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의 가치와 시각으로 볼 수 있어야
10. 자부와 긍지
지난 3월 2023 F/W 파리 패션위크에 한국인 디자이너의 브랜드가 등장했다. 이름은 ‘레떼르넬(L’eternel)’. ‘프렌치 시크’ 스타일과 한국의 전통 요소를 조화롭게 표현해 호평받았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동시에 질문이 떠오른다. 이것은 전통의 현대적인 재해석일까, 서구 복식에 한복의 요소를 맞춰 넣은 것일까?
이런 소식은 소중하다. 전 세계에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전통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할 기회다. 고루한 전통에는 현대인도 향유할 수 있도록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통이란, 주로 외면받아온 가치가 아닌가.
그렇다면 전통은 왜 외면받아왔을까? 그 이면엔 식민주의와 제국주의가 횡행했던 세계사의 흔적이 있다. 우리는 서구의 방식으로 재단된 옷을 입고, 서구의 건물에서, 서구화된 식단을 즐기며 살아간다. 우리의 일상 이면에 작용한 권력 구조가 보이는가?
유현준 교수의 한 영상에서 <오징어 게임>과 방탄소년단의 활약에 너무 기뻐하지 말라는 일침을 들었다. 우리는 플랫폼을 구축한 국가가 아니라, 타국의 플랫폼을 사용하는 콘텐츠를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지적이다. 나도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넥스트 인 패션>에서 한국인 김민주 디자이너가 우승했다는 사실에 굉장히 환호했다. 무척 영광스러운 일이었고,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그런데 왜 김 디자이너는 미국까지 가서 방송을 찍었고, 그제야 실력을 인정받고 인지도를 얻었을까? 이는 국내에 그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지난 4월 21일, 김 디자이너는 영국의 V&A 박물관에서 열리는 패션쇼에 참가했다. 전 세계의 많은 사람이 주목했다. 과연 한국에서 패션쇼를 열었다면 얼마나 주목받았을까? 우리에게는 체화된 세계의 권력구조가 있다.
우린 보통 서구의 것이 발전된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좋은 방향’, ‘발전된 것’이라고 판단하는 기준은 어떤 권력적인 잣대가 작용한 결과이진 않을까. 서구의 방식만 ‘현대적’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아닐까. 서구의 철학, 서구의 경제학, 사회구조, 모든 것이 서구의 방식으로 흘러가는 현대 시대를 생각해 보면 우리의 가치판단 과정 또한 서구의 방식을 따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효율을 추구하는 경제학이 그렇다. 이것이 선진화된 학문이라면, 세상은 모두 효율로 설명되었던가?
복식도 마찬가지다. 현대에 우리가 입는 복식은 서구 복식이다. 즉, 서구 복식은 역사가 흐르면서 캐주얼화 된 거지만, 우리는 다른 나라의 복식으로 ‘바뀌었다’. 역사적, 정치적 흐름이 아니었다면 한복은 다른 방식으로 변화를 겪지 않았을까? 서구 복식에 한복의 요소를 장식하는 방법이 아니라, 한복이 현대에 적응하며 스스로 바뀌는 흐름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그 과정에서 폴 푸아레나 코코 샤넬처럼 한국 복식사에 획을 긋는,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도 등장했을 것이다.
세상의 흐름을 서구 국가가 장악하게 되면서 우리가 잃은 것은 분명하다. 우리의 가치를, 우리만의 시각으로 바라볼 줄 모른다는 것. 한 번쯤은 문제를 들춰내고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들을 떠올려 보자. 우리를 제외하면 우리의 것들을 떠올릴 사람들이 없다. 우리는 우리의 것을 얼마나 자부심 있게 바라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