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는 기다림의 이중주 속 희망과 좌절의 시소놀이
한없는 기다림의 이중주 속 희망과 좌절의 시소놀이
  • 고민정 기자
  • 승인 2010.11.11 18:30
  • 호수 12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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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1969년 원작자 사뮈엘 베케트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긴 이 황당한 부조리극은 잠깐 졸다가 봐도 크게 내용이 달라지지 않을 정도로 앞뒤 맥락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초연 이후 41년 동안 세계무대에서 격찬을 받아 온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이하 고도)는 베케트가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원로 불문학자 오증자 번역가가 옮기고 사실주의극의 대명사인 임영웅 산울림 극단 대표의 연출로 이루어졌다.

41년간 <고도>는 국내외의 여러 무대에서 갖가지 의미 있는 공연과 더불어 수많은 수상경력을 갖고 있다.
평론가 마틴 에술린은 한국의 <고도>에 대해 “연출과 연기에서 산울림의 공연은 베케트의 극을 한 층 전진시킨 무대였다”라고 평했으며 40여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극단 산울림의 <고도>는 연극학도와 일반인들이 현대극의 정수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꼭 봐야할 공연이 되었다.

하염없이 ‘고도’라는 사람을 기다리는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대화로 이루어지는 연극에는 끝내 ‘고도’가 등장하지 않는다. 관객들은 그 지루한 기다림을 뚝심 있게 지켜보며 과연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란 대체 누구이며, 그 존재는 무엇일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마치 수수께끼를 푸는 것처럼.
특별한 전개 없이 약 세 시간가량 1, 2부로 펼쳐지는 연극의 한없는 기다림의 이중주 속에는 삶의 희망과 좌절의 시소놀이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난해한 대화를 주고받다가 분위기가 어색해질 때마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지?”, “‘고도’를 기다리는 거지”, “참 그렇지”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열심히 뭔가를 향해 달려왔지만 어느 순간 문득 “아, 내가 잘 살고 있나”라는 의문을 가지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원작자 베케트는 “이 연극에서 의미를 찾지 말라”고 말했다. 난해한 연극이라고 잔뜩 어깨에 힘을 주고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낄낄대고 웃는 게 낫다. 연출가 임영웅은 두 배우의 동전과 대사를 굉장히 음악적으로 풀어놓았다. 그 리듬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긴다면 어느덧 ‘고도’와 대화를 나누는 자신을 발견하고, 우리의 삶이 무대 위에 고스란히 투영된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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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jko921@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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