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진실과 명예훼손(下)
(43)진실과 명예훼손(下)
  • 최호진(법학) 교수
  • 승인 2010.11.23 16:47
  • 호수 128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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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한 명에게만 말했는데 명예훼손죄?

 

단비는 같은 학과친구 갑이 선배 을과 병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은 죄의식을 전혀 느끼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찾아와 을과 병으로부터 동시에 생일선물을 받은 것을 자랑하고 있다. 단비는 이것을 전혀 모르고 갑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을과 병이 측은하게 여겨지고, 갑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단비는 같은 학과 친구 정에게만 이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모든 학과친구들이 알게 되었다. 갑은 단비를 찾아와 명예훼손죄가 고소하겠다고 한다. 사실을 말한 경우에도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있는가?


명예훼손죄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는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인데 위의 사례와 같이 단 한 명에게 이야기를 한 경우에도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는가? ‘공연히’라고 함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직접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야기를 하는 상대방이 불특정한 사람이라면 소수이건 다수이건 상관이 없으며, 다수인이라고 하면 특정한 사람들에게 전달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불특정이란 행위 시에 상대방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라 공개된 장소에서의 통행인과 같이 상대방이 특수한 관계에 의하여 한정된 범위에 속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런 의미에서 위 사례를 검토해보면 불특정이 아닌 특정한 사람에게, 그리고 다수인이 아닌 한 사람에게 명예훼손적인 이야기를 한 경우에는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법원판례의 입장에서는 다르다. 소위 전파성이론을 취하고 있는 판례는 특정된 한 사람에게 적시한 말이라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는 때에는 폭넓게 공연성을 인정하고 있다. 판례에 나타난 사례를 보면 동네골목에서 동네사람 1인 및 피해자의 시어머니가 있는 자리에서 피해자에 대하여 ‘시커멓게 생긴 놈하고 매일같이 붙어 다닌다. 점방 마치면 여관에 가서 누워자고 아침에 들어온다’고 말한 경우에 공연성을 인정하였다. 피해자의 시어머니는 다른 사람에게 전파가능성이 없지만, 동네사람 1인의 경우에는 전파가능성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와 그의 남편이 있는 앞에서 사실을 적시한 경우, 피해자의 친척 1인에게 불륜사실을 말한 경우, 다방 안에서 다른 손님의 자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자리에서 피해자와 동업관계에 있고 친한 사이인 사람에게 피해자의 험담을 한 경우에는 공연성을 인정하였다. 이 사례의 경우 사실을 전달받은 사람이 피해자와의 관계 등을 살펴보면 전파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위 사례의 경우 단비는 판례에 따를 경우 명예훼손죄가 성립될 가능성이 있다. 단 사실을 전달받은 학과친구 정이 어떤 사람인가에 달려있다. 사실을 주변인에게 전달할 가능성이 있으면 단비는 처벌받을 수 있다.

최호진(법학) 교수
최호진(법학)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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