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크북크 14. 신경숙 『외딴방』

2014-04-01     김선교(경영·2)
 

 초인종이 울린다. 새벽같이 전화하셔서 버스 안이라고 하시던 할머니다. 가끔 오셔서 음식을 해주시거나, 남자 셋이 살아 깔끔하지 못한 집을 청소해주시곤 한다. 아픈 다리 때문에 쉽게 오지 못하시던 할아버지도 오랜만에 같이 오셨다.

  두 분은 한 소녀도 낳고 기르셨다. 그녀는 글 쓰는데 꽤나 재주가 있었고 공부도 잘해서 고등학교 때까지 전교 1, 2등을 차지했다. 그런데 그 딸은 두 남동생과 그녀의 부모를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두 분에게는 미안하고 고마운 효녀였다. 그 미안하고 고맙던 그들의 딸이, 지금은 이 세상에 없다.

 오신지 몇 시간 안 되었는데 할아버지께서 가신다고 하신다. 왕손자만 보면 됐지 뭐. 이제 한 번이나 더 올 수 있겠냐, 하시면서. 할아버지께서는 불편하고 어색하셨으리라. 집과 멀리 떨어진 낯선 방의 침대 위에서 이불을 덮고 잠 못 이루던, 예비 고1의 나도 비슷한 기분이었을까.

 새로운 학교,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선생님들, 새로운 일상, 그리고 밝은 미래. 온갖 낯선 것들에 대해 불안 섞인 기대감을 가졌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과 답답한 미래 앞에 그 기대는 이내 무너졌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주일, 길게는 한 달에 한 번 밖에 만나지 못하고, 하루 종일 차가운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하는 경직된 삶에 원만히 적응하지 못 했다. 그 사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떠나갔다. 

 그 삼 년의 삶을, 그 시간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소년에게 『외딴방』이 왔다. 잊고 싶은 나의 과거는 어딘가 나도 모르는 방에 숨어있었다. 저임금을 받고도 어쩔 수 없이 공단에서 일하던, 하지만 너무 공부하고 싶어 야간학교에 다니던, 참을 수 없는 가난에 왜 이렇게 살아야 되냐며 소리 지르던 큰 오빠 앞에서, 기절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연약한 그 소녀가, 작가의 마음 속 한없이 외진 곳에 숨어있었던 것처럼.

 졸업식 며칠 전, 모든 짐을 다시 싣는다. 삼 년 동안 매일 자던 침대, 매일 앉던 의자와 책상, 처음에는 꽤 자주 읽었으나 점점 먼지 쌓여갔던 성경은 빼고. 열쇠를 캄캄한 구멍에 넣고 돌린다. 문이 감격스레 잠긴다. 그 방 안에 3년의 삶을 가두고 집으로 돌아온다.

 책에서 나는 내 자취방의 열쇠를 발견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그 열쇠를 손에 꽉 쥐고 희미한 문 앞으로 영광스러운 발자국을 내딛었다. 아직도 아프도록 후회하는 소년이, 너그럽게 그 시간을 용서할 때, 비로소 이 미완의 글이 완성될 것이다. 그때가 되서야 비로소 나를 살 수 있지 않을까.

리터러시 독후감 경진대회 장려상
김선교(경영·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