던 대로 여러 가지 유형으로 나타납니다. 역사적 상황과 개인의 처지에 따라 다르게 읽히고 해석되었습니다. 바다 또한 너무도 광대해서 한곳에 가두어지지 않습니다. 바다를 향한 나의 시적 상상력도 그러하리라 기대합니다. ‘시의 바다’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작가들을 만났습니다. 출발 지점은 달랐지만 메마른 땅을 적시고 여기까지 오느라 지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바다는 내일이며 미래입니다. 이 바다를 살아내는 시인들이라 흐르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바다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나 베이다오 중국 시인
시는 그 민족의 영혼


저는 중국에서 정치범 석방 등 인권운동을 펼치다가 1989년 톈안먼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에 유럽으로 망명되어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가 지금은 홍콩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2005년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에서 중국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발언으로 이후 지금까지 중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지식인이라면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망명한 지 21년 됐는데 한 번도 정치적인 조직에는 참여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오직 문인으로서 문학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시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양심의 소리를 내는 것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이런 현상이 굉장히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고 중국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저는 이것을 굉장히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보고 있는데 작가의 입장으로서는 자기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작가는 자기 자신에게만 기준치를 가질 수 있지 다른 작가들에게 기준치를 가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상황이 세계적으로 어떤 식으로 흘러가든지 시는 반드시 읽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시는 그 민족의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현대시와 바다의 상상력 최동호 시인
최남선의 시와 미래의 ‘디지털 바다’


20세기 한국의 근대시가 1908년에 발표된 육당 최남선의 「해(海)에게서 소년에게」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시사적입니다. 이 시가 바다로부터 밀려오는 대륙문화에서 해양문화로의 역사적 전환을 예고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륙으로부터 해양으로의 전환은 동양으로부터 서양으로의 문명사적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신체시’라는 명칭으로 발표된 이 시는 분명히 종전의 조선에서 발표되던 시와는 유형이 다른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직설적이고 거친 표현이 많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시에 담긴 내용은 바다로부터 거세게 밀려오는 서구 문물에 대한 각성을 강력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됩니다.
최근 혁명적 변화는 20세기 초 최남선이 계몽적 열정을 가지고 외친 파도 소리에 비해 훨씬 더 큰 파장력을 인류사 전체에 행사할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시인들은 먼 변방 반도의 좁은 나라의 시인이 아니라 21세기 지식과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상상력의 바다에서 과연 어떤 상상력의 바다를 시라는 가냘픈 조각배를 가지고 헤쳐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에 첨예하게 부딪치게 될 것입니다.

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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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jko921@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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