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을 바꾸면 행복이 보인다

오마이뉴스 오연호(57) 대표

2020-06-03     금유진 기자

Prologue

2002년 2월 22일 오후 2시, 대한민국 대표 인터넷 언론사 오마이뉴스가 태어났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시민기자 임명으로 전국의 소식을 생생히 그리고자 한 사람이 있었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언론계에서의 참여 민주주의를 실현해보고자 고군분투한 그. 이후 그는 행복지수 1위의 덴마크에서 대한민국의 행복을 불어넣을 새로운 길을 찾아 마침내 꿈틀리 인생 학교와 섬마을 인생 학교를 설립했다. 기자에서 언론사 대표, 학교 설립자이자 국어 선생님. 그리고 대중과 소통하는 강연자의 수많은 이야기가 궁금해지던 어느 날, 종로의 한 카페에서 이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 오연호(57) 대표를 만나봤다.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오마이뉴스 대표이자 창간자, 꿈틀리 인생 학교와 섬마을 인생 학교를 운영하는 오연호다.

▶ 오마이뉴스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대학생 시절 전두환 정권 시대로 인해 언론의 자유가 없었다. 따라서 허구적 현실보다는 사실을 먼저 전하자는 생각에 소설가의 꿈을 접어두고 대자보나 학회지를 통해 글을 썼고 1988년 아주 작은 월간지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군사정권 대항 매체소속으로 12년간 온갖 어려움을 겪으며, 왜 다 같은 글인데 대기업 언론사가 쓰면 크게 보도되고 일반 시민이나 작은 매체에서 쓰면 작게 보도되는 차별이 있을까 생각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정신으로 오마이뉴스를 만들었다.

▶ 시민기자라는 독특한 역할의 탄생 배경과 과정이 궁금해진다.

내가 기자 생활을 하며 느낀 것은 직접 보는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민들은 이미 자기 삶 속에서 현장을 보고 있으니 그들이 약간의 언론 교육만 받으면 충분히 기자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민기자 제도의 장점을 살려 4명의 상근 기자와 700명의 시민기자를 두고 오마이뉴스를 시작했다. 현재는 15명의 편집기자가 시민기자가 작성한 기사의 표절이나 명예 훼손 여부 등을 확인하는 스크린 작업을 담당하고 있다.

▶ 시민기자의 출현이 ‘직업기자의 전문성 결여’라는 단점을 불러올 것에 대한 걱정도 따랐을 것 같은데.

물론 직업기자 사이에 그를 우려하는 반응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계급장을 다 떼고 ‘누가 진실을 제대로 얘기하는가’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오히려 소수의 직업기자들이 정보를 독점하는 게 더 문제라는 생각도 있었고, 비주류 매체에서 12년간 기자로서 느낀 차별적 경험들이 있으니 안주하지 않았던 것 같다.

▶ 요새 ‘기레기(쓰레기 기자의 줄임말)’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며 언론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어찌 보면 그동안 언론인들이 권력 혹은 광고주와의 결탁으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비난을 자초한 측면이 있으므로 왜 이런 지적을 받게 됐는가에 대해 겸허히 돌아봤으면 한다. 하지만 ‘내가 직업적으로 쓸모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누군가는 취미가 아닌 업으로써 국가와 사회의 중요한 뉴스를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기자가 그 역할을 하는 것이다.

▶ 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교육자로서 가장 보람된 순간은 언제인가.

학교생활의 끝 무렵, 졸업을 앞둔 아이들의 자존감과 사랑이 커진 걸 확인할 때다. 졸업 시기를 앞둔 학생들이 ‘이제 글쓰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현재 내가 가진 실력으로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라는 말을 한 것. 그리고 입학 당시에는 굉장히 수줍었던 친구가 학교생활을 마치며 당당하고 자연스러운 자기표현을 익힌 모습을 보인 것이 기억에 남는다. ‘쉬었다 가도 괜찮아, 다른 길도 가도 괜찮아,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학교의 좌우명이 실현된 순간이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책에서 제시한 덴마크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여섯 가지 키워드가 인상 깊었다. 이걸 한국식으로 적용하면 어떤 표현이 좋을까.

