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볼펜] 맴맴맴

와우~ 정말 맴맴맴하시네요

2012-03-06     김상천 기자

◇ 아무리 봐도 이건 오해다. 7년의 기다림, 7일의 삶. 매미는 땅 위의 7일을 살기 위해 어두운 땅 속에서 7년을 견뎌야 한데.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이건 매미 입장에서는 기가 막히는 말이다. 누가 당신에게 61,320시간 동안 살아온 삶과 168시간 동안 살아온 삶 중에 어떤 게 진짜 인생이었냐고 물어보면 후자를 택할 수 있겠나? 심지어 매미는 7년 동안 잠자고 7일 동안 깨어있다는 말도 있다. 매미가 들었으면 가슴을 쳤을 것이다. 이건 세로 19cm 가로 12cm 판때기를 들고 다니면서 길에서 무한도전을 보고 지하철에서 CPU랑 맞고를 치면서 하우투리브스마트(How to live smart)?를 외치는 종족이나 할 수 있는 말이다.

◇ 그러니까 말하자면, 애벌레야말로 매미의 진짜 삶이다. 땡볕에 몇 시간이고 매달려서 맴맴맴… 맴맴맴… 맴맴맴… 하다보면 아- 제기랄, 변태하지 말걸. 매미는 맴맴맴하며 그런 생각을 떨쳐내려고 애를 쓸 것이다. 아니야 그래도 종족보존은 해야지. 맴맴맴…. 가시오가피를 팔기 위해 동창에게 전화를 걸 때처럼 내키지 않는 심정으로. 그러니까 안 그래도 짜증나 죽겠는데 자꾸 7일 간의 기다림 어쩌고 하면 매미는 확 돌아버릴지도 모른다. 북아메리카에 사는 주기매미는 심지어 17년을 애벌레로 산다. 짝짓기 한 뒤 하룻밤을 자고 바로 죽어버리는 것도 다 짜증나고 꼴 보기 싫어서 그렇게 된 것 같다. 아늑한 익숙한 땅 속이 매미는 그리울 것이다.

◇ 자기가 땅 위에 산다고 땅 속에서의 7년을 무시한 채 꼴랑 7일만이 진짜 인생이라고 해석하다니. 역시 맴맴맴하기 좋아하는 인간들이나 할법한 생각이다. 페이스북과 카카오톡 그룹채팅이라는 나무에 번갈아 매달리면서 맴맴맴… 나 여기 있어요, 나를 좀 봐달라니까? 내 스펙 정도면 진짜 괜찮은 호모사피엔스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 감성 과잉의 글귀, 어려운 책이 잔뜩 꽂힌 자기집 책장 사진, 비키니 사진, 성적표, 일기들을 한껏 과시하며 맴맴맴. 그 소리에 홀려 날아온 다른 호모사피엔스가 ‘좋아요’를 눌러줄 때까지! ‘콕 찔러주면’ 더 좋고!

◇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성균관 스캔들>의 원작자 정은궐(필명)이 최근 처음으로 언론과 전화인터뷰를 했다. 나는 로맨스 작가다. 문학가 아니다. 장르소설을 쓰는 건 직장인이 일 끝나고 춤을 추고 운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터뷰하고 유명세를 타게 되면 글 쓰는 게 힘들어진다. 가족들도 내가 글 쓰는 줄 모른다. 사실 드라마만 끝나면 잠잠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오늘 당신이 어떻게 알아냈는지 자꾸 전화를 해대서 그런 기대가 엉망이 됐다, 그런 내용이었다. 맴… 헉. 이렇게나 맴맴맴하지 않다니. 타이슨이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었을 때나 지단이 월드컵 결승에서 마테라치한테 박치기를 하고 퇴장 당했을 때, 박민규가 선배 문인들이 젊은 작가들에게 보내는 조언에 <좆까라 마이싱이다!>라고 써보냈을 때의 감동이 아닌가. 아 부럽다. 

<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