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touch 45. 싱어송라이터의 부재
우리시대 애환을 달래 줄 송라이터의 부재는 큰 불행이다
이 시대 가수와 대중은 가사의 힘을 얕보고 있다. 아니 그보다 가사는 신경도 안 쓴다고나 할까. 가요프로그램을 ‘보는’ 목적이 ‘꿀벅지녀’나 ‘베이글녀’, 혹은 ‘짐승남’인 대중은, 사실 가사는 듣지도 않으니 그럴만한 일일 수도 있겠다. 비주얼그룹 아닌 나름 실력으로 승부한다는 이들도 가사는 역시 뒷전이다. 동요 같은 멜로디 위에 ‘나는 심장이 없어’ 따위의 유치한 가사를 입힌 ‘후크송’으로 대중을 낚는다(심장도 없으면서 입만 살아서는…).
요즘 체면이 말이 아닌 가사는, 사실 곡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 중에 가장 힘이 셀지도 모른다. 대중가요의 시초인 민요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민초들은 삶의 희로애락으로 가사를 지어 불렀다. 김매기 모내기 밥벌이가 힘들어도, 그런데도 굶기를 먹다시피 해야 하는 현실이 고달파도 노래를 지었다. 인생이 덧없을 땐 ‘세월 가는데 덩달아 나 어이 할까요(수심가)’, 이정도면 살만하다 싶으면 ‘건드렁 건드렁 건드렁거리고 놀아보자(건드렁 타령)’하고 불렀다. 경사에 경사 났노라 흥 돋우고, 흉사에 애달픈 곡조로 위로하는 일이 다 가사의 몫이었다. 일제강점기 때도 그 애통함과 분노를 ‘닐리리야’로 호소하지 않았는가.
나라를 막론하고 민요 중에는 개인의 불행, 전쟁 같은 사회적 불행을 노래한 것이 많다. 힘없는 민초들이 노래로 한을 풀고자 한 까닭이다. 괴로운 것들을 가사로 지어 불평하고, 호소하고, 울고, 서로 위로하고. 그러면서 밥벌이, 배고픔, 전쟁, 죽음, 세상과 타협해 그래도 살고자 했다. 그 치유력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 내 힘듦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함께 부름으로써 고통을 공유하는 것. 그 치유력을 우리도 되찾았으면 한다. 우리 시대에도 우리 나름의 애환이 있다. 누가 그걸 가사로 지어 불러주면 좋겠다. 더욱이 요즘 노래 잘하는 가수, 테크닉 좋은 가수는 차고 넘친지 오래다. 반면 구구절절 심금 울리는 가사를 쓰는 싱어송라이터(Singer-Song writer)는 멸종 직전이다. 가수로 성공하려면 이제 성량보다 곡을 쓸 줄 알아야한다. 감성 풍부한 걸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우리나라 사람들인데 사실 그리 어려울 거 뭐 있겠나. 인디신에 관심 없던 사람들조차 십센치(10cm), 브로콜리너마저의 등장에 반가워했다. 이건 대중이 자신들도 모르게 귀에 들어오는 가사를 쓸 줄 아는 송라이터의 부재에 섭섭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아름다운 가사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4번이나 오른 밥 딜런(Bob Dylan), 혹은 ‘Imagine’을 쓴 존 레논(John Lennon)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면접에 또 떨어졌을 때 생각나는 노래면 그만이요, 애인한테 차이고 소주 한 잔 기울일 때 생각나는 가사면 그만이다.
김상천 기자 firestarter@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