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기자석 - 턱 밑까지 떠줘야 받아먹는 대학생들
주간기자석 - 턱 밑까지 떠줘야 받아먹는 대학생들
  • 김상천 기자
  • 승인 2010.11.17 00:17
  • 호수 12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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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 밑까지 떠줘야 받아먹는 대학생들


중국 충칭(重慶)시는 지난 8월부터 대학생들이 재학 중 최소 4개월을 노동자·농민·군인들과 함께 일하고 생활하게 하는 ‘대학생 사회체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보시라이(薄熙來) 충칭시 서기도 11일 현지 신문을 통해 “사회 체험 적극 지지”를 표명하고 나섰다. 고생 모르고 자란 요즘 세대들의 나약함을 인정한 셈이다. ‘히끼꼬모리’ 같은 신조어가 나온 일본은 젊은 세대에 대한 걱정에 찡그린지 오래됐다. 도쿄대 사회과학연구소 겐지 유다 교수는 그의 저서 『니트』에서 “오랜 기간 풍요를 누리며 자란 일본 청년들은 생계에 어려움이 없어 여전히 부모에게 기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 한국은 괜찮을까? 한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 박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교육과학기술부 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그는 “한국 학생들은 외국 학생에 비하면 연약한 온실 화초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아르바이트와 장학금으로 학비를 해결하고, 스스로 기업 CEO와 접촉해 펀드까지 유치하는 외국 학생과 국내 학생이 경쟁한다면 결과가 뻔하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온실의 화초라니. 한국 학생의 한 사람으로서 발끈했다가 금세 쓴웃음이 난다. 반론의 여지가 없어서다.

아직도 대학생을 ‘독립된 지성체’라 일컫는 이는 거의 없다. 고생 모르고 자라온 대부분의 요즘 세대는 성인이 돼서도 편한 길로만 가려 든다. 혼자 해결하려기보다 누가 떠먹여주기를 바라는 수동적인 모습이다. 학원을 종교처럼 숭배하고, 과제는 인터넷에서 가위와 풀로 쓴다. 안정적이고 편한 직장을 찾아 우르르 몰려간다. 공무원시험의 경쟁률이 치솟는 원인에는 실업난도 있겠으나, 도전정신이 없고 모험하지 않으려 드는 요즘 세대들의 태도가 숨어있음을 부정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대학생도 억울하다. 초·중·고 12년 내내 획일적 주입식교육을 받는데 도전정신이 생길 리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입시경쟁 만으로도 숨찼던 학생들을 불현듯 ‘자신의 적성과 흥미에 맞춰 전공을 택하라’며 당황시키는 게 한국의 교육제도다. 결국 점수에 맞춰 적당히 전공을 정하고 ‘대학생’이 된 그들. 꿈과 목표가 없는데 뜨거운 열정이 있을 리 만무하다. 더욱이 입시경쟁을 부추기고, 학생을 수동적으로 만든 건 다름 아닌 사회와 부모가 아닌가.

개인과 집단을 수치화시키고 끝없이 서열을 구분 짓는 우리 사회의 ‘충혈된 눈’이 지켜보는 한 장기적인 개인 잠재력과 역량계발은 언감생심이다. 자녀 곁을 맴돌며 감싸고도는 ‘헬리콥터 맘’과 ‘캥거루 대디’도 문제다. 자꾸 옆에서 챙겨주니 스스로 고민하고, 부딪치고, 좌절하며 성장하는 일련의 프로세스가 마비될 수밖에. 자녀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으로 여기는 부모의 대리만족에서 비롯된 과보호가 낳는 비극이다.

대학생은 거침없고 발칙할 필요가 있다. 독립된 자기 신념과 열정으로 움직이는 ‘창조적 계층’에 속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경쟁력이 된다.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요즘 대학생이 나약한 원인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있다. 그 책임도 부메랑처럼 모두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김상천 기자 firestarter@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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