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과제는 창의적 융합 인재 양성 감당할 수 있나
하나의 분과학문을 기본적인 조직 단위로 삼는 학과제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1945년 해방 이후였다. 학과제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재정 속에서 탄력적인 대학 운영이 불가피했던 미국의 상황을 전제로 등장한 것이었다. 분과학문의 전문적인 연구자와 교육자를 양성하는 대학원 운용을 염두에 두고 학문후속세대 양성을 위한 코스워크(기초과정)가 전통적인 일반 교양교육과 함께 학부의 학사구조 단위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로써 학과제는 세부 전공의 연구자와 교육자를 동일한 분과학문의 틀 안으로 묶어주는 실질적인 제도적 기반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대학은 학과제의 경직성과 비효율성을 개선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학과 중심의 분권적이고 폐쇄적인 경직성이 창의적 융합 인재 양성이라는 사회 수요에의 대응을 어렵게 하고, 학생의 전공 선택권 확대라는 새로운 교육 수요를 반영하는 데에도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의「대졸자직업이동경로조사」결과를 분석한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박철성. 2021), 전공-직무 적합성은 대졸 취업자의 51%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의 전공과 담당하는 일이 잘 맞는다고 대답한 응답자 비율은 인문계열이 30%에 미치지 못했고, 사회계열은 45%, 자연계열은 50%, 공학계열도 55% 정도에 그쳤다. 대졸자 취업률이 63.5% 내외임을 고려하면, 3분의 2 이상의 학생들이 대학 졸업 후 자신의 전공과는 무관한 분야의 일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뜻한다.
최근에는 특정한 곳에 얽매이기보다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 미련 없이 떠나는 MZ 세대의 특성에 따라 직업 생태계도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 이를 고려하면, 학생의 폭넓은 경험을 유도하고 자율적 선택을 수용할 수 있는 학사제도의 마련이 시급하다. “기능적 역할이 강조됐던 산업화 시대에는 문이과와 학과 구분이 필요했지만, 기능이 아니라 창의가 필요한 지금 시대에는 통합형 인재가 중요하다”고 한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발언은 그런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울대가 ‘전공·학과(부)·단과대학(원) 간 장벽 없애기’를 중장기발전계획의 중점 추진과제로 제시한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
한 분야의 전공 지식이나 기술만으로는 사회 변화에 대처해 나가기 어려운 시대다. 대학 입학 전형을 계열별 광역 모집으로 바꾸고, 교원의 소속 단위 또한 광역화하겠다는 고등교육 정책은 기존의 학과 중심 학사제도를 개혁하겠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문제는 외형적인 제도 개선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교육 내용의 실질적인 혁신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융합학과의 신설이나 연계전공의 확대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한국 대학이 당면한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 우리 대학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할 때다.