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성을 위해
인공지능(AI) 심판
오심의 역사는 길다. 대표적으로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을 들 수 있다. 김연아 선수가 소트니코바에게 금메달을 내어준 당시의 일은 여전히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현재 사회적으로 공정이 대두되고 있다. 스포츠에 공정을 기대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인공지능(AI)이 심판의 역할을 할 때 공정의 공백을 메울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이러한 맥락에서 등장했다. 올림픽에서 우리는 인간 신체 능력의 한계를 발견하고, 깬다. 그리고 그것을 판단하는 것 또한 인간이다. 스포츠가 ‘인간’ 영역에서 수행돼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AI 심판이 스포츠에 침투하는 것이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오판은 AI가 아닌 인간만이 내릴 수 있다. 오심은 스포츠가 인간의 영역을 다룬다는 걸 방증하는 셈이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인간의 불완전성이 드러내는 인간미보다 공정에 관심이 더 많다. 스포츠 경기에 참여하는 주체가 인간이라는 게 변하지 않는 이상, AI 심판은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축구, 농구 등 다양한 스포츠 경기에서 몸싸움이 벌어진다. 이때 심판은 파울을 선언한다. 심판은 선수가 행한 행위의 의도가 적절했는지 판단하는 과정을 거친다. 주관의 영역이 존재하는 것이다. AI가 인간과 똑같이 행위의 뉘앙스를 파악할 수 있는가는 아직 미지수다. 행위의 결과만 놓고 판단하는 기계가 기존의 심판만큼 경기의 기류를 감지해내는 건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AI 심판을 받아들이는 과도기에 할 수 있는 최선은 AI 심판과 인간 심판이 공존하는 것이다. 두 종류의 심판이 서로의 결핍을 메워나가는 과정에서 AI 심판은 존재의 정당성을 얻을 것이다.
인간의 신체 능력엔 한계가 있다. 인간의 동체 시력, 공간지각능력은 AI보다 한참 떨어진다. 이는 스포츠를 즐기는 요소가 되지만, 인간의 판단력을 의심하는 데에 불을 지핀다. 대학 입시, 취업, 스포츠 등 거의 모든 분야가 공정성을 확보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동안 스포츠 세계에선 수많은 오판이 있었다. 우리는 인간 심판과 AI 심판이 공존하는 과정을 현명하게 보내는 것으로 새로운 미래를 맞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