‘스스로 선택하니 즐겁다’라는 문화가 사회에 적용되면 우리가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흔히 우리가 뭔가를 할 때 엄마가 시켜서, 선생님이 시켜서, 사회적 눈치나 잣대에 맞추기 위해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경우 양적으로는 남는 게 있을지라도 질적으로 나의 행복을 채워가는 느낌은 적다. 자신이 낸 시험 문제는 잊히지 않는 것처럼 자발적인 선택이 중요하다.

▶ 다양한 책과 강연을 통해 ‘행복’을 얘기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보니 감정을 드러내기 힘든 순간도 있을 것 같은데.

물론 회사나 강연장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나를 드러내는 게 어려울 때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 균형을 맞추고자 노력한다. 예를 들어 회사나 강연장에서는 무언가를 앞에서 주도한다면 종교 생활을 위한 교회에서는 늘 뒤에 앉는 식이다. 그럴 땐 침묵하고 모든 주위를 내려놓는다. 또 가정에서는 아빠이자 남편으로서 내 개인적인 역할을 잘 수행하는지 집중하고 사적인 영역을 잘 누리고 있는지 살피고 있다.

▶ 회사와 학교, 강연 등 모든 부분에서의 새로운 시도가 돋보인다. 새로운 도전을 위한 조언을 한다면.

세상에 공짜는 없다. 우리가 뭔가를 시도할 때 두려움이 느껴지는 이유는 조사가 잘 안 됐거나 과정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오마이뉴스를 만드는 데는 월간지 기자 생활이라는 과정이 있었고, 꿈틀리 인생 학교를 만드는 데는 여러 차례의 덴마크행과 강연장에서 만난 학부모들의 수요를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있었다. 이렇게 창업 전 모든 것을 점검해가는 조사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시도 자체가 즐거웠다. 철저한 조사, 그리고 결과를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으로 나누지 않는 자세를 갖는다면 도전이 두렵지 않을 것이다.

▶ 언론인, 회사 대표, 교육자 등 여러 가지 수식어로 소개된다. 직업에 대한 설명 없이 누군가 본인을 떠올린다면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예전에는 기자 오연호를 가장 좋아했지만, 이제는 내가 살아가는 삶 자체를 오롯이 봐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나 또한 아직 성장 중이며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고 있는 청년들에게 조언 부탁한다.

대학교 시절을 되돌아보면 시간이 빠르게 간다는 느낌에 늘 초조함이 따랐던 것 같다. 하지만 인생은 내내 성장 중이고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다. 그러니 여유를 갖고 그동안 주위 사람들에게 들어온 말로부터 자신을 해방해 온전한 대화의 시간을 갖길 바란다.

▶ [공/통/질/문] 마지막까지 자신과 함께하고 싶은 ○○은.

‘꿈틀’이다. 꿈틀은 활개 치는 역동적인 움직임부터 아주 작은 움직임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특히 매력적이다. 꿈틀거린다는 것은 결국,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다.

 

Epilogue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힘이 되는 순간이 있다. 행복을 찾아 덴마크로 떠난 그가 한국으로 돌아온 후 만난 강연장의 사람과 각종 메일, 또 다른 공간이 그랬다. 모두가 진정한 행복을 원하는 열망의 연속이었다. 이미 고착된 사회 흐름에 안주하는 건 가장 편한 방법처럼 느껴지지만, 발전을 위해서는 변화를 피할 수 없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개개인의 역할과 힘이 있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기자는 우선 나를 틀에 가두지 않고 ‘어떤 사람이 돼 어떻게 살 것인가’에 집중하기로 했다. 나부터 달리 세우는 행복의 기준이 우리 사회에 퍼지면 머지않아 대한민국의 행복 기준이 바뀌는 날도 오지 않을까. 그럼 기자는 오 대표가 오마이뉴스 탄생을 본인의 가장 큰 특종으로 꼽은 것처럼 이렇게 외칠 것이다. oh, my, news 우리도 행복할 수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