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스테이
템플스테이
  • 이건호 기자
  • 승인 2011.02.03 09:59
  • 호수 129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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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는 어찌하여 늘그막에 산속으로 들어갔나

◇근대 이전에는 국가와 종교는 혼재하고 있었다. 조선시대 이전까지 불교는 왕실과 국가의 정신세계를 이끌었고,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이념적 배경이 되었다. 유교 역시 이념 자체가 곧 조선 사회의 기틀이 되었고 정치를 비롯한 국가의 모든 행정과 사회적 활동은 유교이념에 맞춰 행해졌다. 국가가 종교이고, 종교가 국가라고 할 수 있는 시대였다. 그러나 근대 이후 이러한 모습은 사라지고 국가와 종교가 각자의 영역으로 떨어져나갔다. 공·사를 넘나들던 종교는 사적 영역으로 편입되어 다른 사적 단체들의 모습으로 변모해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는 국가와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자신들의 영역을 공적영역으로 확대하기 위해 정치참여 및 사회복지활동을 펼쳤다.

◇1970년대까지 종교계의 정치참여 및 사회복지활동은 사실상 기독교 전통의 종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다른 종교들의 경우 스스로의 체제 구축에 온 힘을 기울이느라 사회 분야에 눈길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고려시대 민생구호사업 및 사회복지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불교 역시 일본불교의 잔재로 말미암은 내분으로 진통을 겪고 있었기에 존재하던 복지시설을 폐쇄하기도 하였다. 기독교계 종교들의 활발한 사회참여는 성탄절의 공휴일 지정, 최초 군종제 도입 등 많은 혜택으로 이어졌다. 이는 당시 우리나라의 기독교 신자 비율이 20%를 넘지 못하는 상황에서 큰 파격이었다. 여기에는 미국의 영향, 이승만 정부의 기독교 성향 등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지만 사회참여를 통해서 기독교가 한국사회에 널리 전해진 것이 중요한 요인이었다. 기독교의 이러한 행보에 다른 종교들도 뒤늦게 사회사업 분야에 뛰어들면서 종교 간 경쟁체제를 형성하였다. 결국 종교의 정치참여 및 사회활동은 간접 선교, 신앙의 실천을 넘어서 종교의 사회적 저변을 넓히기 위한 활동으로 볼 수 있다.

◇템플스테이 예산 감축으로 발발된 불교계와 정부의 갈등은 불교계가 정부의 정책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현하겠다고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템플스테이에서 비롯됐지만 온전히 템플스테이만의 문제가 아닌 지속적인 현 정부의 편파적 종교지원 정책에 대한 반발이라는 것이 불교계의 입장이다. 4대강과 관련해 기독교, 천주교가 적극적인 반대 의사를 표현하고 있는 상황에서 불교 역시 4대강 반대 의지를 나타냄에 따라 역사로부터 지속돼온 사회 분야에서의 종교계 경쟁관계가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소림사 최고의 무술 승려 이룽이 미국 해병대 출신 파이터에게 녹다운되면서 화제가 됐다. 이룽은 패배 후 중국 네티즌들의 모진 질타를 받았고 소림사로부터도 외면당했다. 소림 무술은 본래 승려들이 수양을 하면서 정신뿐만 아니라 신체의 건강도 유지하기 위해 하는 수련의 일부이다. 소림 무술을 통해 사회적 이목과 명성을 얻고자 한 이룽의 패배는 그의 참된 마음이 욕심에 의해 가려진 결과였다. 영재우적(永才遇賊) 설화로 유명한 영재 스님은 나이 구십에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험준한 산속에 숨어 수양하였다. 고려시대 승려들은 사회에 관심을 기울이고 역사와 함께 호흡하며 도를 실천하였지만 속세와의 잦은 접촉은 그들 마음에 한 점 티끌을 끼게 하기 때문에 늦은 나이에도 입산하여 깨달음을 구하였던 것이다. 종교의 사회참여 활동은 종교계도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활동하고 있음을 인정받을 계기가 될 수 있지만 종교 본연의 정체성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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