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최승희
부다페스트에서 갈채 받은 최초의 한류 스타
한류는 한국적이 아니라 세계적이라는 보편성을 가지기 시작했다. 부다페스트에서도 K-Pop을 즐기며 커버 댄스를 추는 젊은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한국문화원 주최로 가을에 개최되는 한국영화제는 항상 만석이다. 영화제에서 만난 할머니 한 분은 진흥왕과 진지왕과 진평왕으로 이어지는 신라왕의 계보를 줄줄 외웠다. <대장금>, <선덕여왕> 등 한국 사극을 열렬히 시청했기 때문이다. 헝가리에 있는 ELTE 대학교의 한국학과를 지원한 이유 중에 하나가 EXO나 방탄소년단 때문이라고 대답하는 학생들이 대다수다. 이렇듯 한류는 헝가리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새로움을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부다페스트를 방문한 최초의 한류 스타는 누구일까? 부다페스트에서 촬영된 드라마 <아이리스>의 이병헌? 세체니 다리 위에서 <또 운다 또> 뮤직비디오를 찍었던 다비치? 모두 아니다. 한국 신무용의 대모(大母) 최승희(1911-1969)가 부다페스트를 방문한 최초의 한류 스타였다.
최승희는 한국 고전무용과 현대무용의 고리를 이어준 무용가이자 동시에 1930년대 세계 순회공연을 하면서 ‘동양의 진주’라는 명성을 얻었던 세계적인 무용가였다. 미국과 유럽의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이탈리아, 덴마크, 영국, 스페인 그리고 중남미에 걸쳐 총 150여회의 공연을 하며 세계에 한국 무용의 아름다움을 알린 한류 요정이었다. 그녀의 공연에 헤밍웨이, 피카소, 찰리 채플린, 장 콕토 등 문학 예술인들도 열광했다.
최승희는 우리 대학이 소재한 용인과도 인연이 깊은 무용가였다. 그녀의 남편은 KAPF계열의 평론가 안막이었다. 안막은 아들이 없었던 큰 아버지의 양자가 됐는데 큰 아버지의 집이 처인구 원삼면에 있었다. 명절 때마다 안막 부부가 시 큰부모에게 인사를 왔었는데 그녀를 동네 사람들이 새댁이 아니라 ‘신새댁’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신여성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그녀에게 어울리는 호칭이었다.
사회주의 문학을 했던 남편을 따라 월북한 최승희는 북한 무용계의 발전을 위한 초석을 놓았는데 1951년 9월에 딸 안성희와 북한예술단과 함께 부다페스트를 방문해 오페레트 극장과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을 했다.
최승희가 딸과 함께 공연한 화려한 한국 무용은 헝가리 관객들에게 감동과 놀라움을 선사했다. 그녀의 공연은 예술적 교양이 깊은 헝가리인들에게 한국 무용의 아름다움이 각인되는 기회였다. 우리대학 한국무용단이 2014년, 2016년 두 차례의 부다페스트 공연에서 헝가리 관객들에게 엄청난 갈채를 받았었다. 그런데 연세 지긋한 관객들의 박수 속에는 예전의 감동이 담겨 있어서 더욱 우렁찼다. 이렇듯 헝가리에 한류의 첫 발을 디딘 스타는 최승희였다.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의 높은 자긍심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가 몇 개 있다. 숙소인 겔레르트 호텔에 대한 불평과 예술단 전용열차 제공을 헝가리 정부에 요구해 결국 관철시켰다는 에피소드이다. 겔레르트 호텔은 아르느보 스타일로 지은 당시 최고의 호텔 중의 하나였다. 이 호텔 시설에 불만을 제기했다는 것에서 그녀의 콧대가 얼마나 높았는지 추측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