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영혼에 기대어 살아가라

23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2020-09-29     송정림 작가

 

미국 오클라호마 주의 광활한 농장에는 옥수수와 목화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그러나 대공황과 홍수와 가뭄을 겪은 후 대지주와 은행으로부터 집과 땅을 트랙터로 밀려버린 그들. 삶의 터전인 땅을 빼앗긴 이주민들에게 남은 것이라곤 부양해야 할 가족과 일할 수 있는 몸뚱이뿐. 그런 그들에게 날아온 서부지방의 구인광고는 그들이 쥘 수 있는 마지막 카드였다. 넉넉한 보수에 과일이나 목화를 따는 손쉬운 일들, 그리고 따뜻하고 과일나무가 무성한 그곳은 농사라면 자신 있는 그들에게는 행운의 장소였다.


세간살이를 팔아서 마련한 중고트럭을 타고 그들은 캘리포니아로 향한다. 이 무렵 교도소에 들어갔던 톰 조드가 가석방돼 풀려나오고, 산에서 홀로 수행을 하다 나온 목사 짐 케이시와 만난다. 이 두 사람도 다른 식구들과 함께 고향을 떠나기로 한다. 그렇게 그들의 고난의 여행은 시작된다.


모포와 취사도구만을 고장 난 낡은 자동차에 싣고, 2천 마일의 길을 가기 위해 산맥을 넘고 사막을 횡단하는 그들은 가는 동안 조부모를 차례로 잃어야 했다. 그러나 장례를 치를 여유도 없이 시신을 차에 실은 채 가야만 했다. 그들이 겨우 캘리포니아에 도착했을 때는, 그야말로 돈 한 푼 없는 빈털터리가 되고 만다. 어머니는 한탄한다. “돈을 번다 한들 그까짓 게 무슨 소용이야. 우리한테 중요한 건 식구들이 헤어지지 않는 거야.” 캘리포니아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여전한 배고픔과 질병과 혹독한 노동이었다.


케이시 목사가 고용주 앞잡이인 폭력단에게 살해되고, 그 장면을 목격한 장남 톰은 케이시를 죽인 남자를 살해하고 정처 없는 유랑의 길을 떠난다. 떠나기 전에 톰은 어머니에게 말한다. “어머니, 케이시 목사님이 말했어요. 언젠가 자기 영혼을 찾으려고 광야에 나간 적이 있었대요. 알고 보니 자기의 영혼은 없더래요. 자기는 다만 굉장히 큰 영혼의 극히 작은 한 가닥만 가지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더래요.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혼자선 아무 쓸모도 없다는 걸 이젠 잘 알았어요.”


어머니가 안타까워하면서 언제 널 다시 보냐고 하자 톰은 말한다. “난 어둠 속 어디에나 가 있을게요. 어디든지 가 있을게요. 어머니가 돌아보는 어디에나, 배가 고픈 사람들이 먹고살려고 싸우는 자리에는 그게 어디든 가 있을게요. 보안관 놈이 누굴 때리는 자리에는 언제든지 가 있을게요. 모두가 화가 나서 아우성치는 자리에 가 있을게요. 저녁 식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고 어린아이들이 웃을 수 있는 곳에 가 있을게요.” 


아들이 떠난 후 설상가상으로 농장에는 홍수가 밀어닥친다. 아버지는 절망에 빠져 말한다. “다 끝났어.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그러나 어머니는 말한다. “우리는 죽지 않아요. 배가 고파도, 몸이 아파도, 죽어가는 사람이 있어도, 그래도 살아남는 사람들은 더 강해져요. 오늘 하루만, 하루만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다면.” 굶주림으로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그들 앞에 포도는 이미 아름다운 열매가 아니었다. 그것은 노동자들에게 분노의 포도였다. 


그런 와중에, 딸 로자샤안이 사산을 한다. 그때 굶어 죽어가는 한 남자에게 다가가 로자샤안은 그에게 젖을 먹인다. 절망 속에서도 그렇게, 따뜻한 인간애는 살아있다는 메시지로 이 소설은 막이 내린다. 


살아가는 일은, 가뭄과 홍수와 폭풍이 끝없이 이어진 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이렇게 전해준다. 오늘, 살아있는 노력을 다한다면 살아남은 사람은 더욱 강해진다고. 인간은, 나 혼자서는 하나의 조각에 불과하니 서로의 영혼에 기대어 살아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