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
11. 열 명의 플렉시테리언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 1825년 프랑스의 법학자이자 미식가였던 장 앙텔므 브리야 사바랭이 『미식예찬』에서 쓴 문장이다. 사바랭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기후위기 시대, 우리가 무엇을 먹는지에 따라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는 중요한 기준이 있다. 그것은 바로 ‘채식의 강도(强度)’다.
‘플렉시테리언’은 불가피한 상황에서만 육류를 섭취하는 유연한 채식주의자를 뜻한다. ‘페스코’는 육류는 피하고 어패류만 섭취하는 사람을 말한다. ‘락토 오보’는 채식을 주로 하며 달걀이나 우유같이 동물에게서 나오는 음식을 섭취하는 사람이다. ‘오보’는 육류와 어패류, 우유 등은 먹지 않지만 달걀은 섭취하는 사람이다. ‘락토’는 육류나 어패류, 동물의 알은 먹지 않고 우유 같은 유제품은 섭취하는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비건’은 모든 육식을 거부하고 식물성 식품만 섭취한다.
2020년 7월 공개된 노르웨이 비영리단체 ‘잇(EAT)’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식습관」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4분의1가량이 인간을 위한 식량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며, 특히 G20 국가의 배출량이 이 중에서 4분의3을 차지한다. 가축사육, 곡물 재배, 농지조성, 음식물쓰레기 처리 등 식량을 생산하고 가공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것이다. 보고서의 주요 저자인 브렌트 로켄은 “글로벌 식량 시스템에서 거대한 자리를 차지하는 G20 국가가 과일과 채소, 콩류, 견과류의 섭취를 늘리고, 육류 및 유제품 소비를 줄인다면 현재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들어가는 비용을 최대 40%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유제품과 육류의 과도한 섭취가 개인의 건강을 넘어 지구의 건강에까지 해를 끼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젊은 세대 중심으로 개인의 라이프 스타일과 동물권, 환경보호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채식주의’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 세대별 채식주의자 비율도 Z세대(1990년대 이후 출생)가 가장 높다. 베이비부머 세대(1950년대생)가 34%에 불과한 반면, Z세대는 54%에 이른다(플렉시테리언을 포함한 비율).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베지테리언’과 달리 비건은 윤리적인 개념이다. ‘고기’라는 표현 방식은 우리가 먹는 것이 살아 숨 쉬던 동물의 사체라는 사실을 감춘다. ‘비거니즘’은 이를 직시하고 고기뿐만 아니라 고기에서 생성되는 그 어떤 것도 활용하지 않는 삶의 철학을 의미한다.
물에서 살았던 생명의 고기보다는 땅에서 살았던 생명의 고기가 더 큰 문제다. 땅에서 사는 대형 포유류들은 대부분 ‘가축화’됐다. 현재 육지 포유류의 60%는 인간이 키우는 가축이고 36%는 인간이다. 야생 포유류는 4%에 불과하다. 특히 이를 가능하게 한 공장식 축산 시스템은 가축화된 동물들에게는 살아있는 지옥이다. 태어나자마자 엄마에게서 떨어져 어둡고 비좁고 더러운 공간에서 사료만 먹다가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도살장으로 향하는 것이 돼지의 운명이 돼버렸다. 돼지의 자연 수명은 스무 살이다. “공장식 축산은 역사상 최악의 범죄 중 하나”라고 지적한 유발 하라리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충분히 공장식 축산이 지속돼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지구를 위해서 동물들을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그러니 기억하자.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다. 물론 모두가 비건이 돼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한 명의 비건보다 공장식 축산을 거부하는 열 명의 플렉시테리언이 더 힘이 셀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