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기 퇴임의 변

손나은 편집장

2019-11-27     손나은

모두의 삶에는 항상 사랑해도 아무 힘이 되지 않지만 불수의적으로 마음을 쏟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20대 초반의 저에게는 단대신문이 그런 존재였습니다. 기자 및 편집장을 거치며 신문을 위해 바친 시간과 비용, 그리고 물리적으로 통용할 수 없는 많은 감정들….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패를 썼다고 생각했음에도 번번이 부족한 점이 생기는 것이 신문이었습니다.  매 호 애증과 오기로 아교를 만들어 지면을 구성했습니다. 여태껏 이렇게 악을 쓰며 살아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발행이 끝나면 난데없이 올라오는 억울함과 후련함이 낯설기만 했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감정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어째서 하고 싶은 말은 날것으로 보도해서는 안 되는지,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을 작은 불편함도 고생해서 취재해야 하는지, 정돈된 자료를 그대로 쓰기보다 직접 발견한 이야기를 가공해야 하는지. 정답을 내리기에 지극히 지난한 질문들입니다.

그런데도 단대신문 기자라면 망설임 없이 답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곳이 아니라면 영영 몰랐을 가치이기도 합니다.

잘 쓰인 기사는 마지막 줄을 지워도 본질이 변하지 않습니다. 여태 저와 함께해주신 우리 기자들 모두가 작성해준 기사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신문의 끝자락이 된 제 자리를 여백으로 남겨도 괜찮을 듯합니다.

의지박약의 미성년을 한 명분의 성인으로 만든 선배들, 신문을 핑계로 마음껏 의지했던 부장들, 쓴소리할 틈 없이 스스로 따라와 준 후배 기자들. 주간 교수님을 비롯해 면구스러울 정도로 많이 도와주신 분들께도 감사합니다. 끝인사를 위해 지면을 비워줘서 고맙습니다. 함께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