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 루소『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복잡다난한 삶의 문제에 초연하게 대처하는 법

2017-09-19     설태인 기자

여기 한 사람의 유작이 있다. 프랑스의 계몽사상가이자 철학자, 사회학자로 불리는 장 자크 루소의 유작. 대학생 필독서 목록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그의 저서 『에밀』과 『사회계약론』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의 자전적 작품인 『고백』이나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은 우리에게 다소 생소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루소가 뇌졸중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미완성으로 남은 이 책은, 다사다난한 삶을 살았던 철학자의 솔직하고 내밀한 사유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루소가 고독한 몽상가를 자처한 것은 18세기 프랑스 사회가 그를 외톨이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과거 자연 상태에서 평등했던 인간이 불평등해지는 계보를 좇는 『인간불평등 기원론』과 자식을 망치지 않으려 보육원에 보냈다는 내용이 담긴 『에밀』, 인민이 정부에 저항해 새 정부를 구성할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한 『사회계약론』을 연달아 발표한 그는 프랑스 정부에 의해 가장 위험한 인물로 낙인찍혔다. 심지어 국회는 루소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그의 책은 금서가 되는 것도 모자라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불살라지기에 이른다.

하지만 루소가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프랑스 국민마저 그를 조롱한다는 사실이었다. 정치인과 지식인, 종교인 등 기득권층이 앞장서 드러낸 루소의 사상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가 사회 전체로 퍼진 것이다. ‘악령’이나 ‘괴물’에 빗대져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내몰린 그는 한적한 시골로 돌아가 이런 결론을 내린다.

 

“이제 이 세상에 나는 혼자다. 더이상 형제도, 가까운 사람도, 친구도, 사람들과의 교제도 없고, 오직 나 자신뿐이다.” (p.15)

 

시골 마을에 홀로 선 그는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자신의 몽상을 기록하겠다고 다짐하는 첫 번째 산책부터 연인 바랑 부인과의 행복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열 번째 산책까지, 루소는 그간 살아온 삶의 궤적과 제 생각들을 찬찬히 훑는다. 종교나 교육에 대해 사유하기도 하고 식물이 주는 즐거움에 대해 말하기도 하는 그는 남들에게 자신을 해명하거나 삶으로부터 도망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담담히 마주할 뿐이다.

이렇듯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시련을 겪고, 관계 속에서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사람들은 종종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을 그 상황을 회피하거나 다른 이를 탓하는 등 외부에서 찾으려 애쓴다. 그러나 루소는 내면으로의 여정을 떠난다. 오로지 자기 생각에만 집중한 채 산책길에 나선 그는 비로소 삶의 여러 문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대부분의 철학책을 읽을 때처럼 세상에 대한 색다른 관점을 만나고 어려운 개념들을 이해하는 즐거움을 기대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다소 미적지근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고단한 삶의 끝에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그것을 온전히 살아내려 한 한 철학자의 고백을 들어보는 일은 꽤 즐겁지 않겠는가.

 

<이 도서는 유헌식(철학) 교수의 추천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