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덕수궁 야외프로젝트: 빛·소리·풍경 - 고즈넉한 가을 저녁, 역사와 함께하는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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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4     이정숙 기자

가을 밤, 환한 달빛 아래 펼쳐진 궁궐의 모습은 무엇보다 아름답다. 우아한 곡선으로 그린 처마와 그 아래 곧게 허리를 편 기둥, 세월이 품은 덕수궁의 매력은 짙은 어둠 속에서도 좀처럼 숨겨지지 않는다. 달빛 그윽한 밤 사랑하는 연인에게, 혹은 소중한 가족에게 덕수궁이 주는 아름다움을 선물해 보는 것은 어떨까.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을 맞아 기획된 ‘덕수궁 야외프로젝트: 빛·소리·풍경’은 지난 2012년 이후로 처음 진행되는 야외 전시로, 궁을 찾아 온 이에게 역사와 예술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모든 전시작품이 오로지 ‘덕수궁의 밤’이라는 주제에 맞춰 기획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전시에 참여한 9명의 작가는 덕수궁을 훑고 지나간 가슴 시린 이야기를 상징적인 공간에 녹여냈다.

정전에서 시작하는 전시는 보는 이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첫 번째 작품 ‘온돌야화(溫突夜話)’는 덕수궁을 둘러싼 과거와 현재를 조명함으로써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흩어진 파편을 표현한다. 구한말 조선을 바라본 제3자의 시선은 어땠을까. 사방이 가로막힌 어두운 내부에 놓인 조선은 어쩐지 쓸쓸하기까지 하다.

또 다른 작품 ‘프리즘 효과’는 각기 다른 프리즘으로 바라본 고종과 덕혜옹주를 묘사하며, 대한제국의 아픈 역사를 비교적 객관화했다.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서양 열강의 눈치를 보던 대한제국, 그 중심에 서 있던 그들의 마음을 잠시나마 위로할 수 있다.

고종의 침실, 함녕전에 설치된 ‘Insomnia (불면증)’는 그가 맞이한 대한제국의 운명을 그대로 형상화 한다. 한 쪽 벽에는 불꽃놀이를, 맞은편에는 핵폭발의 한 장면을 그려냄으로써 그가 꿈꿨던 이상이 현실 속에서 구현되지 못했음을 표현한다. 마치 고종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무력감과 대한제국이 맞이한 허망한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9명의 작가의 각기 다른 고민으로 빚어 낸 다양한 예술작품은 역사책 너머의 덕수궁 이야기를 들려준다. 역사와 예술을 품은 가을의 덕수궁. 돌아오는 주말에는 덕수궁에 들려 가을 밤의 정취를 만끽해보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오는 29일까지, 무료(덕수궁입장권 소지자에 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