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시작하면 안 되는 날

05. 자아고갈

2022-11-22     송새인 칼럼니스트

 

'다이어트는 내일부터’라는 말이 있다. 맛있는 음식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기 때문에 오늘까진 먹고 다이어트는 내일로 미룰 때가 많아 생긴 말이다. 다음날이라도 시작하면 다행이겠지만 대부분 또다시 미루기 일쑤다. 그러다 아예 시작조차 못 하거나 어렵게 시작한다 해도 작심삼일로 끝나기 십상이다. 이쯤 되면 다이어트는 인류의 영원한 숙제가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든다.


다이어트의 성공을 좌우하는 건 자기통제다. 먹고 싶은 음식을 참으며 식단 관리를 해야 하고, 귀찮음을 극복하고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 말이 쉽지 굉장한 절제력을 요하는 일이다. 그래서 시작하는 사람은 많아도 목표한 만큼 성공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다.


무언가를 의식적으로 참고 조절하는 것은 힘들고 귀찮은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의 본성에 따라 편한 방식 즉, 현 상태를 유지하는 쪽으로 기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체중을 줄이는 것도 변화를 줘 스스로를 통제하는 것이기에 힘든 게 당연하다.


가뜩이나 쉽지 않은 다이어트가 더 힘들어질 때가 있다. 바로 머리가 일하고 있을 때다. 여러 심리 연구에서는 머리를 쓰는 일과 유혹이 동시에 주어지면 평소보다 유혹에 굴복하기 쉽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한 실험에서는 일곱 자릿수 여러 개를 1~2분 동안 기억하라고 지시하고, 이 숫자들을 암기하는 동안 디저트로 건강에 좋은 샐러드와 달달한 초콜릿케이크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실험 결과 숫자를 암기해야 했던 사람들, 즉 머리를 써야 했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초콜릿케이크를 고를 확률이 높았다. 어려운 과업을 수행해야 했던 상황이 디저트 선택에 영향을 준 것이다.


이렇게 두뇌가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 연속적으로 다른 일이 주어지면 통제력을 발휘할 의지나 능력이 떨어진다. 이를 자아 고갈(Ego depletion)이라고 한다. 이런 상태에서 다이어트를 시작하면 성공하기 어려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머리가 꽉 차 있을 때 식욕을 절제하고 운동가기란 평소보다 더 어렵다. 자아가 이미 고갈돼 더 이상 쓸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 오히려 “단 게 당긴다”는 말도 자주 하는데, 스트레스를 받을 때 달달한 음식을 먹고 싶어지는 것도 일리 있는 이야기다.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가석방 신청서를 검토 중인 심사원들의 가석방 승인 비율은 ‘식사 후’가 65%로 가장 높았다. 반대로 식사 직전인 가장 배고플 때의 승인율은 거의 제로다. 가석방 심사는 ‘거부’가 기본이기 때문에 이를 뒤엎는 결정인 ‘승인’을 하기 위해서는 기본 결정을 유지하는 것보다 에너지가 더 소모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정신적 에너지를 사용해야 할 일이 많을 때는 포도당을 섭취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런 사실이 매번 다이어트를 미루는 좋은 핑계가 돼서는 안 된다. 하지만 적어도 시작일을 정할 때는 고려해 볼 만하다. 사실 그 무엇보다 다이어트가 최우선이고 이미 굳은 각오가 돼 있다면 어떤 상황이든 극복하고 성공할 수 있다. 실제로 강력한 동기가 있는 경우 자아 고갈 현상도 극복 가능하다.


하지만 동기부여의 문제이든 개인의 의지력 문제이든 매번 실패의 길을 걷고 있다면 굳이 실패하기 쉬운 날을 정해 시작할 필요가 있을까? 특히 지금 정신적으로 고도의 집중의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면 다이어트를 할 때가 아니라 어쩌면 당분을 더 채워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