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이황의 『고경중마방(古鏡重磨方)』
(25) 이황의 『고경중마방(古鏡重磨方)』
  • 김철웅(동양학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11.03.15 14:48
  • 호수 129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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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과 바다가 비록 낮은 데 있으나 낮게 있어서 길다

 
  늘 자리 옆에 두고 가르침으로 삼는 말을‘좌우명(座右銘)’이라고 한다. 퇴계 이황은 선현(先賢)의 좌우명 5편 외에 마음을 다스리고 경계하는 글 65편을 모아 『고경중마방(古鏡重磨方)』이라 하였다. 제목‘고경중마방’은 “옛 거울(古鏡)을 거듭 갈고 닦는(重磨) 방법’이란 뜻이다. 이에 대해 퇴계는, “옛 거울이 오랫동안 묻혀 있게 되면 거듭 갈고 닦아도 좀처럼 광채가 나지 않지만 그 본래의 빛은 어둡지 않다. 선현들이 남긴 방책이 있으니 늙었든 어리든 모두 이를 본받아 스스로 강해지는 것이 귀한 일이다”라고 하여 책을 엮은 이유를 설명했다. 퇴계가 말한 거울은 마음을 뜻한다. 사람의 마음은 본래 순수한 것인데 살다 보면 욕심에 사로잡혀 점차 맑은 마음이 어두움에 가려지게 된다. 따라서 티끌로 더러워진 거울을 부지런히 갈고 닦아 원래의 맑은 거울을 되찾아야 하듯 마음을 늘 수양해야 한다. 퇴계는 그 방법을 선현의 글에서 찾았다.

▲ 도산서원에 전시되어 있는 『고경중마방』.

『고경중마방』에는 총 25명의 선현이 남긴 70편의 글이 실려 있다. 70편 중 주자(朱子)의 글이 22편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장식, 오징의 글을 각각 10편, 7편 수록하였다. 그리고 「경의재명(敬義齋銘)」, 「경재잠(敬齋箴)」 등 경(敬)에 대한 글이 많이 실려 있다. 이것으로 퇴계 사상의 바탕은 성리학이며, 특히‘경’을 중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주자는 「경재잠」에서, “발짓은 반드시 무겁게 하고, 손짓은 반드시 공손히 하라. 땅을 가려서 밟되 개미집조차 돌아서 가라. 조심조심 두려워하여 감히 혹시라도 쉬이 하지 말라. 입은 병마개를 한 듯 지키고, 뜻은 성(城)을 지키듯 하라. 성실하고 조금이라도 경솔하지 말라. 이것이‘경’을 지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한편 말과 행동은 일상 생활에서도 항상 경계해야 한다. 정이는 보고 듣는 것, 말과 행동에서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밝힌 「사물잠(四勿箴)」을 지어 수양의 지표로 삼았다. 정이는 “쉽게 하는 말은 진실이 없고, 떠벌리는 말은 너절하다. 법도에 맞지 않으면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리고 「고재명(顧齋銘)」에는, “말은 천천히 하고 행동은 빠르게 하라”고 하여 언행의 조심성을 강조하였다. 이처럼 선현들은 말과 행동을 항상 살피고 마음의 자세를 엄격히 하여 조그만 틈도 허용하지 않았다. 한편 「금인명(金人銘)」에서, “강한 자는 부득이하게 죽게 되며, 이기기 좋아하는 자는 반드시 적과 맞서게 된다. 강과 바다가 비록 낮은 데에 있으나 낮게 있어서 길다. 경계하라”고 하였다. 주(周)의 종묘 앞에 쇠로 만든 인물상에 새겨진 글이다. 권력자는 스스로를 낮추고 섬기는 마음을 가지며, 백성의 고통과 불만을 외면하지 말고 보살피며 힘으로 누르려 하지 말고 설득하고 감화시켜야 됨을 경계한 것이다. 정치가와 관료들이 좌우명으로 삼을 만한 글이다.


『고경중마방』은 퇴계가 59세 때에 벼슬을 사직하고 고향 안동에 머물면서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로 삼고자 만들었다. 자신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었음으로 생전에는 남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퇴계가 돌아간 뒤 제자 조목이 도산서원에서 이를 발견하여 공개하였다. 1607년에 제자 정구가 이를 간행하게 되자 퇴계의 제자들이 널리 읽게 되었다. 그러다가 1744년에 영조는 『고경중마방』을 다시 간행하고 세자에게 가르치게 하였다. 이때 영조는 “세자는 한마음으로 본받으라”고 당부하였고, 나아가 병풍에 써서 곁에 두게 하였다. 그리하여 『고경중마방』은 왕실의 수양서가 되었다. 우리 대학은 영조 때 간행한 것을 소장하고 있다.      


  요즘 우리들은 재산 증식이나 출세와 같은 현실적인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삶의 본원적 문제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관심하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에 대해 의심하거나 고민하지 않고 바쁜 일상을 살아간다. 「장명(杖銘)」에서, “즐길 욕심만 내면 도리를 잃으며, 부귀함만 바라면 서로를 잃는다”고 했다. 퇴계가 선현의 좌우명으로 수양했던 것처럼 진정한 삶이란 어떤 것인가를 고민할 때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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