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볼펜] '고반'

학업에 쉼표를 찍다학업에 쉼표를 찍다

2011-03-29     권예은 기자

 


◇ 考槃在澗 움막을 시냇가에 지으니/碩人之寬 석인의 마음 넉넉하도다/獨寐寤言 홀로 자고 깨어 말하며/永矢弗     오래도록 이렇게 살겠노라 하네 -『시경(詩經)』「위풍(衛風)」편 ‘고반(考槃)’ 중
‘고반’이라는 시는 은거의 삶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권력의 중심에서 버려진 소외가 아니라, 자족적 삶의 자유라는 것을 보여준다. 세속의 헛된 부귀와 명성만을 좇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숨어 사는 즐거움을 가르쳐주고 있다. 시에 나타난 ‘고(考)’는 ‘성(成)’과 같은 뜻으로 ‘이루다’라는 뜻. 반(槃)은 ‘쟁반’이라는 뜻과 함께 ‘즐거운’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고반(考槃)’이라고 하면 ‘즐거움을 이루다’라는 뜻이 된다.


◇ 옛날 선비들은 때에 따라 있는 곳을 달리 했다. ‘세상이 나를 알아줄 때 힘과 재능을 다해 세상을 위해 일한다.’ 이른바 출세하여 입신양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때, 즉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공부해도 운이 닿지 않아 벼슬자리를 못 얻거나, 정치적 불화로 벼슬자리에서 물러날 때, 조용히 숲속에 숨어 살면서 자연을 벗 삼아 책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다. 이렇게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숨어 사는 선비의 삶을 ‘고반’이라고 한다.


◇ 모두가 고반해버린 것일까. 3학년이 되고나니 동기들이 하나둘씩 사라져버렸다. 국방의 의무를 지고 군대 간 남학생들은 그렇다 쳐도 여학생들은 어디로 가버린 것인지 모르겠다. 작년 10월 기준으로 우리 대학 휴학생 수는 죽전 5,582명, 천안 5,864명이었다. 같은 기준으로 재적생수(재학생수+휴학생수)가 죽전 15,759명, 천안 16,929명인 것과 비교해보면 약 3명 중 1명은 휴학생이라는 것.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휴학생의 수에 기자는 놀랄 따름이었다. 그러고 보니 기자와 가장 친하던 친구도 오랜 시간 고민을 하다가 어학연수 다녀오겠다며 이번 학기 휴학을 택했다.


◇ 고학년이 되면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고, 많은 학생들이 휴학을 선택하곤 한다. 이유도 다양하다. 쉬면서 여행가고 싶어서 또는 등록금이 너무 부담 되어서 등등. 그러나 요즘 대부분의 학생들은 취업 준비를 하기 위해 휴학의 길을 고른다고 한다. 영어 공부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해서, 취업에 유리한 스펙을 쌓기 위해서 말이다. 대학생들의 모든 행동들이 이제는 곧 취업과 연결되는 게 조금 서글프기까지 하다.


  취업을 앞둔 대학생들에게 ‘휴학’이라는 선택이 현실 도피책이 되는가 하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을 하든지 본인이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렸다. 옛 선비들이 때를 기다리며 속세를 떠났듯이 우리들도 잠시 쉬어가고자 한다. 휴학한 동기들아, 잘 지내고 있는 거니? 선비처럼 학업을 멈추고 자연 속에서 책이나 읽으며 보낼 수 없는 현실이지만 또 다른 길을 위해 너희들도 은거하며 잘 지내길 바란다. 부디 우리 나이 때의 즐거움을 잊지 말고 유의미한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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